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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천국/베트남 여행

열무김치에 흰밥, 여행 온 기분이 나지 않는다_230917

내 편식의 실체를 알게 된 것같다. 밥이다.

 

호텔에서 열무김치와 배추김치까지 차려진 쓸만한 한식이 나왔는데도, 여행 온 기분이 나지 않았다. 여기는 완전히 한국이네. 다른 나라를 느끼려고 왔는데. 어제는 수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어울려서 느긋하게 식사를 하다 보니 저절로 흥이 났었다. 쌀죽과 볶음밥이 있었고, 김치는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이곳은 한국의 베트남판이다.

 

그대신에 커피와 밀크 커피가 맛있다. 내친김에 아이스 커피도 주문해서 산책 준비를 완료했다.

 

호아저씨 Bác hồ는 신중하고 사려 깊었음에도 불구하고 토지개혁에서 수많은 농민들의 반발을 샀다. 집단농장식 토지 개혁은 마오쩌둥의 방식을 도입한  것인데, 생산력 증진에도 실패하고 농민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 모양이다. 모든 토지를 국가가 소유하되, 농민들이 가족 중심으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도록 사용권을 배분하는 것이 옳지 않았을까? 조선초 정도전의 개혁방향이 올바르다고 할 것이다.

 

아침에 천재가 세인트루이스에서 전화를 해서 서울과 3개국 연결 통화를 했다. 추석을 맞이해서 사돈댁에서 송편과 식혜를 보내주신다고 한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잠깐이었지만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아와 양산을 들고 크레센트 공원을 향해 걷는다. 약국이 나타나서 무좀약이 있는지 물었더니, 라미실만 있고 에나멜은 없단다. 시내에 가서 다시 물어봐야겠다.

 

미장원이 나타나서 물어봤다. 염색이 60만동이란다. 그냥 나왔다. 그리미는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돌아오는 길에 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나만 이발소로 가기로 했다. 마사지도 싫다고 하니 나만 내일 오후에 받기로 했다.

 

모두들 시원한 카페 그늘에 앉아서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수다 떨기에 여념이 없다.

 

길을 좀 헤매서 너무 더워져 버렸다. 화장실은 3,000동(150원)이고, 매점을 겸해서 관리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가족이다. 두 사람이 같이 쓰면 5천동이란다. 괜찮아요. 테니스장 앞에서 미모사를 만났다. 신기한 꽃이다. 연꽃은 자그마해서 소박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코코넛 열매가 낮게 열려 있기에 우산으로 따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만일 성공했으면, 공안에게 끌려가서 곤욕을 치렀을지도 모른다. 한국에 있었다면 꼼짝도 안할 33도의 기온이지만 여행을 왔기 때문에 무조건 걸으며 구경한다.  

 

 

 

뜨거운 산책을 다녀와서, 그래도 나무 그늘 아래 부는 바람은 시원, 몸을 식힌 다음에 작은 테이블에 앉아 어제 남겨 온 소주와 통닭으로 점심을 먹는다. 다 못 먹을 줄 알았는데, 성공했다. 오후에는 빈탄 시장과 성당 산책을 하려고 했는데, 그냥 호캉스 하다가 생과일 쥬스나 먹으러 나가기로 했다.

 

설탕을 빼달라고 했어야 제대로 된 맛을 느꼈을텐데, 수박쥬스는 무지하게 단 것을 보니 설탕을 넣은 듯하다. 오렌지 쥬스는 상큼했는데, 터키나 이태리처럼 여러 개의 오렌지를 짜서 주는 맛은 아니다. 수박은 믹서로 갈아준다.

 

의자에 앉아 파리바켓트를 바라보며 쥬스를 마시고 저녁 산책을 하려고 일어섰다. 곧 비가 내릴 것처럼 하늘이 까맣다. 생각해 보니, 한국 시간으로 7시다. 해가 지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서 작은 공원으로 들어섰다. 오전의 공원은 연꽃을 잘 가꿔서 만든 호수 공원이었다면, 이곳은 녹지를 조성해 산책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고, 한쪽에는 테니스 코트가 있었다. 한국인들이 열심히 테니스를 치고 있는데, 잘 친다.

 

비가 한두방울씩 떨어진다. 호텔 앞에 있는 Pho 36으로 갔다. 사람이 아무도 없다. 어떻게 하지. 안에서 작업을 하던 주인장이 주방의 아주머니를 부르신다. 들어오란다. 더운데, 에어컨은 없고 선풍기 두 대를 돌려준다. 모기가 있을지 걱정이 된다. 나올 때 그리미가 보더니, 식탁 아래에 모기불이 피워져 있단다. 아하.

 

까이양과 까이 어쩌고 하는데, 정신이 없다. 그래 일단 시키고 보자.

 

알았다. 까이양은 도가니와 쇠고기 수육이다. 그리미가 고기를 걷어서 나에게 준다. 약간 짜다고 해서 뜨거운 물을 시키느라 한 바탕 난리를 친다. 쩌 누옥 농. 이렇게 말하면 되는데, 결국은 번역기를 돌렸다. 뜨거운 물 한 컵을 받아서 국에 물을 부었다. 세계 어디에서도 쌀국수를 먹지 못하던 그리미가, 이 쌀국수는 맛있게 먹는다. 냄새도 나지 않고, 국물도 시원하단다. 다행이다.

 

손님이 우리 밖에 없으니, 주방 아주머니 두 분이 번갈아 가며 나와서, 이것 넣어라 저것 넣어라 하면서 맛있게 먹는 법을 가르쳐 주신다. 고맙다고 하면서도 우리는 우리의 레시피를 고수한다. 대신에 추천하는 소스들을 찍어서 맛은 보았다. 나쁘지 않지만 개운한 국물에 먹는 것이 더 좋다. 젊은 친구들 한쌍이 들어와서 우리와 똑같은 것을 시켜서 먹는다.

 

베트남은 좀 심심하다.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 사람들은 인기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너무 흔하다 보니 사진 찍자고 오는 사람도 없고, 말을 시키는 사람도 없다. 여행하는 기분이 안난다. 이곳 7구역은 호객행위조차 없다. 그것은 좋았다.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쌀국수를 먹는 동안에 폭우가 쏟아진다. 우주신이 좋아하는 스콜이다. 비가 그치면 또 시원한 밤이 올 것이다.

 

비가 숨을 죽이는 동안에 호텔로 돌아와 비엣젯의 온라인 체크인을 했다. 맨 뒷자리로. 앞자리에는 사람들이 절반 정도 찼다. 어디가 좋지. 모르겠다.

 

예약한 호텔에 문자를 보내어 공항 픽업 여부를 물었는데, 답이 없다. 이메일을 보내야 하나? 그랩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