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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너무 지쳐서 어리석은 판단을 했다_210407_el siete de abril miércoles_Семь апрель среда

컨테이너 옆 밭에서 사흘째 이랑 만들기를 하고 있는 이유는, 순전히 나의 어리석음 때문이었다. 밭이랑을 다 만들고 나서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 땡볕에서 일을 하고 나니 너무 지쳐버려 판단력이 흐려졌다.  11미터짜리 여덟 이랑 정도는 손으로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어리석은 판단을 했다. 운동 삼아서 천천히 한 사흘이면 작업할 수 있는 양은 맞다. 매우 힘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아무리 돈 벌면서 할 수 있는 체중 조절이라고 해도 없어도 될 일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이 밭의 상황을 점검했으면 이런 일은 만들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다.

 

9시 반에 밭으로 갔다. 더 빨리 나갈 수도 있었는데 일을 하고 나면 대금을 연습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아서 먼저 대금 연습을 하고 일을 하기로 했다. 산조대금을 연습하다가 juego al Sanjo Daegum 오랜만에 정악대금을 연습하니 juego al Jeongak Daegum 입술이 대금에 붙지 않는다. 매번 두 개의 대금을 같이 연습하지 않으면 이런 문제가 나타난다. 정악대금을 먼저 연습하고 산조대금을 연습해야 입술 근육이 망가지지 않는다.

 

이랑 하나를 거의 만들어 갈 즈음에 어머니가 나오셔서 비닐 덮는 작업을 하신다. 하시지 말라고 하고 싶은데, 일 하기에 너무 좋은 날이라 움직이시는게 좋겠다 싶어서 함께 일했다. 점심을 드시고 almuerzo 진통제를 챙겨 드신다. 좀 쉬다가 오후에도 일 하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한 이랑만 하시라고 말려도 굳이 두 개를 더 하시겠단다.

 

아랫 밭과의 경계선에 블록을 쌓았다. 경계선이 분명하지 않다보니 계속 충돌이 생기고, 우리 밭에는 제초제를 치지 않으니 풀을 제때 뽑아주지 않으면 이웃밭에 피해를 준다. 그러자 우리밭으로 넘어와서 제초제를 마구 뿌려대어 작년에 심은 바질과 꽃치자와 동백나무가 죽었다. 작년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이유는, 혹시 봄이 되면 다시 새싹이 날까 싶어서 참고 있었다. 아직까지 새순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죽은 것이 틀림없다. 적당한 보상을 받아야겠다.

 

그늘에서 휴식을 취해가면서 세 개의 이랑을 만들었다. 어제 보다는 훨씬 좋은 성적이다. 팔은 점점 무거워진다. 일을 마치고 샤워를 하는데, 몸이 가라앉지 않는 것을 보면 견딜만한 모양이다. 지지난주의 트랙터 작업은 날도 덥고 해서 정말 힘들었고, 지난 주의 이랑 손보기도 친구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고마운 일이다.

 

옆밭에서 배수로 정리를 잘 해달라고 찾아왔다. 우리 논을 팔고, 밭을 사는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 교환을 했다. 쉽지 않은 일이다. 내 뜻대로만 되지는 않을 것이나 어떻게든 거래를 성사시키는 쪽으로 해야겠다.

 

일단 이랑 하나를 만들고 나서 남은 공간을 보니 3개의 이랑을 더 만들 수 있다. 결국 11미터짜리 9개의 이랑을 만들어야 한다. 이 정도의 밭만 가지고도 우리 식구 해 보고 싶은 것들 다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점점 거세지는데 어머니는 기어코 두 개의 이랑에 비닐을 씌우셨다. 나도 옆밭과의 경계선에 벽돌을 쌓는 작업을 마무리했다. 뭔가 정리정돈이 된 느낌이다. 앞으로 두 개의 이랑을 더 만들어야 하지만 괜찮다. 샤워를 하고 났더니 5시 50분이다. 음료수 한 병을 챙겨들고 상계동의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오랜만에 친구들 얼굴을 보니 반가웠다. 마스크 벗지 말라는 그리미의 엄명에 따라 음식도 먹지 않고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삼양동으로 갔다. 긴 하루였다. 몸이 쭈그러들 정도로 일하지는 않아서 좋다. 혈압이 150까지 올라갔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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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미가 보내 준 삼양동의 조팝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