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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맥베스_욕망을 실현했지만 만족을 얻지 못했다_221122 el veintidós de noviembre el martes_двадцать два ноябрь Вторник

“나는 태양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세상의 질서가 지금 무너져 버렸으면 좋겠어-“ (5막 5장)

 

모든 것을 얻은, 맥베스의 깊은 좌절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악인의 몰락을 바라보는데도 통쾌함이 아니라 깊은 슬픔이 느껴진다. 죽어가면서도 악인인, 자신과 함께 세상도 파멸해 버리기를 원하는 진짜 악인, 그 악인이 슬퍼하는데 같이 슬퍼진다. 그래, 헛된 욕망을 좇는 불쌍한 인생이, 어디 맥베스뿐이랴.

 

1) 적이란 무엇인가? :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는, 모든 인류의 적이 사라져야 된다라고 쉽게 상상한다. 나도 그렇게 상상했다. 요즘 들어 그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는 생각이 든다. 적을 배제할 생각으로는 인류의 행복과 평화가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가족'이거나 '가족이 아닌 친구'다. 적은, 친구의 하나로서 가족이 아닌 이웃 사람이다. 이웃 사람을 배제할 수 없듯이, 적인 친구도 배제할 수 없다.

 

2) 셰익스피어는 나보다 꼭 500년 전인 1594년에 태어났다. 그는 왕과 신이라는 존재 이외에 또 다른 세상의 중심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래도 그의 희곡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신의를 중시하고 배신을 경멸하는 보편 윤리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력의 소유자'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으로, 공동체를 위해 기여할 때는 누구나 칭송을 받는다. 그 칭송이 비록 개인에게 쏟아지는 것이지만, 결코 개인의 것이 아니다. 맥베스는, 스코틀랜드 왕국의 생존과 번영에 기여함으로써 칭송을 받았다. 모든 영광이 맥베스라는 개인에게 집중되었다. 바로 그때, '오만함'이 맥베스의 정신을 좀먹는다. 그는 자신이 '권력의 소유자'라고 착각하여, 시민들을 배신하고 공동체의 적이 되어 버린다. 한 인간의 오만이 공동체를 지옥으로 만든다.

 

“헤커티 : 그는 운명을 비웃고 죽음을 경멸하고 지혜나 은혜, 두려움보다 자기 야망을 위에 놓는 놈이야. 너희도 알다시피 지나친 자신감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큰 적인 법이지.” (4막 5장)

 

*hecate : 달, 대지, 하계를 주관하는 그리스 신화에서의 여신. 밤과 달, 약초와 독초, 무덤과 유령 등 다양한 것과 관련되어 있다. (위키피디아) 영어권에서는 대체로 마녀를 의미하는 모양이다. 

 

3) 가치관이 확고한, 실제로는 편견이 지나치게 강해서 열린 사고를 하지 못하는, 좌우를 포함해서 그런 사람들이 50%라면, 나머지 50%의 사람들은 늘 가치판단을 유보하며 산다. 세상이 평화롭고 정의로울 때는, 이러한 구성이 세상을 제대로 작동시켜 좋은 결과를 낳는다. 그런데, 나치즘과 파시즘이 주도했던 1940년대와 같이 어려운 시대에는, 생존을 위해서 평화와 정의는 내다 버릴 수도 있다는 의식이 강해진다. 공동체가 평화롭게 번영하기 위해서는, 보편타당한 상식과 도덕을 추구해야 하는데, 어려운 때일수록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포자기하고 악의 대열에 동참한다. 비극은 가치판단을 유보한 절반의 사람들이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포기할 때 실현된다.

 

그나마 세상이 지옥으로 변하는 횟수가 적은 이유는, 수가 적은 선한 사람들은 늘 단결하려고 노력하지만, 수가 많은 악인들은 대체로 단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맥더프 부인 : 난 죄지은 게 없어. 하지만 이 세상에서는 죄짓는 게 오히려 칭찬받을 일이고, 착하게 사는 건 때때로 위험한 바보짓이라는 걸 잊고 있었구나. (중략)

아들 : 그럼 맹세하고 지키지 않는 사람은 다 목매달아 죽여야 해요?

