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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마지막 힘까지 쥐어 짜내어_210728 el veintiocho de julio el miércoles_двадцать восемь июль четверг

4시 반에 일어나도 일 시작 시간이 그리 빨라지지 않는다. 제일 큰 문제는 화장실에서의 여유로움. 건강에도 좋지 않으니 변화를 줘야겠다. 일하는 것이 적당히 좋다는 나와는 달리, 친구는 일하는 것이 매우 좋단다. 음악을 하며 노는 시간이 더 좋은 나와는 달리, 친구는 일에 집중하면서 머리를 개운하게 하는 것이 좋단다. 

 

해는 나오지 않았지만 30분도 안 되서 벌써 땀이 줄줄 흐른다. 예초기가 자꾸만 무겁게 느껴진다. 어깨가 묵직하다. 6시 반까지 대체로 무난하게 작업을 했다. 쉽지 않은 하루가 될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칼날을 뒤집을까 하다가 그냥 쓴다. 예쁜 일제 5천 원짜리 날을 거부하고 국산 1,500원짜리 투박한 날을 다섯 개나 사 왔는데, 만족한다. 날카롭게 풀이 베어지는 느낌은 덜 하지만 진동도 크지 않게 균형을 잘 잡아놓았고, 단조가 잘 되어 있어서 날의 성능이 계속 유지된다. 

 

6시 20분에 일차 휴식 descanso. 아들이든 아버지든 한쪽만 현명해도 부자관계가 훨씬 좋아진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 좋은 추억과 안타까운 모습이 자꾸만 눈에 어른거려서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한 내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 누구나 하는 후회를 나 역시 피해 가지 못하고 있다. 어머니와 아내와 아들들과 가족들에게 최선을 다해서 현명하게 살아야 한다. 

 

제일 어려운 구간에 도전한다. 숨이 막혀오지만 호흡을 길게 하면서 천천히 한 발씩 전진한다. 노동에 대한 대가는 돈이 아니다. 그러므로 인건비라는 개념은 폐기해야 한다. 최저임금도 폐기해야 한다. 10년째 만 원도 못 만드는 최저 인건비 논쟁을 더 이상 참아줄 수 없다. 기본 접근 방식이 틀렸기 때문에 해답을 찾을 수 없다. 노동은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행위다. 노동의 가치는 돈 따위로, 신분 따위로, 능력 따위로 차별해서는 안된다. 노동이 없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모든 노동은 고귀하다. 노동에 대한 대가는 자부심, 명예, 인정, 위로 그리고 삶을 즐길 수 있도록 성금으로 지불되어야 한다.

 

8시 30분이 되어서야 제일 어려운 구간을 끝냈다. 마음이 끝부분에 한 줌 남아있는 그늘에 누워 심장의 무게를 느낀다. 아무리 기다려도 가벼워지지 않는다. 라디오를 들으며 더 쉬었다. 그만 포기하고 갈까 싶었지만 마지막 남아있는 힘을 쥐어 짜내어 논을 편안하고 예쁘게 만들고 싶었다. 9시에 예초기를 들고 찰벼 논 동쪽 사면으로 갔다. 다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슬슬 예초기를 돌렸다. 호흡이 거칠어지면 길게 다루어 안정시켰다. 잘 되지는 않았지만 무대책으로 심장을 괴롭히는 것보다는 좋았다. 

 

절반도 끝내지 못했지만 팔다리가 후들거리고 땀이 비오듯 쏟아져서 눈을 찌른다. 아주 잠시 땀을 닦으며 호흡을 골랐다. 한 발 내딛으며 예초기를 돌렸다. 등 뒤로 시원한 바람이 휙 불어온다. 금방 몸에 생기가 돈다. 그렇게 바람과 함께 풀을 깎아 나갔다.  한계를 느낄 때마다 바람이 위로하며 지나간다.

 

끝냈다. 

 

매우 독특하고 예쁜 단풍나무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