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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원이야기

만물의 쉼터를 만들다_220910 el diez de septiembre el sábado_десять Сентябрь Суббота

코로나에 걸려 8일을 약기운에 취해 살다가 8일 저녁 12시 반에 무일농원으로 출발. 아들들은 동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출발해 죽산에서 만나기로 했다가 길이 밀려 시간을 늦춰 부천에서 출발하기로 했는데, 아들들이 술 마시고 늦게 오는 바람에 더 늦어졌다. 양지에서 빠져야 했는데, 고속도로를 타는 바람에 더 늦어졌다. 네비 말 좀 듣고 살아라.

 

새벽 3시에 도착했더니 영 비몽사몽이다. 다음에는 늦어도 10시에는 출발하자.

 

바닥이 차다고 하는데도 이불을 더 깔아주지 않고, 창문을 열어놓은 채 잠을 잤더니, 몸이 차가웠다. 9일 아침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크로아상과 커피를 아침을 먹었다. 어머니가 준비해 둔 녹두전을 부치기 시작한다. 넓다란 전기 후라이팬에서 그리미와 함께 한 번에 다섯 장씩 부쳐냈다. 막판에 배추전까지 부쳐내면서 거의 2시간이 걸렸다. 힘들지 않다고 하는데도 얼굴이 발갛다. 녹두전에 소주를 한 잔 두 잔 곁들였다.

 

출발 4시간만에 동생네가 도착해서 점심으로 녹두전과 배추전을 맛있게 먹었다. 동생네가 전을 부치는 동안에 그리미는 혼자서 나물을 무쳤다. 고사리, 도라지, 고구마순. 나는 술 김에 취해 쉬었다.

 

마을 뒷산으로 산책을 나갔다. 그리미와 함께 밤을 주웠다. 30알 정도 주워서 내려왔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어머니가 쪽파를 심어야 한다고 해서 다섯 명이 달려들어 마늘밭 입구에 쪽파를 싶었다. 그리미는 안했으면 좋았을텐데.

 

저녁은 호주산 살치살을 구워 참기름 소금장에 찍어서 먹었다. 저녁 식사와 함께 1.2kg을 먹었는데, 훌륭한 맛이었다. 참기름의 고소한 맛이 고기의 비린내를 잘 잡아주었다. 조카가 고기를 맛있게 잘 구워 주었다.

 

고기와 술을 안주로 하여 나눈 대화는 자못 심각하다. 꼰대인 나와 동생에 대한 집중 성토가 이어졌다. 제발 먼저 공감해 달라. 공감을 한다면 표현해 달라. 맞는 말이다. 공감하고 표현해야 한다. 그건 그렇다 치고, 내가 느낀 것.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고 살려고 노력했다. 나와 내 가족들과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삶의 고통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살아왔다. 아니었다. 나는 세상 속에서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세상 속에서 살았으되 내 머리는 "내 생각의 우물" 속에 빠져 살았다.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고 살지 못했다. 세상과 세상 사람들은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방바닥이 차다는 그리미의 말을 이틀 째 무시하고 창문을 열고 잤더니 탈이 났다. 차레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리미의 허리가 삐끗했다. 일어나지를 못한다. 차례를 지내면서 원적외석 찜질에 마사지를 계속해줘도 효과가 없다. 차례는 다섯 번에 걸친 검토끝에 북어포, 훈제 삼겹살, 약과 등등 준비한 것을 하나도 빼지 않고 다 차릴 수 있었다. 

 

오랜만에 차례상에 술을 마음껏 마셨다. 저녁 늦게 출발하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영화를 보고 푸욱 쉬었는데, 이번에는 고추를 따자고 하신다. 노동쟁이 누나가 새벽부터 일어나 도라지밭의 풀을 다 매고 났더니 마지막 고추씻기 작업이 생각나신 모양이다. 뭉기적 거리다가 옷을 갈아입고 고추를 따러 나갔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따가운 햇살이 내리쪼인다. 12시가 넘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계속 일하기로 했다. 도라지를 캐고 온 동생까지 합류해서 셋이서, 큰아들까지 합류해서 넷이서 고추를 땄다. 조카가 시원한 식혜를 가져와서 잘 마시고, 점심도 거른채 계속 일을 했다. 고추를 다 따고 났더니, 고추나무를 베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초기에 톱날을 달아서 고추나무를 잘랐다.

 

동생과 큰아들은 그 사이에 고추지지대로 썼던 철근을 모두 제자리로 옮겨 놓았다. 동생이 한 말.

 

"우리가 이렇게 농사를 지어 만물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

 

고추나무를 자르고 났더니 이번에는 고추나무를 치우고 싶었다. 제수씨까지 합류해서 고추나무를 치우는 사이에 누나는 고구마순을 따고 깻잎을 뜯었다.

 

고추나무를 치우고 났더니 이번에는 들깨밭에 풀을 대충이라도 매고 싶었다. 30분 정도 하고 났더니 지친다. 예초기를 매고 마당으로 갔더니 풀을 베고 싶어진다. 풀을 베었다. 이러다가 큰 일 나겠다 싶었으나 일은 할 만했다. 누나가 뽑은 풀과 내가 베어낸 풀을 수레에 실어 개천둑에 버리고 왔다. 네 번을 왕복해야 할 정도로 엄청난 양이다. 

 

일을 끝내고 씻었더니 5시다. 저녁에는 차례상에 오른 생선들을 중심으로 식사를 했다.

 

이야기의 주제는 성묘다. 일단 어머니를 모시고 다섯 명이 9월 20일에 성묘를 가기로 했다. 마침 진도 쏠비치에 숙소가 있다. 20만원. 나중에 집에 와서 검색을 해 보니 16만 8천원에 예약을 할 수 있다고 해서 간식비를 벌었다.

 

저녁을 먹고 얼음깨기와 블랙잭으로 놀이를 했다. 순간의 선택이 가져오는 엄청난 후폭풍. 한 시간을 즐겁게 보냈다.

 

우리가 먼저 집을 나섰다. 네비에 길은 온통 빨간색인데, 시간은 90분이 걸린단다. 이번에는 네비를 믿고 고속도로를 탔다. 아니었다. 양지로 갔어야 했다. 버스전용차로를 위반한 차들이 네비의 시간을 엄청 단축시켜 놓은 것이다. 그것을 몰랐다.

 

12시부터 푹 잤다. 그리미는 허리와 몸살기운으로 계속 고생을 한다. 일도 많이 하고, 잠도 춥게 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