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첫 책으로 좋은 책이다. 20세기 인류의 모습을 재미있게 그려낸 유쾌하고 슬픈 소설이다. 영화를 낄낄거리며 두 번이나 재미있게 봤었는데, 원작도 좋았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은 흥미롭고 즐겁다. 사랑의 대상은, 사람의 육체와 정신, 자연과 문학과 예술을 가리지 않는다. 무엇이든 꿈꾸고 사랑한다.
2) 자유와 낭만과 사랑을 찾는 사람들이 독재와 자본의 폭력 앞에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안타깝다. 위험한 것은 사상이 아니라 독재와 자본, 그리고 힘이 센 다른 나라이다. 공산주의자 네루다와 마리오는 평화와 사랑을 원했다. 사회주의자 아옌데는 가난으로부터의 해방을 원했다.
20세기 인류의 모습을 재미있게 그려낸 유쾌하고 슬픈 소설이다.
1. 전달하는 것이라고는 감정 뿐이지만 이런 문장들이 상상의 즐거움을 준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마틸데는 어떤 방식으로 영감을 주었을까.
네루다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를 통해 하찮은 표절자들에게까지
영감을 준 마틸데 우루티아에게
"그때마다 질투심이 일어났다. 그러나 언젠가 나도 작품을 끝마쳐야지 하는 자극이 되기는커녕 차가운 물벼락을 뒤집어쓴 느낌만 들었다." (10쪽 / 누군가 나보다 잘 하고 있다면, 자극이 되어 열심히 하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라 좌절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좌절의 끝에서 자신을 사랑하고 격려할 수 있다면 일어날 수 있다.)
2. 이야기는 인간만이 만들 수 있다.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삶이라도 사랑이 있다면 이야기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이 보여주고 있다. 오징어게임이나 지옥처럼 너무 끔찍해지거나 일본 영화들처럼 이유없이 육체를 탐하는 것들보다는 이런 삶의 이야기가 공감하기에 좋다. 최근 드라마 중에 최고는 '나의 아저씨'다.
"나는 베아트리스 곤살레스가 산티아고 법정에 왔을 때 여러 번 점심을 같이 했다. 그녀는 자신을 위해 (얼마가 걸리든, 얼마나 많은 허구가 가미되든 간에) 마리오의 이야기를 써주기를 원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양해 아래 이 두 가지 잘못을 저지르게 되었다." (12~3쪽)
3. 노동이 철학과 시를 만들어낸다는 평소 지론과는 달리 공산주의자 네루다는 시를 쓰고 놀았고, 그의 우편배달부도 그렇게 했다. 원전이 좋겠지만, 우석균의 번역이 체질에 맞는다.
"한없는 인내를 지닌 태평양도 못한 일을 산안토니오의 단출하고 정겨운 우체국이 이루어냈다. 마리오는 동이 트면 휘파람을 불며 일어났고 코도 막히는 법 없이 멀쩡했다. (중략) 그렇게 한없이 책을 끼고 다니며 만지작거렸다. 또 자신에게 콧방귀도 뀌지 않는 소녀들에게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려고 광장 가로등 아래에서 걸핏하면 책을 바지 위에 놓았다. 그러는 사이 아뿔싸! 책을 그만, 그만, 그만 ....... 몽땅 읽어버리고야 말았다."(21~22쪽)
4. 김수영과 김남주와 안도현, 그 밖에 많은 시인들을 보고 시인이 되고 싶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제가 시인이면 말하고 싶은 것을 다 말할 수 있잖아요. (중략) 시인이 아니라서 그것조차 말할 수 없는걸요." (28~9쪽)
5. 사랑에 빠졌다. 가슴이 떨려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눈을 똑바로 뜨고 천천히 바라보고 싶은데, 부끄러워서 자꾸만 눈길을 돌린다. 궁금증을 못참고 다시 슬쩍 바라본다. 말을 걸어주면 좋겠다. 보고 싶어서. 무엇을 드릴까요?
