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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홍수 이야기를 담은 점토판을 든 아슈르바니팔_미술이야기 1권 02_210120 el veinti de enero el miercoles

아들과 이틀째 도로 연수 중이다. 작년에 비해 훨씬 여유로웠지만 홀로 운전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이틀 동안 200km를 탔지만 운전에 익숙해지려면 1만 km 이상을 혼자 운전해야만 한다. 길고 긴 과정이다. 금왕과 진천을 잇는 도로도 이제 제법 많은 차들이 통행하고 있다. 2020년 12월에 우리나라 인구가 처음으로 줄어들어 51,829천 명이 되었다. 2019년 12월 51,849천 명에 비해 2만 명이 줄어들었다. 원래 예상은 2025년부터 줄 것으로 예상했는데 5년 이나 앞당겨졌다. 그래도 차는 계속해서 늘어난다.

 

미술이야기 1권을 읽으며 가장 즐거웠던 점은 처음보는 신기한 사진들과 도해를 통한 설명이다. 특히, 그림의 특정 부위를 콕 찍어서 설명해 주기 때문에 어디를 설명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없어서 좋다.

 

III 삶은 처절한 투쟁이다_메소포타미아 미술

 

시리아, 이란, 이라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땅 메소포타미아. 인류 최초의 도시 문명인 수메르 문명을 건설한 이 땅에는 수많은 민족들이 도시국가들을 세우고, 통일과 분열을 거듭하며 힘든 시기를 보냈다.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 강의 상류는 터키에서 발원하여 흐르는데, 중류는 사막지역이고, 하류는 물길이 보존되기 힘든 지역으로 도시 문명을 관리하기에 어려움이 컸다. 자연도 도시도 안정된 권력을 유지할 수 없는 조건이어서 수많은 국가들이 명멸하게 된다.

 

이곳에서 재미있는 유물을 보았다. 인장. 둥근 원통형으로 점토판 위에 굴리면 소유자의 이름과 관련 정보가 새겨지는 유물. 생각도 독특하고 효율도 높은 물건이다. 이 유물은 인더스 문명의 모헨조다로 유적에서도 발굴된 것으로 기억한다. 이집트에는 청금석(라피스 라줄리)을 제공하고 인도에는 인감 도장을 전해 준 모양이다.

 

"풍요로운 현실을 바탕으로 영원한 내세를 꿈꾼 이집트 사람들의 작품에서는 여유와 낙관주의가 드러납니다. 하지만 메소포타미아의 미술에는 냉혹하고 잔인한 모습이 자주 드러납니다. 자연과도 이웃 도시들과도 끝없이 싸워야 했던 치열한 삶의 흔적이 미술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는 거죠. (중략) 아시리아의 경우 한 해에도 수십 번씩 전쟁을 치렀다고 합니다." (420쪽)

 

오이디푸스 신화의 뿌리인 바구니 전설, 모세의 바구니 전설의 원형이 아카드의 왕 사르곤 1세의 전설에 그대로 나타나는 것도 재미있다. 수메르의 길가메시 서사시에 나타나는 대홍수가 구약의 노아의 방주로 전해지는 것처럼 모든 문명은 이야기를 공유하고 자신들에 맞는 변형을 추구한다. 유대 문명에는 반인반수의 전설이 없다는 것이 또한 신기하다.

 

"전설에 의하면 사르곤 1세는 태어날 때부터 기구한 운명에 처했다고 해요. 여사제의 사생아로 태어나자마자 갈대 바구니에 담겨 버려졌다는 거죠. 왕의 정원사가 그를 구출해 키웠고, 이후 이슈타르 여신의 (이집트의 이시스 여신. 그리스 신화의 비너스와 아프로디테의 원형) 총애를 받아 왕위에 오르게 됐다고 합니다."

 

태양신, 모든 에너지의 원천이며 지구에 생명을 만든 돌연변이의 근원이고, 모든 생명을 생동하게 하는 힘이다. 태양이 쨍하게 떠 있을 때, 일도 여행도 휴식도 즐겁다. 생명도 영혼도 없는 핵융합에너지의 덩어리가 모든 생명에게 축복을 내린다. 

 

"고대미술에서는 법이나 정의가 태양신과 관계있는 것으로 표현된 경우가 많습니다. 태양은 언제나 아침에 떠서 저녁에 지고, 고정된 경로를 따라 이동하는 규칙적인 천체입니다. 고대인들은 이 규칙성을 법으로 받아들였던 겁니다. 또 태양은 밝은 빛으로 어둠을 물리치기 때문에 정의의 신으로 여겨집니다. 정의로운 신이 함무라비에게 지휘봉과 반지를 주고 있는 거죠. 함무라비 법전은 함무라비가 제멋대로 정한 게 아니라 신으로부터 받아 세운 체계라는 걸 백성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했던 겁니다." (433쪽)

 

아시리아의 아슈르바니팔 왕이 도서관을 건설하여 3만 여 개의 점토판을 모아 두었고, 그 속에 홍수 이야기를 담은 길가메시 서사시가 보관되어 있다. 히타이트 무와탈리 2세와 이집트 람세스 2세 사이의 휴전에는 아시리아의 등장이 있었다. 아시리아가 유대를 정벌할 당시에 이집트가 유대를 지원하였으며, 많은 흑인 병사들이 희생되었다. 수메르의 우르, 아카드, 바빌로니아, 우르 제3왕조, 히타이트, 아시리아, 신바빌로니아로 이어지는 메소포타미아의 국가들의 운명이 지금의 중근동 상황을 미리 설명하고 있는 느낌이다. 예전에는 문명을 건설하면서 전쟁을 했지만 현대에는 파괴 살륙전이 벌어지므로 문명을 건설할 시간은 없다. 전쟁은 곧 폐허로 가는 길이 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아시리아 미술 재단 설립을 기념해 프레드 파라드가 제작한 아슈르 바니팔 청동상, 길가메시의 이미지를 차용했으며, 길가메시 서사시에 기록된 홍수이야기 점토판을 들고 있다 / 480쪽 촬영

