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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골드바흐의 추측_아포스톨로스_240117

1. 삼촌의 속임수

 

"어느 집안에든 골칫덩어리가 한명쯤은 있게 마련이다. (중략) 두권의 책이란 오일러의 [오페라 옴니아] 제17권, 그리고 독일에서 발행된 과학잡지 [수학과 물리학 월보] 제38호였다. (중략) 페트로스 삼촌의 삶의 출발점은 [오페라 옴니아] 제17권에 실린 편지에 있다. 1742년에 쓰인 이 편지에서 무명의 수학자 골드바흐는 당시의 위대한 수학자였던 오일러의 관심을 끌만한 의견을 내놓았다.

 

한편, 페트로스 삼촌의 삶의 종착점은 앞에서 말한 독일의 과학잡지 183~198쪽에 실린 연구논문에 있다. "[수학의 원리] 및 관련 체계에서 결정불가능한 명제에 대해"라는 표제가 붙은 이 논문을 1931년에 발표되었는데, 이는 당시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던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무명 수학자 쿠르트 괴델이 쓴것이다." (20~22쪽)

 

일단 적을 추방한다. 역사적 문화적 등등. 적은 아무 곳에나 붙어서 전달하려고 하는 말의 자세한 내용을 얼버무려 버린다. 함축을 통한 멋있는 표현이라고 착각하지 말자. 애매모호함만 키운다. 멋진 표현은 은유로 충분하다. "형식적으로 결정불가능한 명제"라니. 내용이 분명해질때, 결정불가능한 명제의 수식어를 다시 붙이도록 할 것이다.

 

수학소설이다. 재미있는데, 끝이 무엇일까?

 

* 골드바흐의 추측 : 오일러에게 보낸 골드바흐의 편지. 모든 자연수는 세개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 오일러가 명명

* 불완전성의 정리 : 괴델. 증명할 수 없는 참인 명제가 반드시 있다. 유클리드 기하학 -> 러셀 화이트헤드의 수학의 원리 -> 비트겐슈타인 -> 괴델의 불완전의 정리

 

"해석학개론, 복소해석학, 현대 대수학입문, 위상수학개론" (83쪽)

 

2. 도전, 그리고 실망

 

"물에 빠져 죽을 운명을 지닌 사람은 절대로 침대에서 죽는법이 없지." (97쪽)

 

가엾은 라마누잔.

 

"그는 정말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천재 중의 천재였어. 하디가 늘 얘기하곤 했지만, 라마누잔은 수학재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지. 그는 아르키메데스, 뉴턴, 가우스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인물이었어. 심지어 그들을 능가한다고 생각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 하지만 그는 교육을받아야 할 시기에 정규 수학 훈련을 거의 받지 못했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그 뛰어난 재능 가운데 극히 일부만 발휘하고 말았어."

라마누잔이 수학문제를 푸는 모습을 지켜보면 누구나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레 떠오르는 영감이나 계시에 의한 듯,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복잡한 공식과 항등식 등을 동원하는 그의 불가사의한 능력에 대해 보일 수 있는 유일한 반응은 경외와 경악뿐이었다 (라마누잔은그 같은 공식이 힌두교 여신인 나마기리가 꿈에 나타나서 알려 준 것이라고 하디에게 말하곤 했다. (중략 / 라마누잔) 골드바흐의 추측은 어떤 대단히 큰 숫자에는 적용될수 없을 것같은 예감이 드는군. (중략 / 하디) 직관력은 실로 대단하지. 그런데 그는 교황성하와는 달리 무오류성(교회법 749조 1항)을 주장하지는 않는다네." (111~2쪽)

 

아포스톨로스는 학자로서 대단한 비밀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세마학자scientist들이, 심지어 가장 순수한 수학자들조차 인류의 행복을 위한 진리추구라는 명목에 자극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자기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거나 그럴듯하게 거짓말을 하는것이다. (중략) 수학자가 중요한 연구에 착수하려고 할때 공공연히, 그리고 자신있게 밝히는 연구목적은 '진리의 발견'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꿈꾸는 백일몽의 핵심은 세속의 '영예'다." (118~9쪽)

 

좋다. 세속의 영예와 돈. 그런데,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한다고 해서 수학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라마누잔의 예언대로 추정이 틀릴수도 있는데 말이다. 만일에 증명을 했는데, 틀렸다는 답이 나온다면, 음, 그러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고 사용해야 하는 것일까? 그럴수는 있겠다.

 

페트로스는 골드바흐의 추측을 홀로 증명하겠다는 욕심으로, 중요한 중간성과물들을 감추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 성과물들이 증명에 필요없는 것임을 알고 뒤늦게 논문으로 정리해 발표했지만, 다른 학자에 의해 이미 발표된 성과물들이었다. 내가 발견한 것은 다른 사람도 발견할 수 있다. 시대의 지혜가 쌓여 세마science의 진보를 이루어내기 때문이다. 돈과 지혜는, 움켜쥐고 있으면 쓰레기가 된다.

