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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전봇대와의 전투에서 승리하다, 친구들 덕분에_친구농활단 02_210401~210402 el dos de abril el viernes_два апрель Пятница

마음이를 농원에 두고 오송에서 KTX를 타고 광명으로 간다. 15:35. 15:42. 15:45. 기차표를 오 분씩 두 번이나 뒤로 미루었다. 기차를 놓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2분이면 충분하다는 친구의 조언을 무시하고, 5분을 남겨두고 오송역에서 내려 마구 뛰었다. 결국 땀을 뻘뻘 흘리며 5분 동안 기다려야 했다. 기차 내부는 긴장이 흘렀다. 기차 타고 동해에 다녀오고 싶었는데, 안 되겠다.

 

광명역에서 신도림으로 가는 기차가 떠나버렸다. 40분을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기 싫어서 송내역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탔다. 길이 밀린다. 고속도로 시흥 정류장에서 내려 무작정 걸었다. 벚꽃이 활짝 피었다. 30분을 걷고 10분을 기다려 버스를 타고 6시에 부천에 도착했다. 농원에서 2시 반에 출발했으니 3시간 반이 걸렸다. 새롭고 아슬아슬하고, 피곤했다. 

 

시흥 톨게이트에서 내려 걷다가 만난 벚꽃

 

월요일(29일) 아침부터 시작해서 닷새 동안 밭에서 씨름을 했더니 걱정이 된다. 몸살 날까봐.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친구 둘이 번갈아서 험한 일을 나서서 해 주니 지난주처럼 몸이 완전히 가라앉을 정도는 아니었다. 진통제를 닷새동안 두 번 먹었다. 통풍이라는 검사 결과가 나왔다는 이야기도 들어서 더 겁을 먹었는지도 모른다.

 

7시에(4월 1일, 목) 일어나서 커피 한 잔과 사과 반쪽으로 아침을 먹고 밭으로 갔다. 시원할 때 이랑 정리를 하니 좋았다. 어제는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할 일이 눈에 많이 많이 들어온다. 한 시간 동안 제법 정리를 많이 해서 바로 비닐 씌우기 작업을 할 수 있겠다. 바람이 너무 거세다. hace mucho viento. 비닐씌우기 작업 환경으로는 최악이다.

 

"한낮의 친구"에게 콘테이너 옆 밭을 뒤집어 놓으라 부탁하고, 관리기를 빌리러 임대센터로 갔다. 올해부터 사다리도 미리 신청을 받아 임대한다고 한다. 논둑 작업을 위해 다시 한번 소형 굴삭기 면허증을 등록하였다.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다고 계속 이야기를 하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음. 일단 바쁘니.

 

북부농협에 가서 멀칭 비닐을 사가지고 왔다. 아직도 멀칭을 하지 않는 고구마할머니가 생각났다. 9시 반.

 

밭에 돌이 너무너무 많았다. 네 바구니를 주워 내었는데도 계속해서 이랑에서 돌이 튀어 나온다. 정말 힘들다. 게다가 관리기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관리기 시동을 걸다가 친구의 왼팔이 나갔다. 

 

한낮의 친구는 관리기를 자꾸 조정하자고 한다. 그 말을 그냥 받아 들였어야 했는데, 임대센터에서 잘 조정해 나온 기계를 잘못 손 대면 오히려 더 감당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조금씩만 조정하자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한낮의 친구에게 관리기를 맡기고 이랑을 손보는 한편 돌을 주워내고 던지고 정신없이 일했다. 친구의 작업은 될 듯 될 듯 되지 않는다. 원인과 대책도 각양각색이다.

 

친구에게 완전히 관리기를 맡기고 나는 뒤따르며 이랑을 정리했다. 흙이 덮이지 않은 비닐은 흙으로 덮고, 돌도 주워내고, 작업할 이랑의 흙도 채워 넣었다. 도저히 친구의 관리기를 따라가지 못하겠다. 숨이 턱에 찬다. 친구도 온몸의 삭신이 쑤신다고 한다. 한두 개 이랑을 하고 쉬어야 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화이자 백신을 맞으러 다녀왔다. 친구 어머니께서 소천하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일을 해야 하는데 일이 끊임없이 밀려든다. 저녁에 다녀오기로 했다. 함께 점심 식사를 하고 한 시간을 쉬었다. 어디로 밥이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바람도 거세고 해가 따갑다. 동네 주민들이 이렇게 해서 언제 작업을 끝내겠느냐며 걱정하신다. 나도 걱정이다. 욕심내지 말고 4줄만 하고 내일 새벽에 다시 일하자는 친구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그러자마자 거짓말처럼 기계가 제대로 작동을 한다. 흙으로 비닐을 덮어야 할 부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발이나 괭이로 한 번씩 긁고 지나가도 보완이 될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다. 주워내어야 할 돌멩이도 확 줄어들었다. 점점 일을 끝낼 가능성이 높아졌다. 새참을 먹는다. 물만 한 대접씩.

