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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페스트_까뮈_어리석음은 항상 끈덕지다_221229

현실이 보다 소설 같은 세상을 살다보니, 소설 자체보다는, 공감할 수 있는 의견들을 멋드러지게 표현한 문장들이 눈에 들어오는 그야말로 문학작품이다.

 

'시간과 성찰이 모자라 사람들은 무턱대고 사랑을 한다' : 생존 환경이 갖추어지면, 인간은 사랑을 한다. 해야 한다.

'어리석음은 항상 끈덕지다' : 전쟁, 페스트와 같은 재앙을, 인간은, 예방하지도, 쉽게 끝내지도 못한다.

'결코 쉬는 법이 없는 뭔가가 있다' : 우주가 작동하는 것처럼 쉬지 않고 일이 벌어진다.

'그렇게 행동하면 정말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 그렇게 행동하면, 설마하던 일이 벌어진다.

'의미를 잃고 텅 비게 되는, 중요한 말들이 있다' : 정말 중요한 말들이 하찮은 말들에 가려 의미를 잃어 버리게 된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포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사랑은 나로부터 시작하자.

'누가 감히 신에 대한 증오를 선택할 수 있겠는가' : 내가 무신론자가 아니라 만신론자가 된 이유를 알았다.

 

소설의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인간의 행동들을 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고, 인간 존재를 위협하는 것들을 경계하며 살자는 이야기다. 

 

"페스트로 상징되는 생명을 위협하는 어떤 것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1) 의사 리외는, 페스트로 고통받다가 죽어가는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할 일은 하고, 지킬 것은 지키고, 눈 감을 일은 눈을 감는다. 연민과 동정에 빠져 사기를 잃지도 않는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마저 외로운 죽음에 이르게 한다. 

 

2) 신부 파늘루는, 페스트가 타락에 빠진 인간들에 대한 신의 징벌이라고 믿는다. 그렇지만 성실하고 봉사하는 삶을 사는 것으로 신이 내린 징벌을 달게 받으며 당당할 수 있다. 그러다가 신의 뜻이 아닐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선하지만, 신의 뜻으로 이루어지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희망을 갖되 좌절하지 말고, 버리되 버리지 말아야 할 것들을 잘 구분해야 한다.

 

3) 헌신하는 타루 : 인간이 인간을 함부로 대하는 시대에 환멸을 느껴 생명을 존중하고 구하는 일에 나서다가 최후를 맞는다. 인간 역사는 이런 사람들의 평범하고 고귀한 실천으로 유지되고 있다.

 

4) 공무원 그랑 : 손해와 좌절을 감수하고 견뎌낸다. 죽음마저도 견뎌내는 은근과 끈기가 느껴진다.  

 

[ 1부 ]

 

1947년에 발표된 까뮈의 페스트가 프랑스에서 벌어진 일로 알고 있었다. 아니다. 알제리의 오랑이 배경이다. 오랑은 페스트의 도시가 아니고,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는 천국이다. 아프리카를 가야 한다. 오랑을 설명하면서 까뮈는 이렇게 말한다. 

“이곳 시민들은 일을 많이 하지만, 그것은 항상 부자가 되기 위해서이다.” (2%)

 

"역사가 이븐 칼둔은 오랑을 불행한 자의 천국이라고 저술하며, 빈자가 도시 성벽을 통과하면 다시 나올 때에는 부자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나무위키 중에서

 

Until now I knew that Camus' ‘The plague’ had happened in France. Not. The Oran of Algeria is the background. Describing Oran, Camus says : "The people here work a lot, and it's always to get rich." (2%) 

I never thought of working a lot to get rich, but strangely enough, people work to get rich. However, Camus a hundred years ago writes that people in the French colonies work hard to get rich. Apparently, I'm strange'

 

태어나서 한 번도 부자가 되기 위해서 일을 많이 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부자가 되기 위해서 일한다. 그러데, 백 년 전의 까뮈도, 사람들이 부자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한다고 쓰고 있다. 아무래도 내가 이상한 사람인 모양이다.

 

불행한 자의 천국 오랑 전경 : 아주경제 "[지중해 오디세이(19)] 카뮈가 오랑을 '페스트' 도시로 택한 이유는 지역감정?" 중에서

 

익명으로 잊힐 수 있는 죽음에 대한, 까뮈의 오랑에서의 단상

“그의 죽음은, 당황스러운 징후들로 채워진 한 시기를 끝내고, 초기의 놀라움이 점차 공황으로 변해 가는, 더 어려운 시기의 시작을 보여 준다. (중략) 그리고 공포와 더불어 성찰이 시작되었다.” (8% / 무일 씀. 번역한 문장을 다시 쓴 것은 '무일 씀'으로 통일해야겠다. 본래의 번역문을 참고로 해서 소통이 쉽도록 문장을 다듬어 올린다.)

