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3월의 마지막날에 읽기 좋은 책이다.
도입부가 이렇다.
슬픔이 듬뿍 묻어난다.
"제발 불쌍한 제딸에게 젖좀 먹여주십시오." (12쪽)
샹 祥 상서로울 상
"천만금의 재산을 가진것보다 얄팍하더라도 기술을 가진게 낫지." (56쪽)
평생 후회스런 일이다. 어째서 기술하나를 익히지 못했을까? 농사기술조차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대형면허나 트레일러면허를 따야할까? 호구지책의 문제가 아니다. 그럼 뭐지?
이게 좀 복잡해지는구나. 그럼 뭐지?
아들의 결혼식을 세상사람들이 하는 방식과는 완전히 다르게, 가족끼리 식사 한번하고 승인하는것으로 마쳤다. 세상에서 무수히 정해놓은 그 어떤 형태도 아닌 그런 결혼이었다. 앞으로 어떤 결혼생활이 펼쳐질지 흥미진진하다. 보통의 과정을 따르지 않았으니, 통과의례는 그저 의례에 불과한 것이고, 관계를 유지하고 어려움을 극복하여, 사랑과 믿음과 인정을 쌓아나가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래서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는 말이지만, 근거가 약한 이런 믿음이 없으면 못견디는 것을 어찌하랴. 찢어진 부채는 사실 바람이 일수밖에 없다. 그 분명한 사실과 망가진 가마라도 타야만 한다는 허식을 어떻게 같은 차원으로 올려놓을수 있을까? 지혜롭지만, 어리석은 글이다.
"찢어진 부채도 부치면 바람이 일고, 망가진 가마라도 타면 당당해진다" (64쪽)
위화余华 yú huá 는, 정부의 기능이 완전히 와해된 청나라 말기의 상황을, 중국사람들이 어떻게 극복해 나가고 있는지를 그려내고 있다. 몰리고 몰린 시민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일어났을때, 비로소 세상의 질서가 잡히고 삶도 보장된다.
청일전쟁에서 패배하고 시모노세키조약으로 타이완과 랴오뚱반도를 일제에 빼앗긴 중국은, 서태후의 실정과 1900년 의화단사건으로 정부군이 완전히 몰살되고 만다. 유일하게 병력을 지킨 위안스카이를 중심으로 1905년까지 북양군이 신식군대로 만들어진다. 한편, 청에 반기를 든 세력들이 1895년부터 독립을 추진하여 1905년 쑨원이 삼민주의를 내걸고 국민혁명동맹회를 결성하였다. 1911년 10월 10일에 우창봉기가 성공하여 후베이성에서 독립정부를 건설하고 미국에 망명중이던 쑨원이 귀국하여 총통에 취임함으로써 신해혁명을 마무리한다. 쑨원은 무력을 손에 쥐고 있던 위안스카이에게 대총통의 지위를 양보하며 중국공화정부를 유지하려하지만, 위안스카이가 황제에 취임하는 노욕을 부리다가 죽음에 이름으로써 중화민국은 혼란상태에 빠져들고 만다.
위화는, 두개의 죽음들을 그려낸다. 하나는 어리석음으로부터 비롯된 죽음이고, 또 하나는 잔인한 야만에서 비롯된 죽음이다.
어리석음으로 인한 첫번째 죽음은, 눈을 그치게 해달라고 성황각 천제에 참여했던 샤오메이와 아창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죽음이다. 맑은 하늘이 아무리 간절하다고 해도, 따스한 제집을 눈앞에 두고, 눈발에 갇혀 얼어죽었다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다. 사룸life의 땅을 눈앞에 두고도 알지 못하니 어리석다고 밖에는 말할수가 없다. 위화는 왜 이런 죽음을 생각했을까? 아마도 상징일 것이다. 미신을 따르는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죽음, 간절하게 빌면 마침내 얻게 될것이라는 어리석은 믿음이, 공동체의 보호막과 계몽과 세마science가 사라진 중국땅에서 흔하게 일어났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어리석음으로 인한 두번째 죽음은, 북양군이 국민혁명군과의 내전에서 패배하여 시진으로 들어닥치기 전에 벌어졌다. 정부군인 북양군이 후퇴하면서 지나는 마을의 재산과 사람들을 무지막지하게 약탈하기 때문이었다. 시진사람들은 바다로 도망치는 것이 최선이라며, 얼기설기 엮은 뗏목에 의지하여 목숨을 구하려다 대부분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음은 비극이지만, 위화가 이런 극단의 상황까지 그려낸 것은, 나라의 근본인 시민들의 어리석음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북양군이 시진에서 10여리 떨어진 곳까지 왔다는 유언비어가 퍼졌다. 결국 삽시간에 물가로 인파가 몰리고 사람들이 밀치라달치락하며 자기뗏목에 오르기 시작했다. 어떤 뗏목들은 떠나기도 전에 풀어지고, 어떤 뗏목들은 수면 가운데에서 풀어지는 바람에 사람들이 얼음장 같은 물에 빠졌다. 노인과 아이들은 몇차례 꽁꽁언 채로 가라앉고 튼튼한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옆쪽 뗏목에 올라탔다. 그바람에 수많은 뗏목이 무게를 견디지 못해 풀어지면서 더많은 사람이 물에 빠지고 더많은 사람이 가라앉았다. 살려달라는 다급한 울부짖음이 시진의 밤하늘에 울려퍼졌다." (186~7쪽)
잔인한 야만에서 비롯된 죽음은, 장도끼와 토비들에 의해 저질러졌다. 원래 이 지독한 증오는 청왕조나 제국주의 침략세력, 부패정치가들에게로 보내졌어야 하는데, 그들은 너무 멀리 있고 너무 무섭다. 증오가 향하는 나보다 약한곳이나 만만한 곳으로 향한다. 야만자체가 어리석음이며, 어리석은 분노는 결국 자신을 죽게하는 것과 같다.
