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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비닐과의 전쟁

오늘 중으로 이 비닐들을 다 걷어낼 수 있으려나?



총 열 두 이랑에 씌워진 비닐을 걷어내기로 했다.

정농과 둘이서 하니 평소보다 빠르겠지만 오늘 하루는 꼬박 걸리리라.


조금 좋은 무선 공유기를 썼더니 아랫밭에서도 와이파이가 뜬다.

흠, 좋은 세상이다. 트윗을 하면서 밭일을 하는 최신 농부다.

이어폰을 가지고 왔으면 유튜브의 음악을 들으며 일하면 더 좋을텐데.


생각난 김에 요즘 날씨와는 어울리지 않지만 좋은 노래 한 곡 감상해 보자.

이 동영상 속에는 그 노래와 어울리지 않는 추억의 사진들이 가득하다. 

부조화 속의 기쁨이라고나 할까?

그 사진들 중의 가장 인상깊었던 사진은,

동대문 경찰서의 경찰들에게 잡힌 사람들이 밧줄 감옥에 갇혀있는 모습.

참 험한 세상을 살아오신 우리 부모님 세대들이다.

http://youtu.be/sQlRCswWQZ4


비닐을 걷다가 무심코 노끈 하나를 비닐 속에다 갈무리했다.

아니다. 순간 깜짝 놀래서 들여다 보니, 뱀이다.

맛도 좋고 영양도 좋은 뱀이 아니라 뱀껍질이다.

속으로 얼마나 놀랬는지 모른다.

그래도 농사일 한 지 칠팔년은 되는데,

아직도 뱀에 적응하지 못했다. 두렵기까지 하다.

언제 뱀 훈련소에라도 다녀와야 할까 보다.

이곳 금왕읍 구계리에는 제법 독사들이 많다고 한다.

여름이면 항상 장화를 신어야 하고,

고추밭에서 일할 때도 혹시 뱀꼬리를 잡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세번째 이랑에서 제법 큰 구멍을 만났다.

듣기로는 두더지 구멍이라고 한다.

두더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상반된 이야기를 듣는다.

태평농법의 스승 이영문님은 우리 밭을 갈아주는 고마운 존재라고 한다.

관행농법을 하는 많은 농부들은 우리 밭을 망치는 해로운 동물이라고 한다.

누구의 말이 맞을까?

스승의 말이 맞기를 바란다.



이랑에서 반가운 거미를 만났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곤충도감과 인터넷을 뒤져서 거미에 대해 알아봐야겠다.

거미가 땅을 파고 월동을 하는지 알아보아야겠다.

흙과 거미가 거의 구분이 안될 정도로 보호색도 뛰어나다.

거미도 뱀만큼이나 밭에서 마주치기 꺼려진다.

혹시 독거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독거미가 거의 없다고 들었지만,

영화에서 본 인상이 너무 강해서 두려운 생각이 든다.

반대로 스승은 우리 밭의 파수꾼이다.

온갖 해충을 박멸해 주고,

혹시 약간의 농약이라도 밭이 피해를 입으면 거미가 사라져 버린다고 한다.

이제부터는 스승님 말씀대로 거미를 사랑해야 한다.

어디 거미 훈련소에라도 다녀와야겠다.



정농이 풀 숲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수확한다.

우리 밭의 한 귀퉁이는 온통 풀밭이다.

바쁘다 보니 제대로 김매기를 해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속에서 놀랍게도 제대로 된 팥이 여물었다.

태평농법이 가능하다는 또 하나의 증거다.



드디어 다 걷어냈다. 단순 노동에 적응하는 인간의 힘이 대단하다.

첫번째 16m 이랑의 비닐을 벗기는데도 다리와 허리가 부러지는 줄 알았는데,

세번째 20m 이랑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해서

마지막 열두번째 이랑까지 마치는데 반나절만에 끝냈다.


비닐을 사서 치고 걷는데 돈과 시간이 너무 들어서 비닐을 안쓰려고 했다.

게다가 땅도 숨을 쉬지 못하고 쓰레기까지 만들어지니

아무리 풀과의 전쟁에 도움이 된다고 해도 쓰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이번 비닐이 우리 농사의 마지막 비닐일 수 있을까?


손녀딸을 안고 펄쩍펄쩍 뛰고 싶었다.

아직 우리 애들이 출가하지 않았다. 어쨋든, 만세! 


내 피부는 소중하기 때문에 자전거 탈 때 쓰는 버프를 쓰고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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