 

기자 즉 언론인은 이제 일반 시민들이다. 기자는 진실을 추구하는 사명감을 갖춘 지식인 집단이 아니라, '대중을 향해 이야기하는 시민'이다. 까뮈 시대에도 언론을 제4부로 할 것인지 아닌지를 두고 고민이 많았던 모양이다. 진실이 거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리외는 더 자세한 얘기를 나누기 전에 기자가 진실을 말할 수 있는지를 알고 싶어 했다." (3%)  

 

재미있는 글이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얼마나 시간이 긴지를 알려면, 하기 싫은 지루한 일을 견디는 것이다. 그러면 시간의 흐름을 모두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시계로 재는 시간은 일정하지만, 시간의 흐름은 상대적이다. 뭔가 재미있는 일을 하다 보면 시간은 빨리 흐른다. 게다가 나이가 들면 행동이 느려지면서,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게 또 재미있다. 노인들은 3분을 2분 40초 정도로 밖에는 느끼지 못한다. 즉 30일을 살았는데, 24일을 산 것처럼 느낀다. 그러니 30일이 흐른 것을 안 노인은, 세월이 빠르다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사는 노인은, 세상 그 누구보다도 세월이 빠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론 : 오래 살고 싶으면, 나이 들어 지루하게 살면 된다.

 

“질문.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 시간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체험해 보기. 방법(가장 길고 가장 불편한 기차 노선을 골라 입석으로 여행하기)"(9%)

 

소설 속에서는 분명 무서운 말인데, 이렇게 줄여 놓으니 무난하다. 안되겠다. 설명해 보자. 인류 중 30% 정도의 특권 계급들은, 어렵고 힘든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떠넘기고, 다르게 살고 싶어한다. 그들에게 위기의 상황이란, 나와 모두가 마찬가지의 삶이 되는 순간이다. 공감 또는 동행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다. 위기임에는 틀림없다.

 

저의 관심사는 딱 하나뿐입니다. 마음의 평화를 찾는 일입니다. (중략 / 마음의 평화가 찾아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우린 지금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9%)  

다시 돌아가 읽다 보니, 이 부분이 마음에 든다. 무작정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면, 사랑을 하자.

 

“시간과 성찰이 모자라 사람들은 무턱대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 (2%)

 

우연의 일치가 많은데, 세월호가 침몰했던 4월 16일도 그런 날이다.

“4월 16일 아침, 의사 베르나르 리외는 진료실을 나와 계단 중간에서 죽은 쥐 한 마리에 발이 걸렸다. “(3%)

 

관리자, 책임자, CEO, 자치단체장, 장관, 대통령이 할 일은, 일어날 일을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다. 만일, 일이 터지고 요란하게 상황을 정리해 가는 관책C자장대가 있다면, 그는 최소한 유능하지 않다.

 

“재앙이란 인간의 척도로 잴 수 있는 것이어서 사람들은 그것을 비현실적인 것, 즉 곧 사라지고 말 악몽으로 여긴다. 하지만 재앙은 사라지지 않으며, 반복되는 악몽 속에서 사라지는 것은 바로 사람들(중략) 재앙이란 항상 있는 일이지만, 막상 들이닥치면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 어려운 법이다. 세상에는 전쟁만큼이나 페스트가 많이 있었다. 하지만 페스트나 전쟁이 들이닥치면 사람들은 항상 속수무책이었다. (중략) “전쟁이 터지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오래 안 갈 거야, 너무 어리석은 짓이잖아.” 그리고 분명 전쟁은 너무 어리석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쟁이 계속되지 않는 건 아니다. 어리석음은 항상 끈덕진 법이다. “(12%)

 

The reason why the victims of the 10.29 disaster 
is being forgotten so quickly 
is because the government's response was excellent. 

Quick, agile, so far as cunning. 

If you read the novel carefully, 
it explains well 
how to kill your memory 
when you are in a crisis. 

I agree. 
It's arduous to remember painful things. 
Let's forget, please, I want to forget

“A dead people has weight only when people see them die. 
Therefore, the 100 million corpses scattered throughout history are 
but a wisp of smoke blooming in the imagination." 