"토비들은 새끼양을 끌어내듯 스무명을 끌어냈다. 그런다음 남녀노소를 가리지않고 긴칼로 머리를 자르거나 창으로 가슴과 배를 뚫었따.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어머니 배속에서 찔려죽었다. (중략) 앞쪽 주민들이 그렇게 채소처럼 썰리는것을 똑똑히 지켜보면서 뒤쪽 주민들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공포에 찬 비명을 지르거나 구슬프게 울부짖었다. 바람을 타고온 그 처참한 비명을 듣고 갈대밭에 숨은 주민들은 온몸을 벌벌 떨었다. (중략) 악취가 진동했고 사람들은 이유없이 구토하거나 설사해 약방의 진토제와 지사제가 바닥났다. 또 몇달동안 완무당 강물을 마실수도, 물고기를 잡아먹을수도 없었다. 큰물고기 배를 가르면 사람손톱이나 발톱이 나오곤 했다." (356~8쪽)
샤오메이의 처절한 참회도,
우스꽝스러우면서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너무 늦은 참회와
참회에 따르는 행동은 의미가 없다.
잘못을 깨닫는 순간,
가장 빠른 시간내에 용서를 구해서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샤오메이가 배반의 도둑질을 하고서도
금방 용서받을수 있었던 것은,
재빠른 참회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행동 때문이었다.
그런데, 다시 찾아온 참회의 기회를
스스로 내던지고,
행동하지 않고 피함으로써,
영원히 극복할수 없는 비극속으로
모두를 끌고들어간 것이다.
"다음 생에도 당신 딸을 낳아주고
그때는 아들도 다섯을 낳아줄게요.......
다음 생에 당신 여자가 될 자격이 없다면
소나 말이 되어,
당신이 농사를 지으면 밭을 갈고,
당신이 마부가 되면 마차를 끌게요.
채찍질해도 돼요." (573쪽)
위화의 소설은 노신의 아큐정전을 읽는 듯하다. 정전과 달리 전기라고 하는데, 기이한 이야기를 전한다는 뜻인 모양이다. 이와 달리 박경리와 조정래의 소설은 신문기사를 읽는 것처럼 정확하다. 이런 차이를, 읽는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토지와 태백산맥을 읽으면, 역사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가 솟구친다. 분노의 밑바닥에 두려움이 가득하여 읽기가 힘들고, 다읽고 나서도 역시 힘들다. 다시는 그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솟지만, 막상 비슷한 상황이 되면, 좌절하고 싶어진다. 삶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를 희생한 뒤의 세상은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원청을 읽으면서는 두려움과 분노가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다. 고통과 죽음이 별것 아니고 그냥 이상하게 우스운 이야기다. 즐거움은 살아남는 것에 있다. 살아남는 방식에 대해서는 위화가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소설을 다 읽고나서도 마음에 묵직하게 남아있지 않다. 왠지 편안하다. 매우 기괴한 방식이지만, 역사에 흔하게 존재했던 억울하고 끔찍한 죽음에 대해 이런식의 기록도 필요하다고 공감하게 된다.
* 도량형 畝 (나무위키)
척관법에서 사용하는 경지면적의 단위. 원래 畝는 밭이랑 묘라고 읽지만 경지 면적의 단위로 쓰일 때는 무라고 읽는다. 1무는 667 m2(약 200평 한마지기). 미터법과 맞추기 위해 15무가 정확히 1 헥타르(1ha=100a=1만m^2=15무)로 통일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많이 쓰지 않으나, 중국에서는 이것이 표준 경지면적의 단위로 쓰인다. 토지 생산성 발표도 1무당 밀이나 쌀 몇 kg 을 생산했다는 식으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