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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비닐을 찢었더니 날짐승들이 땅콩 파티를 했다_210913~15 el quince de septiembre el miércoles_пятнадцать сентябрь среда

땅콩이 잘 자랐다. 더 많은 땅콩을 수확하기 위해서 이랑의 비닐을 찢어서 씨방 자루가 흙속으로 잘 파고들 수 있도록 했다. 땅콩은 꽃이 지고 씨방 자루가 마치 볼펜 심처럼 발달하여 흙속으로 5cm 내외를 파고 들어가 그 속에서 두 개의 땅콩 알을 만든다. 비닐이 있으면 방해가 될 수 있다고 해서 씨방 자루가 흙속으로 잘 파고 들어갈 수 있도록 조치를 해 두었다. 한 달도 더 된 일이다.

 

13일 저녁부터 14일 아침까지 땅콩을 캐면서 매우 실망했다. 일단 비닐을 찢었더니 지난 한 달 동안 비가  많이 내려서 흙이 너무 젖어 있었다. 땅콩은 모래 땅에서도 잘 자라는 작물로 흙이 모래처럼 흘러내리는 환경이어야 하는데, 습기가 너무 많아서 캐기가 힘들고, 싹이 트는 땅콩들도 있었다. 게다가 진흙을 일일이 털어내면서 땅콩을 캐기가 너무 힘들었다. 비닐을 찢어놓았더니 고소한 땅콩 향이 진동해서인지 까치나 고라니가 와서 절반 넘게 캐 먹어 버렸다. 먹기 좋게 상을 차려놓은 격이다. 예전에 아버지는 날짐승들의 땅콩 강탈을 막기 위해 그물을 쳐 놓으셨는데, 게으른 몸수는 그런 일까지 하지는 못했다. 나중에 더 나이가 들면 해야겠다.

 

어제저녁과 오늘 아침에는 고추를 땄다. 붉게 익은 고추를 네 바구니를 땄다. 고추 꽃은 이제 없다. 달려있는 고추가 빨갛게 익으면 마지막 고추를 따야 한다. 재작년부터 고춧대를 잘라주기 시작했다. 고춧대를 잘라주면, 뿌리가 잘린 고추나무에 붙어있던 파란 고추가 빨갛게 익는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내 눈으로 직접 보지를 못했다.

 

라디오에서는 새파란 가을 하늘을 구경하라고 한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파랗다. 그런데, 웬일인지 감동이 없다. 새파란 하늘과 새하얀 구름이 어울려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