 

10.29 참사로 희생된 사람들이 이렇게 빨리 잊혀지고 있는 것은, 정부의 대응이 훌륭했기 때문이다. 빠르고 민첩하며, 교활하다. 소설을 잘 읽어보면, 위기에 처했을 때, 기억을 죽이는 방법을 잘 설명해 놓고 있다. 동의한다. 괴로운 일을 기억하는 것은 힘들다. 제발 잊자, 잊고 싶다.

 

“죽은 사람이란, 사람들이 그가 죽는 것을 목격하는 경우에만 무게를 갖는 법이다. 따라서 역사에 걸쳐서 산재되어 있는 1억 구의 시신들은, 그저 상상 속에 피어나는 한 줄기 연기에 불과할 따름이다. (13%)

 

이 음산하고도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견디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현실은 훨씬 아름다운데, 까뮈는 자꾸 어두운 구석을 들여다 보려고 한다.

 

“평화롭고 무심한 평온함이 힘 들이지 않고, 재앙으로 인해 발생한 오랜 이미지들을 지워버리고 있다. (중략 / 그러나) 결코 쉬는 법이 없는 뭔가가 이 세상에 있다” (13% / 무일 씀)

 

본질을 호도하지 말자. 고칠 것을 고쳐 나가자. 틀린 것을 바로잡아 가는 것은, 나쁜 짓이 아니라 용기있는 행위다.

 

“저는 표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마치 시민 절반의 생명을 빼앗길 위험이 없는 듯이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행동하면 정말 그렇게 될지도 모릅니다.”(17%)

 

[ 2부 ]

 

함께 이야기하면, 뜻이 강해지고, 강화된 뜻이 행동을 유발하고, 행동들이 정화되어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으로까지 이어진다는 생각이 있지만, 쉽지 않다. 까뮈는, 이것을 100년 전에 간파했다. 아니다. 160년 전에 J.S. 밀이 '자유에 대하여'를 쓰면서 이미 간파했다. 다수는, 외치는 소수의 목소리에 귀를 닫거나 뭉개버린다.

 

“처음에는 우리의 심장에서 피를 흘리며 나왔던 말들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의미를 잃고 텅 비게 되었다. (중략) 우리는 결국 수감자가 되어 과거밖에 없는 자들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 가운데 몇몇은 미래를 기대하며 살려는 유혹을 갖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이런 유혹을 재빨리 포기했다. 적어도 아직은 그럴 수 있는 자들은, 상상이란 그것을 신뢰하는 자에게 결국 상처를 주고 만다는 것을 겪으면서 말이다.” (22~3%)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다.
생각을 실현하는 존재로서,
늘 미래를 지향한다.

그런데 인간은, 
미래를 실현하지 못하는 것도 병이 되고, 
미래를 불안해 하는 것도 병이 되는, 
매우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빠져 있다. 

인간은, 
몸이 건강하다면 과거의 기억만으로 살 수 있을까? 

가능하다고 본다. 

행동을 유발하는 의식과 언어가, 
늘 과거에 머물러 있다고 해서,
생명의 순환이 멈추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상이란, 미래로 나아가는 뇌활동이다. 
상상하고 실현하지 못하면, 
결국 불안해진다. 

불안은 인간의 정신을 좀먹고, 
피폐해진 정신은 육체를 병들게 하여,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다. 

상상하지 않는 편이 더 행복할 수도 있다. 
과거에 갇힌 삶이.

나는 틀렸다. 
몸이 건강하든 아니든 
과거의 기억만으로는 살 수 없고, 
새롭고 즐거운 기억들로 해마들을 채워나가야 
비로소 내 생명의 순환을 이어나갈 수 있다. 

 

또 다른 하나의 삶은, 신에게 귀의하는 것이다. 쉽지는 않지만 편한 길이기도 하다. 나의 단순한 의무만 지키면 된다. 페스트 또는 악이 창궐하는 상황에서 그것 또한 쉽지 않다고 까뮈는 말하고 싶은 모양이다. 신은 우리를 그런 죽음의 고통에 두지 않을 것이며, 생명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약간의 선한 마음과 우스꽝스러운 이상을 가지고 페스트나 창궐한 악과 싸워야 한다. 

