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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부도덕한 수익 추구가 금융 위기를 불렀다_어게인 쇼크 02_210115 el quince de enero

2. 탈산업화와 고삐 풀린 자본

 

2009년의 경제 위기를 서브 프라임 모기지를 중심으로 한 금융 파생상품의 문제라고 들었다. 아니었다. 부도덕한 수익 추구였다. 금융공학과 수학으로 만들어진 부채담보부 증권 Collateral Debt Obligation, CDO가 가능하게 만든 부도덕한 수익 추구였다. 성공의 시기에는 위대한 금융이지만 실패하면 사기가 되는, 그런 위험한 선진(?) 금융기법이다.

 

"금융 위기 이후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은 미국 하원 감독·정부개혁위원회의 금융 위기 청문회에 출석(2008년 10월 23일)하여 '내가 기대했던 바와 달리 금융기관들이 주주들과 투자자들을 보호하지 못했다'며,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규제를 반대했던 자신의 잘못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87~88쪽)

 

부채담보부 증권 CDO를 알아야 한다. 최배근 교수는 제조 과정을 알아야 한다고 표현했다. 부채담보부 증권 CDO는 복합파생상품이며 구조화 금융상품이라고 한다. 원리는 단순하지만 너무 그럴싸해서 사기라고 믿기지 않는 채권 금융상품이다. 채권 두 개 이상을 '하나의 구조 Pool'로 만든 다음 두 개 이상으로 분할한 채권 tranche으로, 구조를 바꾼 뒤에 안전한 채권인 것처럼 투자하게 만들어 수익을 올리는 파생 상품이다. 안전하게 보이게 할 때, 수학의 확률을 이용한다. 이 수학도 간단한데,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무슨 대단한 수학이라도 들어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더욱 안 좋은 것은 1단계에서 만든 위험성 높은 채권들을 다시 주워 모아 2단계로 분할하여 다시 판매하는 것이다. 이 채권들은 수학의 확률로는 안전해 보이지만 '쓰레기 채권 junk bond'으로 투자자를 울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더욱 좋지 않은 것은 기초 자산이 '비우량주택 담보 대출 subprime mortgage'라는 것이다. 위험도 높은 '비우량 대출'을 토대로 해서 만들어졌으니, CDO는 더욱더 위험했고, 2009년 경제 위기를 만들어 전 세계를 혼란에 빠트린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부채담보부 증권 CDO의 탄생이, 파생금융상품의 가치를 계산하기 위해 만들어진 블랙-숄즈 모형에 기초한 것으로, 숄즈는 이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고 한다.     

 

제일 먼저 금융기관의 기초자산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금융기관이 운영하는 돈은 투자자들이 예치한 자금일 텐데, 이것은 부채다. 금융기관의 기초 자산은 이 부채, 고객의 자금을 이용하여 대출을 일으킬 때 생겨난다. 주택담보대출금, 기업대출금, 학자금대출금, 자동차대출금 등이 금융기관의 기초 자산이다. 이제 부채담보부 증권 CDO의 제조과정을  자세하게 따라가 보자.

 

1) 10%의 채무 불이행 default 확률을 가진 채권 A와 B가 금융기관의 기초 자산이다. A와 B는 채무 불이행이 일어나면 수익이 없고, 채무상환이 이루어지면 수익이 생긴다. A와 B는 금융기관이 10%의 위험을 안고 가지고 있는 채권이다. 

 

2) 원래 각각이었던 A와 B를 하나로 묶는다. 즉 풀 Pool을 만든다.

3) 2)의 풀 Pool을 기초로 하여 새로운 C와 D라는 분할 채권을 만든다. 이 방식이 재미있다. 금융기관은 적절한 수익을 붙여 그냥 A와 B로 판매를 해도 되는데, 굳이 새로운 채권 형태를 만들어 일을 복잡하게 한다. 다른 사람들은 이해를 못하게 하는 것이다.

 

C는 선순위 트랑세 senior tranche로 두 개의 채권(A와 B) 모두가 상환되지 않았을 때만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채권이고,

D는 후순위 트랑세 junior tranche로 두 개의 채권(A와 B) 모두가 상환될 때에만 수익이 발생하는 채권이다. 

tranche는 불어로 영어의 slice 즉 조각이라는 뜻이다. 말을 어렵게 만들어 뭔가 있어 보이게 만드는 일이다.

 

4) 트랑세 tranche를 발행할 때 A와 B는 서로 관련되어 있지 않다고 가정한다. 즉 A와 B의 채무 불이행은 독립 사건이다. 그래야 3)이 성립할 수 있다. A와 B의 채무 불이행이 연관된다면 CDO는 만들어질 수 없다. 

 

5) C의 채무 불이행 확률은, A의 불이행 확률 x B의 불이행 확률 = 0.1 x 0.1 = 0.01, 1%가 된다. 즉 10%의 위험을 안고 있는 채권 A와 B가 동시에 불이행되지 않는 이상은 수익이 나기 때문에 이렇게 확률 계산이 된다. 선순위 트랑세 senion tranche는 기초 자산의 위험률이 10%인데, 갑자기 1%로 위험률(99% 안전한 채권)이 대폭 낮아졌다. 높은 신용등급을 받은 C는 당연히, 기초자산인 A와 B 보다 높은 값으로 판매할 수 있고, 금융기관에 이득이 발생한다. 

 

6) D의 채무 불이행 확률은, 1- (A의 이행 확률 x B의 이행 확률) = 1- (0.9 x 0.9) = 1- 0.81 = 0.19, 19%가 된다. 이것은 기초 자산 A와 B의 불이행 확률인 10% 보다 훨씬 높다. C의 불이행 확률이 1%로 낮아지는 대신에 대부분의 위험은 D로 옮겨졌다. 이 부분이 말이 안 된다. A와 B의 불이행 확률을 어떻게 C와 D로 나누어 마음대로 옮길 수 있나. 말로는 그럴싸하다. 물론 신용 창조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기는 하지만 말이다.

