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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천국/베트남 여행

조금 부족한 것은, 늘 그런 것이다. 밥, 산책, 그리고 손톱 손질_230916 sabado, dieciséis de septiembre_Суббота, шестнадцать Сентябрь

베개가 높아서, 수건을 베고 자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래도 잘 잤고, 그리미도 잘 잤다. 온도 26도로 맞추고, 낮은 풍량으로 에어컨을 돌리고 잤다. 공항근처라 걱정했는데, 조용한 동네다.

 

8시가 되어서 아침 식사를 하러 갔다. 덥기는 한데, 견딜만한 더위다. 여기도 9월 중순이면 살만해지는 모양이다.

 

특별하지는 않지만 충분한 아침 부페가 차려져 있다. 2019년 이래로 처음으로 맞이하는 푸짐한 아침상이다. 인도와 중국, 헝가리에서 온 손님들로 그득하다. 다들 여유있게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눈다. 나도 모처럼만에 1시간에 걸친 식사를 했다. 간 맞추기에 실패한 쌀국수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맛이 좋았다. 바켓트 반미가 특히 고소하고 좋았다.

 

약 15분 거리에 있는 공원을 찾아간다. 공원을 찾아 간 이유는,

 

그것말고는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버스, 트럭,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우글거리는 4차선 도로를 어린이처럼 손을 들고 천천히 건넌다. 우리를, 바위를 지나치는 물결처럼, 차량의 물결이 지나쳐 흘러간다. 그늘은 괜찮은데, 해가 쨍한 곳은 덥다. 양산을 펴들고 살짝만 해를 가려줘도 걸을만하다. 아무도 걷는 사람은 없다.

 

작은 성당이 있다. 습관처럼 들어가서 사진을 한 장 찍는데, 유창한 한국말로 물어온다. 어디서 왔냐고. 영주에서 사위가 소를 키운단다. 최고라고 말해 주었다. 딸을 시집 보내고 걱정이 클텐데, 어느 새 이렇게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게 되었을까. 그의 말년이 평화롭기를 기원한다. 딸과 사위, 손주들도.

 

아름다운 꽃들이 그득한 드넓은 공원에서, 주말을 맞아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모들과 연인들이 조용히 또는 시끄럽게 놀고 있다.

 

베트남은 지금 너무 평화롭다.

80년대에 우리는, 무수한 전쟁에 희생된 베트남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꼈고,

군부독재에서 벗어나려는 우리들의 힘겨운 싸움이,

그들처럼 승리에 다다를 것을 소망했다.

흰 옷의 그들과 우리 백의민족은 마침내 성취해 냈다.

 

조금 부족한 것은, 늘 그런 것이다. 

 

한 다발의 삐라와 신문

감추어진 가방을 메고

행운의 빛을 전하는 새처럼

잠든 사이공을 날아다닌다.

(중략)

죽음 너머 뇌옥의 깊은 암흑의 벽에

흰옷에 시를 쓴다.

방울방울 흐르는 선혈 속에

이 흰 옷 언제까지나

 

- '사이공의 흰옷' 중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YBRhKWQnIW0 

 

그들은 이런 평화를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VP Bank로 갔다. 이상하다 돈이 나오지 않는다. 너무 오랜만에 해외 여행을 오다보니 체크카드를 가져온다는 생각을 못했다. 이런. 100달러를 환전해 달라고 했더니 안된단다. 구글 검색을 해보니 차로 15분 거리에 환전소가 있다. 비상용으로 챙겨온 200달러가 내 수중에 있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postbank라는 곳에 환율 같은 것이 써 있다. 한 번 들어가서 확인이나 해 보자. 오, 된단다. 여권도 필요없고, 그냥 환율만 열심히 챙겨본다. 친구에게 카톡을 보내어 확인한다. 100달러에 240만동이면 괜찮다고 한다.

 

아무리 걸을만 하다고 해도 온몸이 땀에 젖었다. 다시 샤워를 하고, 검색해 둔 네일 샵으로 갔다. 손발톱 청소에 10만동, 매니큐어 칠하는데, 15만동이란다. 총 35만동. 17,500원. 그래, 하자. 생전 처음으로 남에게 손톱 손질을 맡긴다. 처음이라서 그런지,

 

좀 아프다.

 

두 명의 젊은이들이 손님들의 손발톱을 정리하고, 또다른 두 명은 영어 통역과 손발톱 손질 연습을 하고 있다. 삶은 메추리알을 치과용 드릴로 열심히 부드럽게 벗겨내는 연습이다. 열심히 노력하면 독립할 수 있다. 즐거운 모습이다.

 

그랩으로 이코노미 차량을 불렀는데, 넓직하고 깨끗한 SUV가 온다. 왠 일이야. 길이 막혀서 거의 50분만에 7구역의 호텔에 내려준다. 12만 7천동. 1만동을 팁으로 넣어 결제하도록 했다. 사비나 2 부띠크 호텔에서는 15만동의 맛사지 바우처를 준다. 한 번 올라가 봐야겠다.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일찍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이 동네는 완전히 한국이다. 치킨집에 가서 소주를 시켰는데, 고급 술처럼 느껴지는 라벨이 붙어있다. 베트남 보드카는 없냐고 했더니, 보드카로 담근 마가목주를 한 잔 내어 주신다. 향도 좋고 도수도 높다. 치킨은 한국과 가격이 비슷한 대신에 제법 크고 먹음직스럽다. 소주 한 병은 다 마시지 못하고 일어선다. 편의점에 들러 물 한 병과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고 호텔로 돌아와 쉬었다.

 

정말로 잘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