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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논문 : 일본인은 어디에서 왔는가
일본 학자들로부터 공개 토론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이 논문의 주된 내용은 일본인의 뿌리가 한반도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2차 대전 전후와 7, 80년대 그들이 이룩한 신화가 어디에서 흘러 들어온 민족으로부터 발전한 일본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홋카이도로 쫓겨난 아이누족 말고 다른 근거를 찾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중국보다 20배나 많은 유적지를 만들어 냈다.
아이누족 이야기도 읽을까 말까를 항상 고민했던 부분이다. 관심 부족. 아이누족은 코카시안 계통의 백인들이 마지막 빙하기 이전에 시베리아를 거쳐 일본 열도로 들어와 살던 원주민들이다. 수렵 채집 생활을 했고, 몸에 털이 많았으며, 1860년대에 현재의 일본인들에 의해 대체되었다. 그 과정은 미국 인디언들의 대체 과정과 같았다.
"대부분의 일본인은 인본인의 기원을 BC 20000 년 전 빙하기에 일본으로 유입된 사람들이 점차 진화한 것이란 견해를 취한다. 또한 중앙아시아에서 유목을 하던 기마 민족이 AD 4세기경 한국을 거쳐 일본을 정복했을 것이라는 이론도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다. 이 이론대로라면 그들은 결코 한국인이 아니다. (중략) 일본의 고고학자와 역사학자들은 왕이 신의 핏줄이라는 틀에 맞추어 역사를 설명해야만 했다.
(중략) 일본에서 가장 중요한 고고학적 유적으로 AD 300년에서 686년 사이에 세워진 158개의 거대한 고분군이 있다. (중략) 고분을 조사하는 것은 신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로 금지되어 있고, (중략) 일본의 고고학자들은 유적지를 발굴하기 위해 1만 명이 넘는 인부와 5만 명의 현장 노동자를 고용한다. 그 결과 일본에서는 중국보다 20배나 많은 유적지가 발굴되었다. (중략) 현대 일본인의 조상을 밝혀내기 위해, 과거의 일본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626~8쪽)
가장 가까운 나라인 일본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다 보니 조몬 문화에 대해서 들은 적은 있지만 그런가 보다 했다. 그 핵심은, 빙하기 이후 일본 열도의 풍요로운 식량 여건에서 탄생한 수렵채집인들의 오래된 토기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는 일본에서 약 127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놀라운 소식은 1960년에 발표되었는데, 처음에는 일본 과학자들도 믿지 못했다고 한다. (중략) 일본의 것을 제외하면 다른 초기 토기들은 중국 아니면 러시아 동부 블라디보스토크 부근에서 발견되었다. 아시아의 고고학자들은 일본의 기록을 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략) 일본 토기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나 유럽의 것보다 1000년이나 오래된 것이고, 여전히 세계 기록을 세우고 있다.