맥더프 부인 : 모두 다.

아들 : 누가 매달아요?

맥더프 부인 : 정직한 사람들이.

아들 : 그럼 거짓말쟁이들은 다 바보야. 정직한 사람보다 거짓말쟁이들이 더 많으니까 정직한 사람들을 매달면 될 텐데.” (4막 2장)

 

4) 욕망을 실현했지만 만족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욕망은 인간의 최종 목표가 아니다. 인간 행위의 최종 목표, 절대로 수단으로 되지 않는 마지막 종착점은, '행복'이다. 돈과 명예와 권력과 지식은, 목적이 될 수도 있지만, 행복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수단으로 쓰고 버려져야 할 것들을, 마지막 목표로 생각하고 끊임없이 추구하게 되면, 행복에 이르지 못한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권력이 강해지거나 지식이 쌓여도 '이만하면 되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욕망을 멈출 수가 없다.

 

그러나, 가끔 멈춰야 할 곳을 아는 현자들이 있다. 만족해야 행복할 수 있다.  

 

뱅코 : 내 마음에 거리낌이 없고, 명예를 높이려다가 오히려 명예를 잃는 일만 없다면 (2막 1장)

  맥베스 부인 : 모든 걸 걸었지만 아무것도 얻은 게 없어. 욕망을 이루었지만 만족을 얻지 못했으니까.” (2막 2장)

 

5) 욕망하기를 멈추는 것과 함께 죄악을 멈추는 일도 쉽지 않다.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멈추어야 한다. 잘못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벌을 달게 받고, 다시 출발해야 한다. 잘못을 덮으려 한다면, 끊임없이 죄를 짓게 된다. 노력할수록 좋은 일이 많지만, 죄를 다루는 노력은 다르다. 죄는 덮는 노력을 할수록 더 커다란 죄악으로 나아간다. 

 

“맥베스 : 악행은 악행으로만 키울 수 있다. Things bad begun make strong themselves by ill” (3막 2장)

 

6) 1564년에 태어난 셰익스피어가 1600년 경에 쓴 책이니, 한반도로 눈을 돌리면 허균의 홍길동전이 나올 무렵이다. 강릉 사천에서 태어난 허균은, 백성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호민론'과 인재를 신분에 관계없이 고루 등용해야 한다는 '유재론'을 주장하고, 홍길동전을 한글로 저술하는 등 신분제 유교사회에 찌든 조선을 개혁하려다 능지처참을 당해, 용인시 원삼면에 있는 아버지 허엽의 묘역에 시신 없이 매장된다.

 

셰익스피어는, 스코틀랜드 출신인 제임스 1세가 엘리자베스의 뒤를 잇자, 스코틀랜드 왕조에 대한 충성을 주제로 한 '맥베스'를 쓰고 상영하여 큰 성공을 거둔다. 충성과 반역, 신의와 배신이라는 고루한 주제였지만, 악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신선한 틀로 큰 성공을 거둔다.

 

반면 17세기에 이미 "현대 민주주의"를 지향했던 "천지간의 괴물" 허균의 홍길동전은, 역모를 꾀한 자의 작품이면서 한글로 쓰임으로써, 식자층으로부터 외면되었고, 대한민국에서조차 어린이 동화책으로나 취급받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으니, 재해석 작업을 통해 세계에 알려야 할 인물이자 소설이다.

 

셰익스피어는 37편이라는 많은 작품을 썼고, 계급에 관계없이 모든 영국인의 사랑을 받았으며, 엘리자베스와 제임스 1세의 연합왕국이 대영제국으로 번영함에 따라 세계의 문인으로 추앙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