"똑같은 거로요." (50쪽)
마리오와 네루다는 베아트리스를 보자마자 반했다. 아름다운 여인은 존재 자체만으로 사랑의 대상이다. 그런데, 마리오는 어떻게 사랑을 얻었는지가 궁금하다. 불행하게도 남자인 작가는 여인의 마음을 모른다. 그저 오래도록 메타포를 써서 물 흐르듯이 사랑고백을 한 결과라는 것 밖에는.
"그러나 시를 이용해 베아트리스를 꾀어보려 했을 때, 칠레에서 가장 두려운 기관과 맞닥뜨렸다. 바로 딸 가진 어머니였다. (중략 / 마리오는) 오렌지 빛 태양이 새내기 시인과 연인들처럼 감미로워진 바로 그날 석양 무렵 해변을 거니는 소녀의 뒤를 밟았다. (중략) 마리오는 마침내 바윗가에서 사랑을 고백했다. (중략) 이미지를 더 없이 매혹적으로 엮어나가 말하는 것이 시 낭송 그 자체인 마리오의 고백은 어둠이 완전히 깔릴 때까지 계속되었다." (58~9쪽)
하루에 대한 소망을 가장 멋지게 표현한 시. 며칠 있다가 이 구절은 현실도 꿈도 반영하지 못한 구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노동 없는 낮과 꿈이 없는 밤이다.
"노동 없는 낮도 꿈이 없는 밤도 싫네" (75쪽)
6. 이 말은 네루다, 스카르메타, 랭보, 이름 모를 평론가 중 누구의 말인가? 잠깐 검색을 해 봤는데, 이 책에서 인용된 것만 나오는 것을 보면, 스카르메타의 말인 모양이다. 일단 그렇게 알고 넘어가자. 영화 일 포스티노 il postino에서는 "시는 필요한 사람의 것"이라고 말한다. 덧붙이자면, '시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것'이다.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에요!" (85쪽)
7. 글은 음미해야 한다. 글이 너무 많은 요즘, 힘들지만.
"글을 읽는 게 아니라 삼켜버리잖아요. 글이란 음미해야 하는 거예요. 입 안에서 스르르 녹게 해야죠." (106쪽)
8. 예전에 향수병에 살짝 걸린 일이 있는데, 눈에 걸렸었다. 우리나라는, 가벼운 바위를 머리에 이고 있는 씩씩한 산들로 둘러쌓여 있고, 그 산들은 늙은 소나무를 젊게 두르고 있다. 온통 평지뿐인 외국의 도시에서 두 달을 보내고 났더니 산을 보지 않고는 견딜수가 없었다. 차를 몰고 산지를 찾아 헤매고 나서야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밤 하늘의 침묵의 소리도 시인을 병들게 했다는 이야기도, 도시에서 시골로 사는 곳을 옮기면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휘파람새와 소쩍새 소리 때문이다. 귀도 향수병이 걸릴 수 있겠다.
1970 경술년에. 네루다는 소리의 향수병에 걸렸다.
"바닷가 종루에 걸려 있는 종만큼 낭랑하게 들리는 말은 없지. 그다음에는 바윗가로 가서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를 담아줘. 갈매기 소리가 들리면 녹음해 주고. 밤하늘의 침묵을 들을 수 있다면 그것까지도." (108쪽)
네루다가 드디어 노벨문학상을 받고 마리오를 비롯한 칠레의 민중들은 환호한다. 그 환호의 뒤에는 아옌데 정부를 붕괴시키려는 경제 제재와 파업, 쿠데타가 만연하고 있었다. 정치중립과 국가방위를 실천하던 총사령관이 제거되고, 피노체트가 총사령관에 올라감으로써 준비는 끝났다. 그리고, 이런 무시무시한 거짓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한다.
"저희와 동행하셔야겠습니다. (중략)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 그럽니다. (중략) 일상적인 일이에요. (중략) 두려워하실 것 없습니다." (162~3쪽)
9. 마지막은 마틸데의 이야기를 기록해 두고 싶다. 사랑과 평화가 얼마나 지독한 마음인지를 알기 위해서다. 전태일과 어머니 이소선 여사를 떠올리게 하는 글이다.