 

친구들에게 관리기를 맡기고 내가 이랑 정리를 한 것은 좋은 결정이었다. 기계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이 두 친구 모두 대단했다. 나도. 그러나 이랑을 정리하는 일은 내가 해야만 했다. 앞으로 8개월 동안을 보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정리해 놓아야 한다. 내가 관리기를 맡으면 친구들은 비닐에 흙 덮기만 하기에도 바빴다. 앞으로도 이런 방식으로 도움을 받아야겠다. 관리기도 기계이기는 하지만 부상 확률이 제일 낮은 기계다. 누구나 30분만 해 보면 익숙해진다. 

 

거센 바람도 잠잠해지고 정말로 해지기 전에 일이 끝나버렸다. 12시간 만이다. 샤워를 하고 친구의 차를 빌려서 전주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왕복 5시간이 소요된 장정이었지만 친구에게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새벽 1시에 들어온 나를 붙들고 3시 반까지 일장 강연을 한다. 아, 졸려. 제발 좀 자자.

 

8시가 넘어서야 간신히 눈을 떴다(2일, 금). 아침 작업은 포기하고 친구를 쉬게 하고 관리기를 임대센터에 반납하고 돌아왔다. 친구가 소나무 전정 작업을 한다. 한참을 오손도손 의논하며 작업을 하고 있는데, 어머니의 다급한 외침.

 

"우리 밭에 전봇대를 심는다."

 

친구와 함께 달려가서 대판 소동을 벌인 끝에 일단 마무리를 했다. 세상일이  쉽지 않은데, 나를 대신해 강력하게 항의해 줄 친구가 있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어머니도 아들 둘이 같이 나서는 것을 보니 마음이 뿌듯하시단다. 얼마나 좋으셨던지 꼬깃꼬깃 용돈을 쥐어 주셨다. 아무래도 어머니가 늙으신 모양이다. 친구가 나를 도우러 왔다가 행패를 당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는데, 괜찮으니 걱정 말라며 오히려 나를 걱정한다. 일을 다 끝내고 친구의 차를 세차해 주었다. 5분 걸렸다. 고압세척기 성능 최고다.

 

심혈을 기울인 소나무 전정 작업을 끝내고, 전봇대와의 전쟁도 승리했다. 남은 것은 매화나무 가지치기. 인터넷을 뒤져서 삽목하는 법을 읽어 보았는데, 거의 외계어 수준이다. 조경기사 자격증이 있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이해하고 나서 거의 10개의 가지를 잘라 삽목을 해 두었다. 잘 살아 주었으면 좋겠다. 한두 개만이라도.

 

전봇대와의 전투 때문에 점심이 늦어졌다. 부리나케 나오려고 하는데, 친구가 제안한다. 그 몸으로 운전하고 가다가는 사고 나겠다. 중간까지 데려다 줄게. 마침 승용차도 필요했다. 가방을 메고 오송역으로 출발했다. 어제와는 달리 교통사정이 안 좋다. 한낮의 친구는 이야기를 하느라 운전에 집중하지 못한다. 저놈의 입을. 5시까지 제대로 치과에 도착할 수 있을까.

 

친구들에게 멋진 호를 하나씩 선사해야겠다. 원하거나 말거나.

 

아침의 친구 : 세종 출신의 "정행 淨行" 불교에서는 깨끗한 수행을 뜻하고, 나는 고요한 가운데 해야 할 행동을 한다는 뜻으로 친구에게 선물한다.

한낮의 친구 : 대구 출신의 "다구 口" 생각이 많으면 말이 많다. 말이 많으면 행동으로 옮길 것 또한 많다. 그리하여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다. 말이 많으면 따구 맞을 일도 많으니 조심하라는 뜻도 포함하여 친구에게 선물한다.

 

도대체 무슨 꽃이 나오려는지. 도대체 뭐가 되려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