 

“왜 당신 자신은 신을 믿지 않는데도 그렇게 헌신하는 겁니까? (중략) 2 더하기 2는 4라고 가르친다고 교사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는다. (중략) 2 더하기 2는 4라는 것을 입증하는 쪽을 선택한 것은 칭찬받을 만한 행동 (중략) 만일 어떤 전능한 신을 믿는다면, 사람들을 치료하는 것을 그만둔 다음, 이런 수고를 신에게 넘겼을 것이다. (중략) 자기 자신을 완전히 포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세상 그 누구도,  (중략 / 죽음으로 세계를 정리하려는) 하느님은 믿지 않으며, (중략 / 페스트를 포함해서) 창조되어 있는 세계에 맞서 싸움으로써 진리의 길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중략) 계속 싸워야지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 (중략) 이 진리는 대단한 것이 하나도 없는 필연적인 것이다. (중략) 이야기 속에 영웅 한 명이 정말 필요하다면, (중략) 그저 약간의 선한 마음과 보기에도 우스꽝스러운 이상만을 가지고 있을 뿐인 이 보잘것없고 존재감 없는 영웅을 제안한다.”(39~42%)

 

[ 3부 ]

 

페스트 모두의 문제였다. 그래서 만족스럽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인간은 이렇게라도 스스로를 위안한다. 물론 우리가 모르는 저 깊은 곳에 우리와 다른, 페스트나 전쟁 앞에서도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이 많이 있다. 모르는게 약이다.

 

“페스트가 모두에게서 사랑의 힘과 우정의 힘까지도 앗아가 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랑은 약간의 미래를 요구하는데, 우리에게는 순간들밖에 없었기 때문이다.”(56%)

 

1) 전쟁과 페스트, COVID-19, 참사의 공통점

     ㄱ) 누군가에게 엄청난 깨달음과 각성을 준다.

      ㄴ) 누구도 자기가 끝내고 싶을 때, 끝낼 수 없다.

      ㄷ) 누군가는 자기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로 삼는다.

      

2) 전쟁과 페스트, COVID-19, 참사의 다른 점

       ㄱ) 전쟁은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데, 페스트와 COVID-19, 참사는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다.   

 

[ 4부 ]

 

좋은 생각이다. 다만, 함께 행복하기 위해 너무 많이 자신을 희생해서는 안된다. 적당한 수준에서 잘 조화시켜야 한다. 우리라는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너무 많이 희생하신 분들'에 대해서는 특별히 기억하고 보상해야 한다.

 

“사랑과 행복을 우선시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중략) 그렇습니다. 하지만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울 수 있는 일입니다.”(64%)

 

수학과 과학과 논리를 좋아하는 내가 왜 만신론자인지를 설명하지 못했다. 파늘루 신부의 강연에서 그 답을 찾았다. 무신론을 믿기에는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터무니없는 일을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신을 증오하는가, 아니면 사랑하는가를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누가 감히 신에 대한 증오를 선택할 수 있겠는가? (중략)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힘든 사랑입니다. 이것은 전적인 자기 포기와 자기 인격의 무시를 전제로 합니다.”(70%)

 

“사람들의 모든 불행은 그들이 선명한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데서 기인한다”(78%)

 

[ 5부 ]

 

페스트나 전쟁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은,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미련스런 마음들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계속해서 불행과 교훈을 함께 보여주지만, 인간은 늘 잊는다. 잊어야 삶이 평안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처절한 반항심 사이를 하나의 커다란 기운이 계속 돌아다니며 겁에 질린 이 존재들에게 진정한 고향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들 모두에게 진정한 고향은 질식된 이 시의 담 저 너머에 있었다. (중략) 인간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보다 찬양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것만큼은 말하기 위해서 (중략) 참을성 있게 기다리다가 사람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92~95%)

 

까뮈도 세상을 어떻게 이끌어가야 할 지는 모른다. 뻔하지만 모두가 동의하는 질문으로 간다. 각자의 선택이 남는다.

 

‘페스트’로 상징되는 ‘악(惡)’ — 그것이 ‘전쟁’이든, 전체주의든,  질병이든 간에 — 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간은 과연 어떤 도덕적 기준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지”(작품해설 중에서)

 

고난을 이겨내고 선의로 포장된 길을 걸으며, 제법 괜찮은 결과를 얻어내면, 기쁘다.

“인간의 부족한 사랑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에게는 가끔씩은 기쁨이 보답하러 와야 옳다.”(무일 씀 / 92%)

 

이 애매모호한 이야기가 소설의 결론이라는 생각이 든다. 페스트나 참사가 진행되는 동안에 사람들의 생각은 이렇게 나뉜다.

 

"이런 일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워 보일 것이고, 반대로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일로 보일 것이다." (3% / 무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