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월이 열흘 넘게 지나버렸다. 설과 여행 등을 포함하면 열흘 이상이 더 공부도 못한 채로 지나갈 것이다. 그러면 올해도 벌써 20일이 지나버렸다. 큰일났다, 공부할 것이 많은데. 그래서 왠만하면 다른 책들은 읽지 않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책들만을 잠깐씩 읽으려고 했는데, 책상 정리를 하다가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2004년에 구매해서 도서관에 비치되었다가 읽는 사람이 없으니 폐기처분된 것을 가져다 둔 것이다. 서문이 강렬하다. 차윤정은 왜 '사람들의 자만심'을 무너뜨리는 투사가 되어야 했을까. 숲이 없으면 정말로 인간이 살 수 없을까?
"과연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가운데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은 얼마나 될까. (중략) 한 해 동안 숲의 높이는 얼마나 자랄까? 1헥타르의 숲에 저장된 탄소량은 얼마나 될까? (중략) 사람들의 숲에 대한 자만심을 무너뜨리기 위해 나는 거의 투사가 되었다. (중략) 사람은 숲 없이 살 수 없지만 숲은 사람 없이도 아주 잘살 수 있다" (4~5쪽)
정말 큰일이다. 나는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있을까. 없다. 숲이 자란다고? 그렇다면 숲의 높이를 어떻게 측정할까? 해발고도로? 꽂아놓은 막대기로? 숲의 높이는 왜 측정할까? 숲이 자라는 것을 알아서 뭐하게? 숲이 죽을까봐 걱정이 되서? 숲은 넓어질까? 숲은 뭐지? 1헥타르의 숲에 저장된 탄소량을 왜 측정하는가? 지구의 온도 상승 때문인가? 지구 온도를 낮춰야 하는가? 지금 수준의 온도로 유지하면 되는가? 지구의 평균온도는 어떻게 측정하는가? 끝도 없이 의문이 솟는다. 살아있는 동안에 답을 듣고 끄덕일 수 있을까? 정말 큰일이다.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
시공간은 하나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시공간은 분리되나? 숲이라는 공간이 시간에 반응한다고. 시공간은 하나의 실체인데. 진화가 오랜 세월에 걸쳐 일어났다고 하면, 시공간이 분리된 배경에서 그렇다는 것인가?
저자가 다윈을 언급하는데, 생물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는 마음이 특별할 것이다. 올해 말에 꼭 읽도록 하자. 월리스의 영어논문도 찾아 두었는데, 참고 있다.
숲과 생명, 생물을 분리해서 쓰고 있는데, 숲은 생명과 생물과 돌멩이와 물과 낙엽이 어우러진 곳이다. 숲 자체가 생명이고 생물이다. 나도 생명이고, 동식물이나 바이러스도 생명이고, 물과 돌과 바람까지도 모두 생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혼'이 오히려 생명이 아닌 허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숲은 생명이고, 끝없이 변한다.
"생물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스스로가 환경을 변화시키고, 다시 변화된 환경에 적응된 생명들로 숲이 재구성된다는 것이다. 결국 숲이 선택한 생물이 환경을 변화시키고 다시 그 환경에 생물들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숲은 시간에 반응해서 수동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발전한다." (6쪽)
투사가 되었다는 저자의 강렬한 선언에도 책 내용은 밋밋하다. 꽃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식물진화의 중요한 부분이 꽃잎의 발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식물이 진화했다고 하면서 무엇이 어떻게 진화했는지에 대한 관심은 아예 없었다. 그랬겠지 정도다.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
"바람만으로는 복잡한 식물 세계에서 자신의 짝을 찾는데 한계가 있었다. 뭔가 특별한 구조가 필요했따. 꽃잎의 발달은 이런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발명품이다. 꽃이 진화를 완성하는 마지막 시기에서 이루어진 꽃잎의 발달은 자연에서 부소적이면서도 가장 극적인 효과를 거두었다. (중략) 화려한 꽃을 피움으로써 더욱 확실하게 씨앗을 잉태할 수 있게 되었지만 꽃을 피우는 나무들은 꽃잎이 없는 꽃을 피우는 나무들에 비해 대부분 수명이 짧다. 꽃을 피우기 위한 대가는 씨앗을 만들고 자손을 퍼뜰릴 수 있는 기회를 갖는 대신 숲의 지배자 자리를 영원히 넘보지 말 것이며 긴 수명을 포기하는 일이었다." (45쪽)
(to be continued like reading a new testa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