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의 배경은, "풍요"와 "냉전"이다.
1) 풍요 : 2차대전 이후 1945년부터 30년 동안 미국은 전 세계가 필요로 하는 것의 절반 가까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무리 많이 생산해도 가격이 떨어지지 않아 이윤을 남겼고, 힘들지만 일자리는 넘쳐났다. 내 차와 내 집을 마련했고, 더 나은 교육을 받아 더 많은 지식을 축적할 수 있었다.
2) 냉전 : 2차대전에서 나찌와 군국주의 체제를 무너뜨렸던 동맹국 소련의 사회주의 체제는, 유럽대륙의 절반과 중국을 차지해버렸다. 미국내에도 사회주의와 소련, 중국을 대안세력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천만다행인 것은 스탈린과 모택동의 폭압이었다. 사회주의는 대안이 아니라 추방되어야 할 악이었다. 새로운 적에 대항해서 직접 전쟁은 할 수 없지만, 전쟁상태를 유지해야했다.
2차대전의 승리로 미국은 빈부격차를 느낄 수 없을만큼 풍요로웠지만, 미국을 쓰러뜨릴 수도 있는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적에게 조금이라도 이로운 생각은 거부한다는 냉전 의식이 사회를 옥죄고 있었다. 풍요로웠지만 자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이외의 모든 생각은, 처벌했다.
모두가 숨막히는 풍요를 즐기고 있을때, 이유를 알 수 없는 젊은이들의 반항이 시작된다. 교육도 종교도 기성사회도 출세도 아닌 것같다. 스스로 이유를 설명할 수도 없고, 무엇을 어떻게 바꾸자는 제안도 없다. 그냥 싫다. 그런 젊은이로 등장하는 콜필드의 모습은 정말 이상하면서 실망스럽다. 여리고 착하고 예의바르면서도, 더럽고 지저분하고 무기력하다.
"이 세상에는 인생의 어느 시기에는 자기 자신의 환경이 도저히 제공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찾는 사람들이 있는 법인데, 네가 바로 그런 유의 사람이야."
선생님은 콜필드의 방황과 타락을, 이룰 수 없는 꿈을 갖고 있는 젊은이의 좌절이라고 멋드러지게 분석한다. 그러나 실제로 콜필드에게는 꿈이 없고 졸릴 뿐이다. 순박한 아이들을 보호하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만은 아름답다. 그것으로 끝이다. 그의 삶과 의식은 끊임없이 비틀거릴 뿐이다.
이 소설의 모든 게 기대와는 반대다.
콜필드는 공부를 못하지만 뛰어난 작가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형은 타락한 작가인 줄 알았는데, 성공한 영화 시나리오 작가다.
선생님은 문제를 해결해 주는 좋은 분인줄 알았는데, 욕망에 빠진 동성애자였다.
친구들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좋은 품성을 지닌 줄 알았는데, 그냥 스쳐 지나간다.
여자 친구는 그를 이해 못하는 속물인 줄 알았는데, 그의 만행에도 관대하다.
첫사랑과 멋진 해후를 할 줄 알았는데,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콜필드는 멋진 방황을 끝내고 개과천선 할 줄 알았는데, 전혀 변화가 없다.
왕자와 공주가 등장하는 꾸민 이야기 말고,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가 진짜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막상 그런 소설을 읽으니,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인간은 끊임없이 생각을 하고 행동한다. 생각이 빠지고, 생각과 행동이 괴리된 사람들의 이야기 또한 왕자와 공주의 이야기만큼이나 허망하다.
인간은 제법 그럴싸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있는 존재다. 아무리 시대가 그랬었다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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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전집을 한 번 다 읽어보자는 생각이 들어,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비롯한 몇몇 책들을 읽기 시작했지만 끝을 보지 못했다. 돈키오테와 레미제라블도. 굉장히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책읽기 모임은 좋은 계기가 되고 있다. 한 달에 한 권을 반드시 끝까지 읽고 이야기를 나누자는 원칙이 제일 좋았다. 끝까지 읽기를 멀리하는 나로서는 말이다.
1.
