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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정미, 험난한 과정

우리집 정미기는 5년 전에 경기도 이천 궁뜰에 사시는 분과
벌꿀 한 병과 물물교환을 한 오래된 중고 정미기다.

 

그렇지만, 정농의 말씀으로는 현미 뽑기, 흑미 도정, 백미 도정까지 다 되는
우리 농사 규모에 꼭 맞는 정미기란다.

신문에 광고가 난 350만원 하는 신형 정미기도

현미 뽑기와 흑미 도정은 안된다고 하니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정미를 위해서 8만원을 주고 승강기 벨트와 베어링을 교체하였다.
낡고 작은 정미기에 매달려 사흘 동안 정농이 끙끙대고
간신히 정미가 가능하도록 수리를 했다.

정농은 그 후유증으로 팔이 아파 벌침을 맞았다.

그 벌침 참 신기하다. 팔 아픈 것이 낳는다.

 

첫번째 정미는 흑미를 현미로 도정한다.
꽤 많은 양을 수확했는데,
벼의 무게가 가벼워 걱정했더니 예상대로 싸레기 엄청 나온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깜부기와 뉘가 너무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전부 도정을 하고 세식구가 달라붙어 최대로 골라낸다.


간신히 식구들 조금씩 나눠 먹고,
예약 주문한 몇몇 분들에게 약속한 양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둘째 날 정미는 찰벼의 현미 도정과 찹쌀 도정이다.
현미 도정은 흑미 도정보다는 덜 했지만,
깜부기와 뉘가 많아서 300kg을 일일이 손으로 작업을 해야 한다.


심현이 한쪽 구석에서 이틀째 깜부기와 뉘를 고르고 있다.

어차피 가족들에게 나눠 줄 것이니
밥을 할 때 골라먹게 하는게 어떻게냐고 제안을 했는데도
심현은 여유 있는 시골사람들이 작업하는 것이 낫다고 한다.


그리고, 애써 가꾼 농작물이 깜부기나 뉘 때문에
낮은 평가를 받는 것은 자존심이 상한다는 말씀이다.

 

찹쌀 도정은 약 5분도로 깍는 것으로
깜부기나 뉘가 거의 없어서 무일이 20kg씩 포장 작업을 하면서
골라내도 된다. 작업 속도가 빠르다.

 

찹쌀 도정이 거의 끝나갈 즈음에
정미기에서 타는 냄새가 난다.
정미기를 세우고 살펴보니 베어링이 나갔다.

더 이상의 작업 불가.

해가 지고 있어 일단 철수.

 

 

셋째 날의 아침은 정미기의 2차 수리로 시작되었다.
읍내까지 가서 5천원을 주고 베어링 두 개를 사 왔다.
정농이 놀라운 솜씨로 완벽하게 수리를 해냈다.

 

어제 못다한 찹쌀 도정을 끝내고,
맵쌀 현미 도정에 들어갔다.


흑미 보다는 덜 했지만,
현미 도정에는 깜부기와 뉘가 감당이 되지 않는다.
대충 보아도 500g 당 적어도 하나 이상의 뉘와 깜부기가 나온다.

이것을 일일이 손으로 골라내야 한다.

 

눈앞이 캄캄하다.

심현은 좀 힘들기는 하지만 여전히 일도 아니라고 한다.

 

이어서 5분도 맵쌀 백미 도정이다.
최대한 영양이 들어 있는 쌀눈이 살아 있도록 깍아낸다.

해가 진다.

 


내일까지 총 나흘에 걸쳐 논 1,400평에서 거둔 벼의 도정을 끝낼 것이다.

오래된 정미기가 더 이상 수리를 필요로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 내년 여름에 도정할 벼 300kg을 남기고 모든 도정이 끝날 것이다.

 

막 도정한 쌀로 지은 밥에다
밭에서 막 뽑아 온 무로 담은 생채, 참기름과 고추장으로 맛을 낸 비빔밥을 안주 삼아
부천에서 사온 참살이 막걸리로 축배를 든다.

 

맛있다.

 

아이고, 허리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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