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아내는 강력한 친구이자 동지다_210406 el seis de abril el martes_шесть апрель вторник

쌀쌀하다. 어제 아침에는 서리까지 내렸으니 일부 과수가 냉해 피해를 입었을 수도 있겠다. 인간은 결국 자연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아무리 콘크리트로 중무장을 해도 토지 위에서 생활해야 한다. 하늘의 시혜가 꼭 필요한 이유다.

 

농기계임대센터는 하나의 기계를 단 한 번만 예약해 놓을 수 있는 모양이다. 5월 3, 4일에 사다리를 예약해 놓고 오늘 또 예약을 하려고 했더니 예약이 되지 않는다. 센터에 전화했더니 프로그램이 그렇게 되어 있다. 애써 예약을 해 놓고 점심 먹으러 들어와서 예약을 취소했다. 지난주에 친구와 함께 땅을 팔 때는 딱딱하게 굳어있던 땅이 토요일 하루 종일 내린 비로 부드럽게 녹아 있다. 내일까지는 이런 상태를 유지할 테니 체력만 뒷받침이 된다면 비닐 씌우기까지 끝낼 수 있으리라. 무리는 하지 않겠다.

 

9시 반에 나가서 쇠스랑으로 작업을 하는데 숨이 턱턱 막힌다. 순간 근육을 써야 하는 작업의 특성 때문에 심장에 펄스 부하가 걸리는 모양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이렇게 쉽게 힘들어질까. 나이는 이길 수가 없는 것일까. 몸이 보내는 신호에 주의하면서 하다 쉬다를 반복했다. 그 사이에 끊임없이 돌과 나무와 비닐과 쓰레기를 주워냈다. 뭔가 일이 될 듯하다.

 

11미터 길이의 이랑 한 개를 두 번의 휴식 끝에 완성하고 났더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후배로부터 부인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젊은 나이에, 인생을 즐기며 의미 있게 살 수 있는 나이에, 그동안의 고생에 대한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앞으로 나눠야 할 수많은 사랑들을 뒤로한 채 가장 강력한 친구이자 동지인 아내가 죽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첫 이랑을 만들기가 매우 어려웠지만 두 번째 이랑은 쉽게 만들어졌다. 일의 틀이 잡혀서 고민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컨테이너 뒤의 그늘에 숨어서 심장의 고동 소리가 충분히 가라앉을 때까지 쉬었다가 작업을 끝냈다. 음성에 다녀와서 오후에 한 두 개 이랑을 더 만들고, 내일로 나머지 작업은 미뤄야겠다. 맨홀 묻는 작업은 흙이 너무 젖어 있어서 작업이 쉽지 않겠다. 가원의 날 과제로 넘겨야겠다.

 

음성과 보건소에 다녀와서 4시 반까지 가벼운 책을 읽다가 밭으로 갔다. 세 번째, 네 번째 이랑이 흙이 너무 많이 쌓여 있어서 만들기가 힘들었다. 양쪽 끝의 네 개의 이랑에는 흙이 부족하다. 올해는 불균형하게 이렇게 이랑을 만들고 내년에는 좀 더 흙을 잘 펴야겠다. 팔에 무리가 크다. 이제 절반밖에 못했는데 내일이 큰 고비다. 7시가 넘어가자 안 그래도 쌀쌀한 날씨가 더 추워진다. 생각보다 일의 진행이 늦어지자 갑자기 기운이 더 빠지기 시작한다. 눈 앞의 일에만 집중해야 하는데 전체 일에 대한 부담이 생겨버리니 사기가 떨어진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가장 소중하다. 쓸데없이 너무 멀리 바라보지 말자. 눈은 게으른 데다 허풍이 심하다. 믿을 것은 건강한 손과 발이다.

 

부디 아름다운 세상에서 더 행복한 삶을 누리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