첫 문장이 허접해서 읽지 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매우 덜떨어진 아이들이 주절대는 것처럼 시작하는 이야기가, 신선하기도 하다. 장쾌한 산하를 시시콜콜 나열하느라 지루하게 만드는 한국 장편소설과는 차원이 다르다. 1919년에 태어난 샐린저 J.D. Salinger가 1951년에 발표했다.
사람들의 "~ 같아요" 화법에 대해서 지친 나로서는 눈길이 가는 화법이다. 건들거리기는 하지만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정말로 이 이야기를 (중략)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이야기들에 대해서 알고 싶을 것이다. (중략) 난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지가 않다. 우선 그런 일들을 이야기하자니 내가 너무 지겹기 때문이(다. / 중략) 영화는 내가 정말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다. 내 앞에서 제발 영화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9~10쪽)
2.
홀든에게 낙제점을 주어 퇴학을 당하게 한 역사선생님과의 만남은 도대체 뭘까. 보통의 이야기는 아주 나쁜 선생에게 당하다가 저항하거나, 아주 좋은 선생님을 만나 깨달음을 얻어 새로운 희망을 찾는다는 이야기다. 보통의 이야기와는 다르다. 선의를 가진 경력있는 선생님이지만 학생들과는 전혀 소통이 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학생들의 학교가 답답한 곳인지 궁금하다. 교육과정을 3개 정도로 나누어, 학생들 스스로 선택하고 감당 가능한 것을 배울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자네 머릿속에 분별이라는 걸 넣어주고 싶어. 도와주고 싶다는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한은 도와주고 싶어. (중략) 하지만 선생과 나는 너무나도 극과 극을 달리고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27쪽)
5.
똑같이 '같아요'를 쓰고 있지만 생각이 분명한 이런 말도 좋다. '내가 참고 함께 하지 뭐.'
"난 맬에게 애클리를 데리고 가도 좋은지를 물어보았다. (중략) 맬은 그리 좋은 생각인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게 해도 상관은 없다고 대답했다." (54쪽)
6.
제인 갤러허라는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들어온 스트라드레이터와 싸우다가 홀든은 두들겨 맞는다. 이웃에 살던 제인을 좋아했었던 모양이다. 어렵게 살아온 그녀를 욕망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친구에게 더 큰 분노를 느꼈고, 미리 말리지 못했던 자신에 대해서도 화가 났다. 그녀를 생각하면 친구를 말려야 하는데, 친구를 믿으면서도 믿지 못하니 망설이다가 뒤늦게 자신의 우유부단함에 화가 난 것이다. 뒤늦게라도 친구에게 경고한 것으로 만족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살면서 그토록 많은 피를 흘린 것은 처음 보았다. 입과 턱이 온통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잠옷과 목욕 가운에까지 온통 피투성이였다. 그 모습은 어느 정도는 나를 두렵게 만들기도 했지만, 매혹시키는 부분도 있었다. 피를 흘린 덕인지 내 모습은 강인해진 것처럼 보였다. 난 이제까지 두 번밖에 싸워보지 못했고, 두 번 다 졌다. 난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사실 난 평화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67쪽)
8.
아무리 막 쓴다고 해도 의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8.에서는 자식들에 대해 냉정하지 못한 부모들에 대한 이야기다. 밖에서 새는 바가지 집에서도 샐테지만, 부모들은 자식들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럴 때 아이들은 어떻게 할까. 현실은 부모들이 잘 알테니, 부모들의 꿈이라도 깨지 않도록 그냥 맞춰준다. 친구 부모님에 대한 예의다. 내 부모님을 만났을 때 친구들도 예의를 지켜주기를 기대하면서.
"그 애는 아주 예민하거든. 그래서 이제까지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린 적이 한번도 없어. 아마 그 또래 다른 아이들보다 모든 일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인 것 같아. (중략) 난 그녀를 자세히 쳐다보았다. 그렇게 멍청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자기 아들이 얼마나 멍청한지 정도는 알 수 있을 것 같이 생겼다고나 할까. 하지만 어머니들이란 전부 다 조금씩은 제정신이 아니기 마련이다." (79쪽)
9.