 

7) 이번에는 A와 B, 그리고 E 세 개의 기초자산으로 풀 Pool을 구성해 보자.

 

8) 선순위 채권 senior tranche F는, 세 개의 채권 모두 불이행한 경우만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면 F의 위험률 = A의 불이행 확률 x  B의 불이행 확률 x E의 불이행 확률 = 0.1 x 0.1 x 0.1 = 0.001, 0.1%다.  기초 자산의 위험률이 10%인데, 3개를 합쳐서 구성한 트랑세는 0.1%로 완전히 안전한 채권으로 보인다. 수학으로 일으키는 착시다. 

 

9) 중순위 채권 mezzanine tranche G는, 두 개 이상의 채권이 불이행되면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분할 채권이다. G의 위험률 = A, B, E 세 개의 채권 모두 불이행될 확률 + A, B, E 셋 중 두 개의 채권이 불이행될 확률 = (8)에서 구한 확률) + (0.9 x 0.1 x 0.1 x 3) = 0.001 + 0.027 = 0.028, 2.8% 

 

10) 결국 8)과 9)의 위험률은 기초 자산의 불이행 확률보다 훨씬 낮은 안전한 분할 채권이 된다.

 

11) 후순위 채권 junior tranche H는, 세 개의 채권 A와 B, 그리고 E 모두가 채무상환이 이루어지면 수익이 발생한다. 이 트랑세의 위험률은, 1 - (A의 이행 확률 x B의 이행 확률 x E의 이행 확률) = 1 - (0.9 x 0.9 x 0.9) = 1- 0.729 = 0.271, 27.1% 매우 위험한 채권이다.

 

12) 채권 A와 B, 그리고 E가 보다 안전한 F, G 트랑세와 위험을 몰아놓은 H tranche로 파생된다. 

 

13) 더욱 괴이한 것은 H를 2차 트랑세하여 안전한 채권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14) 위 6)에서 위험률 19%인 후순위 채권 junior tranche D를 또 하나의 후순위 채권과 묶어 풀 Pool을 만들 수 있다. 두 개의 후순위 채권 D1과 D2를 2차 쪼개기 tranche를 하면,

 

15) 선순위 채권 I 와 후순위 채권 J를 만든다.

 

16) 선순위 채권 I 의 채권 불이행 확률 = D1의 불이행 확률 x D2의 불이행 확률 = 0.19 x 0.19 = 0.0361, 3.61%. 그러므로 위험 확률이 기초 자산 A, B 보다도 절반 이하로 줄어든 마술이 일어난다. 19%의 위험률이 3.61%로 줄어든다. 맙소사. 위험률을 임의로 후순위 채권 J로 몰아 버렸다.

 

17) 구조화 금융의 핵심 아이디어는, 기초 자산의 Pool에 많은 증권을 포함시킬수록 기초 자산의 평균 신용등급보다 높은 등급을 갖는 트랑세를 많이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18) 증권들을 각각 독립해서 평가하여 "채무 불이행의 상관관계 default correlation"을 무시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19) 결국 '비우량주택 담보 대출 subprime mortgage'를 기초 자산으로 하여 2005~2007년간 발행된 CDO 중 AA+ 등급 이하의 모든 CDO는 사실상 '쓰레기 채권 junk bond' 였다. 

 

20) 파산한 메릴린치가 AAA 등급으로 인정한 30개의 CDO 중 27개가 '쓰레기 채권 junk bond'였다.

 

일단 금융 산업에서 혁신 기법이라는 것이 엄청나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이용한 부의 증대를 가져오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아니었다. '금융혁신'은 너무 위험해서 장롱 속에 처박아 두어야 할 채권들을 기반으로 새로운 투자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계모임'이 위험한 것은 책임지지 않기 때문인데, 위험률이 높은 채권들에 대한 투자도 계모임과 별로 다르지 않다. 위험이 높으면 수익도 높은 것은 사실이다. 돈을 벌 때는 좋지만, 사고가 나면 크게 난다. 금융 위기는 금융기관에게 자율규제나 최소규제라는 이름으로 금융산업에 대한 규제완화를 해 준 결과다. 불과 10년 만에 크게 사고가 터진 것이다.

 

"1999년 '금융 서비스 현대화 법안 Financial Modernization Act, Gramm-Leach-Billey Act'의 통과로 금융 업무의 겸업을 허용함으로써 은행-증권-보험 회사의 칸막이 노릇을 해 왔던 '글래스-스티걸법', 이른바 '뉴딜 판' 금융규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중략) 대공황 발발로 1933년에 만들어진 글래스-스티걸법이 작동했던 시기, 즉 금융규제완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던 1980년 이전까지는 은행 위기가 발생하지 않았다 (중략) 은행 위기가 사라졌던 1933~1980년 기간은 강한 성장세와 소득 불평등이 완화되었던 기간이기도 하다." (92~3쪽)

 

2009년에 금융 위기가 발생했을 때,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통화를 마구 찍어내어 경제 위기를 넘겼다. 은행들이 일부 파산하고 합병되기는 했지만, 정부가 세금이나 발권력으로 돈 많은 투자자들의 더욱 큰 파국을 막아내었다. 그렇게 한 이유는, 경제의 추락으로 죄 없는 시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혜택을 입은 것은 시민들이 아니라 투자자라는 이름의 부자들은 아니었을까. 금융투자는 중산층 이하의 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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