"네루다는 9월 23일 그렇게 외로운 최후를 맞았다. 이승을 하직하는 깊은 잠에 빠지기 전 네루다는 신열에 들떠 "사람들을 쏴 죽이고 있어. 쏴 죽이고 있다고." 라고 처절하게 절규했다고 한다. 마틸데는 네루다의 시신을 차스코나 집으로 옮겼다. 쿠데타 직후 우익 과격파들이 난입해, 분탕질하고 가구들을 부수고 물을 틀어놓아 온통 아수라장이었기 때문에 대문을 통해 관을 모실 수조차 없었다. 죽음의 공포와 위협에 굴하지 않고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러 모여든 지인들이, 정갈한 장소로 시신을 옮겨 시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편안하게 해주자고 제안했지만, 마틸데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평생 시만 쓰고 사회 정의를 부르짖은 시인의 마지막 가는 길이 얼마나 참담했는지 모두들 똑똑히 알아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중략) 그녀가 꿋꿋하게 민주화 운동에 동참하게 된 원동력이었다." (177쪽)
아옌데는 굶주리는 아이들을 위해서 무상 아침과 무상분유 급식을 시행하려 했으나 네슬레가 분유 판매를 거부했다. 아옌데는 가난한 농민에게 토지를 나눠주기 위해 20%의 땅을 대지주들로부터 몰수하려 했으나 거부당했다. 아옌데는 60세 이상 노인들에게 연금을 지급하려 했으나 자본가들은 공장을 폐쇄하고 외면했다. 모든 것이 미국의 사전공작에 의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피노체트가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자, 미국의 외무부 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는 "미국은 쿠데타를 직접 실행한 것은 아니지만, 쿠데타가 성공할 수 있는 최고의 전제 조건들은 미국이 창출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위키백과 중에서)
아옌데는 쿠데타군에 맞서 끝까지 항전하다 대통령궁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2008년 칠레 국영 방송국에서 실시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칠레인을 뽑는 프로그램인 Grandes Chilenos에서 당당하게 1위를 차지했다." (나무위키 중에서)
아옌데의 마지막 연설이다.
"(전략) 제가 반역자들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나는 결코 사임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역사적인 순간을 맞은 지금 저는 인민들의 충정을 제 목숨으로 보답하려 합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가 수많은 칠레 인민들의 존엄한 의식 위에 뿌린 씨앗은 결코 파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들이 무력을 장악했으니 우리를 짓밟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사회 변혁의 과정을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범죄 행위로도 무력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 편이며 역사를 만드는 것은 인민입니다.
(중략) 반동적인 무리들이 외국 자본과 제국주의와 결탁해, 헌정 질서를 존중해 온 군의 전통을 깰 수 있는 분위기를 조장했습니다. 쉬나이데르 장군과 아라야 사령관은 칠레군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다가 희생됐습니다. 저들은 지금 집 안에 숨어 자기들의 이익과 특권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군부와 권력을 찬탈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중략) 노동자와 농민과 지식인 모두, 앞으로 파시즘 치하에서 탄압을 당하게 될 겁니다. 파시즘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테러가 횡행하고, 교량이 파괴되고, 철로가 끊기고, 원유와 가스 파이프라인이 파괴돼도 이를 막아야 할 자들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들 역시 똑같은 짓을 저지른 겁니다. 역사가 저들을 심판할 것입니다.
인민 여러분, 스스로를 보호해야 합니다. 하지만 절대 희생돼서는 안 됩니다. 저들에게 압도당해서도, 살육을 당해서도 안 됩니다. 저들의 모욕을 참지도 말아주십시오.