(중략) 일본이 처음으로 생산한 토기는 확실히 수렵 채집민의 유산 (중략) '새끼줄 무늬' 라는 뜻의 '조몬'이라 부르는데, (중략) 토기는 북쪽으로 전파되어, (중략) 최북단 홋카이도에는 7000년 전쯤 당도하였다. (중략) 초기 조몬 토기의 형태 등은 일본 전역을 통틀어 꽤 통일된 형태를 취했다. (중략) 지역의 특색이 가미된 10여 가지의 토기가 일본 열도 2400km에 걸쳐 발전한 것이다. (중략) 조몬 일본은 외부와 차단되어 10000년이란 시간 동안 놀라울 정도로 변한 게 없는 우주의 완고한 축소판이었다." (637~642쪽)
조몬 문화는 토기를 만들었던 BC 12700년부터 BC 400년까지 거의 1만 년 동안 토기와 석기를 사용하는 수렵 채집 생활로 유지되었고, 아이누인이 중심이 된 문화였다. BC 400년 무렵에 한국인의 이주로 관개 벼농사, 철기 농사 도구, 새로운 토기 등이 동시에 사용되는 일들이 일어났고, 조몬 시대와 비교할 수 없는 생산 증가와 인구 증가를 가져왔다. 일본 열도에 농업의 전파가 늦어진 이유는, 일본 열도의 풍요로운 수렵채집 생활 때문이었다. 자연 환경이 너무 좋아서 일본으로 농업이 전파되기 어려웠다. 최소한 철기를 사용해서 농기구를 만들어 쓸 때까지는 일본에서의 농업이 수렵채집 생활보다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몬인들이 BC 10700년에서 400년까지 그러했듯이 수렵 채집민들은 보수적인 경향이 있다. 대신에 농경은 보다 우월한 농사기술을 발전시킨 식량 생산자들이 수렵인과 이족 결혼을 한 후, 수렵인을 죽이거나 그들을 경작하기 적합한 땅에서 몰아내면서 전파되었다. (중략) 조몬인의 두개골은 현대 일본인과 다르고 현대 아이누인과 가장 유사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야요이인의 두개골은 현대 일본인과 가장 닮았다. (중략) 아이누인은 야요이를 지배한 한국인과 현대 일본인의 유전자가 뒤섞인 조몬인의 후손일 확률이 크다. (중략 / 한국의 농업의 발전으로) 마른 논에서의 비생산적인 벼농사가 아닌 관개 수로를 이용한 벼농사의 발전, 추운 기후에 견대는 벼 품종의 지속적인 개량, 한국의 식량 생산 인구 증가와 이주에 대한 압력, 나무 삽과 괭이, 벼농사에 필요한 다른 기구 등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한 철기의 발달이다. 철과 집약 농업이 동시에 일본에 전파된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650~2쪽)
일본어를 보면서 한국어와 유사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다. 어조사 어미 '가'와 '야', 한문을 이용한 단어와 글자 모양, 어순 등. 그런데 언어학자들에게는 그런 정도의 차이는, 15% 정도의 유사성은 비슷하다고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신라의 통일 전에 한반도에서 사용했던 언어들 중의 하나가 철기, 농업기술과 함께 일본 규슈를 거쳐 교토에 정착하면서 야요기 문화를 만들었다고 본다.
"일본어와 아이누어 사이에는 뚜렷한 관련이 없고, 일본어와 한국어 역시 큰 차이를 보인다. 겨우 2400년 전에 민족의 융합이 일어났는데, 어떻게 해서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단 말인가? (중략 / 일본 열도의 길이는 2400km로 매우 길고) 10000년 동안 조몬 시대가 지속되면서 그에 상응하는 언어적 다양성 역시 크게 발달했을 것이다. (중략) 아이누어가 일본 북단에서만 사용되던 언어였다는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편 규슈에서 사용되던 조몬어는 폴리네시아와 인도네시아어 및 타이완의 토착어가 속하는 오스트로네시아 어족과 같은 뿌리에서 파생되었을 것이다. 많은 언어학자들은 일본어가 오스트로네시아 어족에서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다 (중략) 삼국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했다. (중략) 일부 전해지는 고구려어 단어들을 보면, 현대 한국어보다 오히려 옛 일본어의 그것과 더욱 유사하다." (652~4쪽)
다 읽었다. 인류사도 비록 실험과 재현은 불가능하지만 과학이다. 자연 환경의 영향으로 인구가 늘고, 식량 생산이 늘고, 균이 늘고, 기술이 늘고, 점령 지역이 늘어난다. 고대와 중세, 근세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런 상황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지역 결정론이다. 유전자 분석이 뒷받침된, 다시 말하면 과학의 방법론이 도입된 지역 결정론으로서 인류사도 과학이다.
인종 차별은 없어야 하며, 어느 특정 시기에 유리한 조건을 토대로 앞서 나가는 민족은 있어도 태어날 때부터 위대하거나 저열한 민족은 없다. 그것이 과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