집과 학교,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떠난 아이들은 어디로 가서 누구와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것일까. 쉼터가 마련되어 있지만, 큰 사고가 터지지 않는 한 그런 곳으로 가지는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의논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길을 잃었을 때, 친구나 가족에게 전화해야 한다. 그런데 전화를 못한다. 공동체 전체가 길잃은 아이들이나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풀 준비가 되어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가장 먼저 한 일은 공중전화를 걸러 간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싶었다. (중략) 그렇지만 누구에게 걸어야 할지 아무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중략) 결국 아무에게도 전화를 걸지 않았다 전화 부스에서 한 20분 가량 지체한 모양이었다." (84~5쪽)
8부터 17까지 100쪽이 넘도록 소설은, 홀든에 대한 몇 가지 사실들을 알려주고는 있으나마나한 작은 이야기들과 변덕스러운 마음들을 나열한다. 평범한 아이의 외롭고 의미없는 일상을 이렇게까지 나열하고 싶었던 이유는 뭘까. 아무 것도 아닌 것의 묘사도 소설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일까. 2차대전 이후 미국의 청소년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를 묘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소설이 남아있지 않다면 평범한 아이들의 삶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전혀 없다. 악하거나 선하거나 위대하거나 사악한 사람들을 주제로 한 소설은 재미는 있지만, 진짜 현실은 아니다. 재미를 추구하는 영화를 싫어한다고 단언하는 홀든의 생각 속에서 샐린저의 의도를 짐작해 본다.
"계속 사과도 하고 변명도 해보았지만, 그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혼자 있게 해달라는 말만 계속 되풀이할 뿐이었다. 결국 나는 어쩔 수 없이 혼자 나오고 말았다.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 시간이 너무 짜증났다.
사실 나도 왜 그녀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매사추세츠나 버몬트 같은 데로 가자는 말 말이다. 그녀가 같이 가고 싶다고 했어도, 난 데리고 가지 않앗을 것이다. 그녀와는 정말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가장 끔찍한 일은 내가 그 말을 했을 때는 진심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정말 무서운 일이었다. 틀림없이 난 미친 게 분명했다." (180쪽)
18 ~19
이야기는 끝을 향해 가는데도 책을 읽는 기쁨을 느낄 수 없다. 유튜브를 검색해 보니 이 소설에 대한 많은 서평들이 올라와 있다. 일단 다 읽고 나서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한 번 들어보고, 다시 한 번 읽도록 해야겠다.
샐린저 slainger는 1919년 기미년생이다. 이 소설은 1951년 출간되었다. 미국에서 여성들이 선거권을 가진 것은 1920년의 일이다. 여성들의 지위가 점점 개선되는 시기에 쓰여진, 남자 아이들의 성장 소설이다. 문화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좋다는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는 천박한 수준이다.
16살의 고등학생이 왜 이렇게 술을 마실까. 그러고보니 제목의 호밀 rye도 위스키를 빚는 재료다. 궁금해서 구글검색을 했더니 놀라운 내용이 나온다. 인디언을 살륙해서 쫓아내고, 노예들을 부리며 번영을 구가했던 미국이 술 없이는 살 수 없는 나라였다고 한다. 처음 듣는 소리다.