조국의 노동자 여러분! 저는 칠레와 칠레의 운명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반역이 우리에게 강요한 이 잿빛의 쓰디쓴 순간도, 누군가는 반드시 이겨낼 것입니다. 그 점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그리 머지않은 장래에, 자유로운 인간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당당하게 걸어갈 드넓은 길을 열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칠레 만세! 인민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마지막 말입니다. 제 희생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적어도 제 희생을 통해 범죄자와 비겁한 자, 반역자는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는 도덕적 교훈을 얻게 될 것입니다." (나무위키 중에서)
[ 이야기 해 볼 내용 ]
1. 향수병을 일으키는 것 : 이슬라 네그라의 침묵의 별밤, 죽주산성의 산벚꽃, 북한산과 설악산, 휘파람새와 소쩍새, 도시의 소음
2. 사상이 위험한가 독재, 폭력, 자본이 위험한가 : 케인즈는 사상이 위험하다고 했다. 칠레를 보면, 독재와 자본과 커다란 다른 나라가 위험하다.
3. 말 뒤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는 로사의 현실주의는 받아들일 수 있는가?
4. 메타포는 두려움을 이기고 자신의 삶을 이끄는가?
[ 사람들의 이야기 ]
1. 메타포는 단순한 비유와 인용이 아니고, 그 이상의 힘이 있다. 지식이나 재산 등 모든 측면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시를 통해 친구로 될 수 있는 강력한 힘이다. 강대국의 횡포로 아름다운 사랑이 망쳐지는 과정이 무섭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상황이어서 우리들이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한다. 아름다운 책이었다. 네루다와 아옌데는 칠레인들의 마음속에 메타포로 영원히 살아있겠다.
계란이 귀하던 시절에 집에서 기르던 닭이 알을 낳으면, 어머니께서 계란 하나를 쥐어주면서 선생님께 갖다 드리라 하셨다. 스무살이 갓 넘었을, 결핵에 걸린 선생님께 베푸신 일이었다. 덧없이 흘러버린 세월이 그립고, 어린 시절의 심부름이 좋았고, 어머니가 그립다.
마리오가 끌려가는 것을 보면서, 마리오의 죽음은 의미있는 죽음이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광주민주항쟁이 벌어지던 곳에서 의과대학 대학생이 말했다. 의미없는 죽음을 해서는 안된다. 그 학생은 의사가 되었고, 자손들까지 모두들 의사가 되어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그때 광주에서 죽은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된 사람들이다. 그들의 죽음은 과연 의미가 있는 죽음이었는지 계속 질문을 하게 된다.
2. 내가 읽은 책에서 느끼지 못한 이야기들을 카톡에 올라온 서평을 읽었더니, 책을 세 번을 읽은 느낌을 받았다.
소설은 소설이라는 생각으로 읽었는데, 소설 속에 숨겨져 있는 내용을 찾아가는 묘미가 있다는 것을 오늘 배웠다. 작가와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 깊이 공감하지 못하고, 우리의 슬픈 역사를 다룬 소설을 읽을 때도 우울하지만 슬프지 않았다. 공감이 부족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칠레 사람들도 우리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녹아있는 사상들을 잡아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사상의 갈등이 많은 나라에서 살다보니 공산주의는 괴물이고,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지식인이나 부유한 사람들이 왜 저런 이상한 사상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했는데, 그들도 체제만 다를뿐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사상의 갈등이 있었던 것은 우리뿐만이 아니라 라틴아메리카도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정리가 잘 안되어서 서평을 올리지 못했는데, 오늘의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는 서평도 올리겠다.
충주를 중심으로 이곳에서 계속 생활을 해서인지 향수병이 없다. 그러다보니 책과 공감하는 부분이 줄어들어 감정이입을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을 통해 다양한 것에 대해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좋다.
