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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천국/베트남 여행

쑤안 홍 호수를 한 바퀴 돌다_230919 martes, diecinueve de septiembre_Вторник, девятнадцать Сентябрь

방에서 나는 묘하게 어지러운 냄새의 근원을 제거하고 시원하게 잘 잤다. 이불이 습기를 머금은 듯한 느낌은 에어컨이 없는 우기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침 8시에 식사를 주문했는데, 5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아서 받아오는 줄 알고 내려갔더니, 준비하고 있으니 방에서 기다려 달란다. 와플에는 바나나와 딸기가 초코시럽을 같이 뿌려서 나오고, 샌드위치는 그야말로 샌드위치만 나온다. 베트남 커피도 한 잔 나오는데, 뜨거운 물을 살짝 타서 먹었다. 그런데로 먹을만 했다.

 

두 시간 정도 달랏을 산책하기로 했다. 플라워 가든에는 라벤더처럼 보이는 보란색 꽃이 가득하다. 향기는, 바람이 불어서인지 느낄 수가 없다. 관광객들이 사진 찍기에 정신이 없다. 라이트파크는 들어가는 계단이 너무 지저분하다. 왠일인지 전혀 관리를 하지 못한 모양새다. 아니면 지난 주말이 너무 광란의 시간이었던지. 더러움을 참고 공원을 가로질러 쑤안 홍 호수가로 나아갔다. 계속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먼 경치가 좋다. 차 한 잔 손에 든 사람들이 꽃이 활짝 핀 병솔나무 아래 벤치에서 시원함을 즐긴다. 

 

우리는 걷는다. 달랏 여행을 계획하면서도 이 호수를 한 바퀴 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그리미는 충분히 돌 수 있다고 한다. 그러지 뭐. 물 한 병을 가지고 나왔지만, 아직은 필요가 없을 정도로 시원하다. 차와 오토바이가 밀물처럼 몰아닥차면 공기가 매우 탁하다. 그냥 참고 걷다 보면 다시 평온해진다.

 

10시가 넘어가자 해가 중천에 뜨고 더위가 밀려온다. 가져온 물을 나눠마시며, 부지런히 걷는다. 꼬박 걷고 났더니 1만보다. 그래도 뿌듯하고 시원했다. 부유하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 가까운 곳에서 바라보면 온통 자질구레한 쓰레기가 가득한 호수 주변을 산책했다.

 

11시 반부터 줌 미팅을 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지만, 국내외를 연결하는 즐거움을 맛보고 싶었다.  호텔 발코니에 앉아서 실컷 떠들었다. 배가 고파서 바나나 하나를 먹으며.

 

12시가 체크 아웃인데, 줌 미팅을 이야기했더니 1시에 체크 아웃을 해도 좋다고 한다. 이렇게 고마운 일이. 호텔은 텅 빈 듯하다. 호텔 바로 아래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서, 구글 어시스턴트의 도움을 받아, 쌀국수와 밥을 주문했다. 합계 6천원. 관광객이 많은 동네라서 그런지 먹을 만하다. 양상치와 당귀를 내주었는데, 먹을만해서 쌈을 싸듯이 먹었다. 배가 그득하다. 맛있어서 먹은 것이 아니라 먹을 수 있어서 먹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소화도 시킬 겸 야시장터까지 걸어 내려갔다. 참 소박하다. 좌우로 꽃가게가 주욱 늘어선 것을 보면 이들의 문화수준을 알 수가 있다. 주변에 이렇게 꽃이 많은데도, 집 주변을 여러가지 꽃들로 장식하는 모양이다. 아름다운 일이다.

 

그랩을 불러 두 번째 호텔로 이동했다. 스콜이 쏟아진다. 오토바이를 세우고 준비해 둔 우의를 자연스럽게 꺼내입고 다들 가던 길을 간다. 재미있는 모습이다. 근사하게 차려진 방에 들어 갔더니 어제 잔 방보다 두 배는 넓고 깨끗하다. 가격은 8만원이 채 안된다. 침대에 누워 비가 쏟아지는 장관을 지켜보는 것도 즐거움이다. 비가 그쳐서 호텔 주변을 산책했다. 일본식 호텔이다. 아, 왜 이러나 정말.

 

방갈로라고 해서 독립된 주택을 숙소로 만들었는데, 주변을 꽃과 나무로 정성껏 가꾸었다. 이쪽 지형이 언덕이 심해서 높은 건물보다는 이런 식의 숙소가 더 좋은 모양이다. 멀리 언덕을 내려다 보는 작은 수영장도 있는데, 수영복이 없고 날이 추워서 들어가지 못한다. 물이 따뜻하다고 하니 내일이라도 수영복을 하나 사서 입어야 할까?

 

기차역 근처까지 50분 정도를 산책할까 했는데, 그리미가 체기가 있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물과 맥주를 사러 잠깐 나왔다가 7만동(3,500원)짜리 보드카까지 한 병 사왔다. 이 정도면 출국 때까지 천천히 마시며 즐길 수 있겠다. 오늘은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린다. 오전에 부지런히 걷지 않았다면 아무 것도 못하고, 숙소에 처박혀 있을 뻔했다. 아니다. 작은 헬스장이 있으니 운동을 할 수는 있다. 비가 내려서 더러운 공기를 깨끗이 씻어 내린다.

 

저녁 겸해서 감자튀김과 생강빵을 주문해서 술 한 잔 했다. 편안하다.

 

술 다 먹고 나서 욕조에 물을 받아 따뜻하게 목욕을 했다. 온 몸이 포근해진다. 밤새 따뜻하게 잘 잘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