"특히 금주주의 페미니스트 운동가 캐리 네이션(Carrie Nation)은 '예수의 불독'을 자칭하며 술집을 폐쇄하기 위해 직접 도끼질을 하다가 30번이나 체포되기도 했다. 당시는 보수성향 여성단체뿐 아니라 노동자 여성들의 의견을 수렴한 사회민주주의나 사회자유주의 정당들도 이 시대에는 금주가 대세였다(예컨대 핀란드 사회민주당). 여성들이 계급의 고하를 막론하고 금주를 요구한 이유는 남편이란 짐승 새끼들이 나갔다 오면 번 돈을 술로 바꿔서 처먹고 처자식들을 두들겨패기 때문이었다. 이런 면으로 본다면 페미니스트들의 금주법 찬성은 단순 정치적 운동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운동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실천적인 필요에 더하여 과학과 제도의 발전으로 인간을 개조할 수 있다는 진보혁신주의적 사회기풍이 더해지면서 진보적 정치의제로서 금주법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나무위키 중에서, 미국의 금주법 https://namu.wiki/w/%EA%B8%88%EC%A3%BC%EB%B2%95/%EB%AF%B8%EA%B5%AD)
뭐 하나는 건져야 하지 않을까. 군대 즉 전쟁을 수행하는 집단에 대해 경멸하는 부분이 나온다. 전후 설명이 없으니 알 수 없지만,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은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전쟁과 군대는 신물나는 단어였을 것으로 이해한다. 굳이 끔찍한 전쟁의 경험이 없더라도 적어도 전쟁에 대해서는 두려워하고 경멸하는 태도를 가졌으면 좋겠다. 전쟁을 경멸한다고 해서 북한이나 일본이 대한민국을 침공할 경우에도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총을 들고 나설 것이다. 적들을 물리치러. 아, 제발 그런 끔찍한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전쟁을 예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형은 휴가를 나와서는 온종일 침대에만 처박혀 있었다. 거실에조차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해외로 파병을 나가, 전쟁에 참전하게 되었지만, 형은 부상을 입었던 적도 없었을 뿐 아니라, 총알 한방 쏴보지 못했다고 했다. 온종일 사령관의 차를 운전하면서, 카우보이 같은 장군을 모시고 다녔을 뿐이라는 것이다. 언젠가 형은 앨리와 내게 만일 누군가에게 총을 쏴야 하는 일이 있었대도, 어느 쪽으로 총을 쏘아야 할지 못랐을 거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군대란 곳은 나치들만큼이나 나쁜 놈들로 가득 차 있다고도 했었다." (188쪽)
20
꼭 많은 것을 기억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누군가 열심히 생각하고 썼다면 열심히 읽고 많은 것을 기억해 주는 것이 좋다. 술에 취해 위로받을 여자도 찾지 못한 홀든은 '호수를 잃어버릴 오리들'을 걱정하며 공원 호수를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그러다가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죽더라도 공동묘지에 묻히기는 싫다. 동감이다.
"사람들이 나를 무덤에 집어넣고, 묘비에 이름을 새기는 장면을 떠올려 보았다. 그렇게 되면 내 주위에는 온통 죽은 사람들로만 가득하게 될 것이다. 정말 누군가가 내 시체를 강 같은 곳에 버려주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수밖에 없다. 무덤 속에 들어가는 것만은 정말 싫었다. 일요일마다 사람들이 와서 남의 배 위에 꽃다발이나 얹어놓는 바보짓들을 하는 게 정말 싫었다. 죽고 나서도 꽃을 원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무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207쪽)
21 ~ 26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긴장하며 읽었다. 어제 28일 밤은 자정이 다 되가도록 읽었고, 오늘 새벽에 잠이 잠깐 깨어 두 쪽을 읽었다. 그리고 실비 바르땅의 '그들 les hommes'와 자넷트의 '나는 반항한다 soy rebellde'를 한 시간이 넘도록 들고, 친구들에게 링크를 걸어 준 다음에 감미로운 팝송을 배경으로 틀어놓고 다 읽었다.
동생을 만나고 집을 떠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한 홀든의 찌질한 사연이다.
모든 게 기대와는 반대다.
홀든은 공부를 못하지만 천재 작가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형은 타락한 작가인 줄 알았는데, 성공한 영화 시나리오 작가다.
선생은 문제를 해결해 주는 좋은 분인줄 알았는데, 욕망에 빠진 동성애자였다.
친구들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좋은 품성을 지닌 줄 알았는데, 그냥 스쳐 지나간다.
여자 친구는 그를 이해 못하는 속물인 줄 알았는데, 그의 만행에도 관대하다.
제인 갤러허와 멋진 해후를 할 줄 알았는데,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홀든은 멋진 방황을 끝내고 개과천선 할 줄 알았는데, 전혀 변화가 없다.
오누이는 서로를 사랑하고 묶여져 있다.
홀든은 그러지 못했지만 어린 여동생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도록 호밀밭을 지키기를 원한다. 끝.
유튜브의 서평을 읽으려다가 그만두었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말을 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 (279쪽)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고귀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비겁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