인상적인 문장 : 마리오가 잘못한 것이 뭘까. "저희와 동행하셔야겠습니다. (중략)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 그럽니다. (중략) 일상적인 일이에요. (중략) 두려워하실 것 없습니다." (162~3쪽) "교육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광주항쟁 비디오를 봤는데, '우리나라 군인들이 했을 일이 아니다'는 생각이 들어 도망치고 싶었단다. 고등학교 때까지 자신이 받은 반공교육에 비춰보면, 광주 비디오를 틀어주는 학생들이 간첩이고, 학생들이 정말 무서워서 도망치고 싶었단다. 그러나 광주시민을 학살한 것은 전두환 일당들이었음이 진실이었다. 알려면 확실히 알아야 하고,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3. 메타포를 위한 메타포에 의한 메타포를 위한 소설이었다. 메타포 하나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과 어려운 상황에서도 위트 있는 삶을 살다간 네루다의 일생도 인상깊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재미있었고, 작가가 더 궁금해져서 스카르메타가 쓴 아동도서 '글짓기 시간'을 읽었다.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가 무엇을 하는지 글을 쓰라는 내용이다. 강력하지만 의미있는 내용이었다.
감명 깊었던 문장 : 단어들이 바다처럼 이리저리 움직였어요. 운율이라는 것이지. 문학과 시에 대한 단순한 표현이 훌륭했다. 네루다가 병이 들어 이슬라 네그라도 돌아와서 마리오에게 한 말도 좋았다. 바다까지 가져가 버린 것은 아니지 않나. 힘든 상황에서도 이런 멋진 말을 할 수 있는 칠레인의 정서가 잘 표현된 말이었다. 우석균의 번역도 좋았다.
칠레라는 나라는 한-칠레 FTA로 처음 알게 되었다. 칠레 농산물을 사먹지 않으려 하다가 포도를 사서 먹어 보았더니 정말 맛있었다. 아옌데와 피노체트를 알게 되었고, 네슬레가 칠레에게 분유를 팔지 않았던 나쁜 기업이었다니. 냉전시대에 서로를 적대시함으로써 발생한 일이었겠지만, 철학자 강신주가 자본을 소비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의 경제제재로 발전이 어려운 사회에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했는데, 코로나 시기에 쿠바의 의사들이 해외 의료 지원을 나서는 것을 보고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전라도 광주가 고향인데 구례로 귀농을 했다가 적응을 못해서 2년을 살다가 괴산으로 다시 귀농했다. 그런데, 떠나온 섬진강과 지리산이 있는 벚꽃이 찬란했던 구례가 그리워진다.
초등학교 시절 광주에서 광주민주화항쟁을 직접 지켜보았다. 당시 올바른 보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광주 MBC가 시민들에 의해 불태워졌다. 어느 병원은 환자들을 치료한 반면에 어느 병원에서는 환자들을 폭도라면 치료를 하지 않았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광주항쟁 이후로 행복하면 안 될 것같은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마음의 짐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편안해졌다. 아직도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에 대한 연민이 중요하다.
네루다가 죽고 나서 피노체트의 반란군들이 찾아 와서 네루다의 집을 파괴하는 행패를 부리고 갔다. 부인인 마틸데는 네루다의 관을 그 처참한 집에 모시고 장례를 치른다. 마틸데는, 군사정권이 네루다와 칠레 민중들에게 가한 폭력을, 칠레 민중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혼자만 잘 산다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생각을 잘 전달해 준 이 소설에서, 문학이 가지는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다." 가장 멋진 문장이었다.
4. 우편배달부가 시인이 되는 과정이 아름다웠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행복하다. 오랫동안 글을 써 왔는데, 메타포가 이렇게 힘이 있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정치 문제로 가면서 주제가 무거워졌는데, 독재는 폭력과 함께 온다.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책이었다.
음성 신천리가 친정 마을인데, 저녁 나절에 하얀 연기가 올라가는 모습이 지금도 떠오른다. 친구들과 놀다가 '누구야 밥먹어' 하는 소리가 들렸던 어스름한 저녁 나절이 그립다.
광주 사람 중에서도 전두환이 괜찮다는 사람이 있었다. 자기만 괜찮으면 되는 것인가?
"칠레에서는 모두가 시인이야. 특별한 것은 오히려 우체부야. 최소한 걸어다니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