 

"Wir müssen wissen, wir werden wissen! In der Mathematik gibt es kein ignorabimus."
"우리는 알아야만 하고, 알수있을 것이다! 수학에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건 없다는 것을." (힐베르트 / 166쪽)

wir mussen wissen.m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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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명 끝 ; Q.E.D. quad erat demonstrandum ; what was to be shown

 

"유클리드는 그렇지 못했지만, 이제 수학자들은 수학 그자체를 엄정하게 검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형식논리학 언어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공리-엄정한 증명-정리'의 거룩한 삼위일체는 이제부터 수나 형태, 대수항등식뿐만아니라 이론자체에도 적용되어야만 했다. 그리하여 수학자들은 마침내 지난 2천년간 그들의 중심신조였던 '모든 참인 명제는 증명 가능하다'는 명제를 엄밀하게 증명할 수 있을터였다.

 

몇년뒤, 러셀과 화이트헤드가 두고두고 기념될만한 책인 <수학의 원리>를 발표했는데, 두사람은 그자리에서 처음으로 연역, 즉 증명이론에 대한 가장 확실한 방법을 제안했다. 그러나 그것은 힐베르트의 요구에 대한 최종대답이 되리라는 기대를 불러일으키기는 했지만, 두 영국인 논리학자는 그 이론의 근본성질을 증명해내지 못했다.

 

'수학이론의 완전성(요컨대 그 이론 내에서 모든 참인 명제는 증명가능하다는 것)'은 아직 증명되지 않았으나, 빠른 시일내에 그렇게 되리라는 데 의심을 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중략 /1900년) 파리에서 열린 수학자 대회에서의 '우리는 알아야만 하고, 알수 있을 것이다! 수학에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건 없다는 것을'이라는 승리의 외침은 수학을 연구하는 사람 모두에게 확고부동한 신조였다." (168~9쪽)

 

무엇인가를 좋아하고 믿고 의지하되, 의심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믿고 의지하되 의심해야 하는가?

 

안된다.

의심하는 순간부터 사랑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다시.

 

존경은, 좋아하고 믿고 의지하되 의심할 수 있다.

우정은, 좋아하고 믿고 의지하되 의심할 수 있다.

조금 걸린다. 마치 사랑처럼.

 

참인 명제를 좋아하고 믿고 의지하되 의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그래야 하는 모양이다. 어떻게 할까?

 

진리는, 좋아하고 믿고 의지하되 의심할 수 있다.

도덕은, 좋아하고 믿고 의지하되 의심할 수 있다.

상식은, 좋아하고 믿고 의지하되 의심할 수 있다.

신앙은, 좋아하고 믿고 의지하되 의심할 수 있다. 

애국은, 좋아하고 믿고 의지하되 의심할 수 있다. 

 

"부서지지 않았으면 수리하지 마라

(중략) 수학자의 본분은

이의를 제기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완벽한 정리들의 위상에 대해

영원토록 심사숙고하는 것이 아니라,

 

'정리를 증명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193쪽)

 

그러나,

 

"도대체 괴델이라는 사람이 뭘 증명했기에 그토록 많은 정수론자의 관심을 끈단 말인가? 완전성의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입니다. (중략) 힐베르트와 러셀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기대했던 바와는 달리 (중략) 산술을 비롯한 모든 수학이론이 완전하지는 않다는 걸 증명해 보였던 겁니다. (중략 / 33년) 이 천재수학자는 우리가 어떠한 공리를 받아들이든 정수론에는 반드시 증명불가능한 명제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했어요. 그것도 아주 분명하게 말예요. (중략) 참인 명제라고 항상 증명가능한 것은 아니다. (중략) 이제부터는 아직 증명되지 않은 모든 명제에 대한 불완전성 정리를 적용해야 하는지를 따져봐야 할거 아닙니까? 수학에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ignorabimus 같은 것은 없다'던 힐베르트의 말도 이제는 더 효력을 지니지 못하게 됐습니다. (중략 / 앨런 튜링 36년) 어떤 명제가 증명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는 증명해 보기 전까지는 알수 없다는 것을 제가 증명해 냈습니다." (193~205쪽)

 

3.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선택한 것에 절망할 권리가 있다.

 

평범한 사람은 이런 이야기에 동의할수 없다. 도달할수는 없지만, 진리에 도달한다고 해서 미쳐버린다? 신에 의해 인간의 한계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각각의 단계에서 도달할수 있는 수준이 있을뿐이다. 그런데 왜 미치느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도 미치듯이, 뛰어난 사람들도 미칠수 있다. 뛰어나기에 미치는 것은 아니다.

 

"괴델이 저 지경에 이른 건, 그러니까 저렇게 미쳐버린건 진리의 절대형태에 너무 가까이 갔기 때문일거야. (중략) 인간에게 허용된 것 이상을 알려고 들지. 하지만 신에 대한 오만한 행위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게 마련아닐까?" (231쪽)

 

페트로스는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하고 죽는다. 멋지다.

 

이 책은 수학사에 대한 이야기다. 수학사를 조금 알고, 1900년과 1933년을 안다면 이야기를 훨씬 재미있게 읽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예전에 어느 도서관에서 앞부분을 읽다가 중간에서 멈추었던 책이다. 오늘에야 비로소 읽기를 끝냈다.

 

재미있는 이야기다. 삶과 삶의 의미를 다루고 있다. 한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괴델과 튜링의 정리가 어째서 도피처가 될수 있었을까? 해보기 전에는 알수없는데, 왜 그것이 도피처가 되었을까? 우리는 신포도라서 포기하고 돌아섰는데, 페트로스는 어떻게 괴델을 원망하며 도피할수 있었을까?

 

d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