 

라마수라는 기이한 모습의 동상을 본 기억이 난다. 아시리아의 왕궁 수호신인 라마수. 인간의 머리와 사자의 몸, 하늘을 나는 날개를 가지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앞에서 볼 때나 옆에서 볼 때, 모두 네 개의 다리로 역동적인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다섯 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영국박물관과 루브르박물관에 별도의 아시리아관이 있을 정도로 니네베와 님루드의 왕궁으로부 수많은 부조와 조각이 발굴, 약탈되었다고 한다. 힌두의 경전 라마야나의 라마와 발음이 같은데 관련이 있을지 궁금하다. 죽어가는 암사자의 부조는 실물을 보고 싶다. 얼마나 멋질까.

 

"아슈르바니팔 왕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닌 로봇처럼 딱딱한 모습이지요. 하지만 죽어가는 사자를 표현한 방식은 다릅니다. 표정이나 세세한 근육의 묘사를 보세요. 작가가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 사자의 동적인 움직임을 생생하게 표현해냈습니다." (478쪽)

 

479쪽 촬영

 

문화 유산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극도로 분열된다. 멋진데 잔인하다. 타지마할을 세운 샤자한은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지은 묘지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건설 인부들을 살해했다고 한다. 물론 반란을 일으킨 아들 아우랑제브가 자신의 쿠데타를 정당하다고 주장하기 위해 나쁜 의도를 가지고 이런 풍문을 만들어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름답고 뛰어난 예술 작품이 있어서 아그라와 델리의 많은 시민들이 관광으로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런 유산을 만드는 일은 잔인하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해 수원성을 지었지만 당시 농민들의 희생이 아니라 일당을 지급하여 삶을 영위하게 했다. 수원성을 빠른 시일 내에 완공할 수 있었던 동력은 정약용의 기술과 정조의 애민 정책, 그리고 농민들의 즐거운 노동에 있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이집트 고왕국의 왕들도 농한기에 임금을 주고 메르를 건설했다고 한다. 5천 년 전의 멋진 일이다.

 

신 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유태인을 비롯한 노예 노동력으로 바빌론의 이슈타르문과 바벨탑을 건설했다. 아름다운 문화 유산이어서 꼭 보고 싶지만 인간으로 태어나서 노예로 살아간 수많은 선배들의 삶들이 안타깝다. 이슈타르문은 복원되어 베를린 페르가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바벨탑을 세웠던 바빌론의 구자라트는 폐허만이 남아있다.

 

499쪽 촬영

 

더 안타까운 일은, 노예노동으로 이루어진 도시 페르세폴리스를 파괴한 정치인의 의도다. 어떻게 건설한 문명인데, 하루 아침에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다니. 페르시아는 디아스포라로 뿔뿔이 흩어졌던 유대인들을 종교의 자유를 주면서 팔레스타인으로 되돌려 보내고, 모든 제국의 시민들에게 자율권을 부여한 열린 정치를 실현한 제국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알렉산더 대왕을 거대 제국을 건설했던 위대한 정복 군주로 기억합니다.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조금 과장된 부분도 있습니다. 사실 알렉산더가 꺽은 제국은 페르시아 하나뿐이거든요. 페르시아가 먼저 거대 제국을 건설했고 알렉산더 대왕이 그 제국을 삼켰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겁니다. 기록에는 알렉산더 대왕이 실수로 화재를 일으키는 바람에 페르세폴리스가 불탔다고 전해지지만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의도적으로 페르세폴리스를 파괴했다고 봐야지요. 페르시아라는 위대한 왕국을 입증하는 거대한 도시를 불태우지 않으면 새로운 질서를 확립할 수 없었던 겁니다." (519쪽)

 

이 책은, 그동안 부분부분 알고 있었던 내용들을 잘 정리해서 엮어 주어 머리 속을 환하게 밝혀준다. 수메르인의 우르 왕조 - 아카드 왕조 - 우르 3왕조 - 바빌로니아 - 히타이트 - 아시리아 - 신바빌로니아 - 페르시아. 이란과 이라크, 시리아, 이집트, 레바논, 요르단 그리고 터키의 오늘을 있게 한 뛰어난 문명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다. 문명 수립 이후 단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었던 나라들이지만 이제 곧 그들의 땅에도 평화가 있기를.

 

21일 목요일 천재와 함께 하우스 흙채우기를 했다. 혼자서 할 때는 하루 종일 해도 열 수레 이상을 하기 어려웠는데, 불과 두 시간 만에 스무 수레는 작업을 한 모양이다. 이제 30% 정도만 더 흙을 채우면 된다. 논에도 흙을 채우려고 한다. 계속 논으로 사용할지 밭으로 전환할지 아직 결정은 못내렸다. 어차피 이 지역은 주거단지로 점차 전환될 것이다. 밭으로 바꾸어 일을 하려면 많은 일손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