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kg의 닭을 삶아서 소금 후추에 찍어 먹으며 인삼주 한 잔을 했다. 평범한 휴일의 하루다. 늘 휴일이지만 가족 모두가 함께 하고 있으니 진짜 휴일이다. 양정무 교수가 쓴 미술이야기 1권은 원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를 다룬다. 원시인들이 이렇게 생각했다는 것을 처음으로 들었다. 원본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느끼지 못한 것일까.
"구석기인은 돌의 원래 생김새와 특징을 그대로 살려 조각을 만들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들이 동굴 벽에 그린 황소를 보면 벽의 튀어나온 부분을 절묘하게 이용해서 금방이라도 벽을 박차고 나올 듯이 생동감 넘치게 표현했습니다." (6쪽)
I. 미술을 아는 인간이 살아남는다
언어와 함께 미술을 통해 사회를 조직한 사피엔스는 살아남았다. 네안데르탈인에 비해 연약한 사피엔스들이. 언어는, 인간의 두뇌에서 받아들인 외부 세계를 음성과 몸짓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림은, 인간의 두뇌에서 받아들인 외부 세계의 영상을 다시 바깥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표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각과 의미를 더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렇게 이미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지식과 경험에 맞춰 시각 정보를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투사라고 합니다. 이 투사야말로 인간이 이미지를 창조하는 데 (그림을 그리는 데) 큰 역할을 하는 능력이지요. (중략 / 미켈란젤로는) 조각가가 하는 일이란 돌 안에 들어 있는 형상을 해방하는 것뿐이다. (중략) 우리가 달에서 토끼 모습을 읽어내는 것처럼 미켈란젤로도 투사 능력을 발휘했던 것이겠지요. (중략) 구석기 화가와 미켈란젤로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시간이 가로놓여 있지만, 둘 다 원재료를 둘러싼 환경에서 잠재적 형태를 끄집어내는 투사 능력을 발휘했다는 점만은 비슷하지요." (77~8쪽)
인류 최초의 예술품이라는 반인반수를 비롯해서 라스코 동굴 벽화의 새머리를 가진 사람 등 여러 형태의 반인 반수의 그림들이 등장한다. 사피엔스들에게 동물들은 엄청난 힘을 가진 생명체였다. 곰이나 사자는 신으로 숭배되었다. 사람이 위대해지거나 신령한 기운을 받으면 동물과 소통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을 기원하고 표현하는 것이 바로 반인반수다.
제목을 읽고 나서는 대단한 논증이 펼쳐지는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구석기인들은 단순히 취미 활동으로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주술과 동물숭배 신앙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미술 활동은 언어의 발달이 없으면 불가능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유인원 중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후손으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피엔스가 언어와 미술을 함께 발전시켰을 것으로 추정한다. 미술은 언어와 함께 지성 활동의 결과물, 가상의 실재를 표현하는 행위다. 결국 미술을 아는 인간이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다. 호주의 원주민도.
반구대 암각화 박물관에 실물 크기의 암각화가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올 겨울에 반드시 다녀와야겠다. 아울러 전국에서 비슷한 문양의 빗살무늬토기가 발견된다는 것은 대단히 주목할 일이다. 한반도의 사피엔스들은 서로 소통하며 예술품을 창작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오른쪽 원안에 들어 있는 말의 두상에 집중하자. 벽의 튀어나온 형상을 이용하여 점박이 말을 그렸다. 화가가 알고 있는 이미지를 동굴 벽에 투사하여 그렸다. 손도장. 아르헨티나 최남단의 어느 동굴에 있는 무수한 손도장과 같은 방식으로 그려진 것이다. 입으로 물감을 불어서. 사피엔스들이 서로를 가르쳤던 모양이다. (76쪽의 그림을 촬영했다)
2. 그들은 영생을 꿈꿨다 : 이집트 미술
BC 3000년 경에 형성된 이집트 문명은 6,700km가 넘는 나일강을 따라 서안(저승 세계의 땅)과 동안(생명의 땅)으로 나뉘어 발전하였다. 고, 중, 신왕국을 거치면서 30개의 왕조가 3천 년 동안 이집트를 지배했고, BC 30년 로마에 의해 멸망당한 마지막 왕조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안토니우스와 함께 자살한 클레오파트라 7세가 마지막 파라오다. 이집트 문명은 3천 년 동안 거의 변화가 없이 유지되었다.
"기술의 완벽성은 '작품을 언제 끝낼까?' 하는 문제와도 관련이 있거든요. (중략) 이집트 사람들은 손을 뗄 그 순간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어요. 작품이 완벽해지는 순간 정확하게 멈출 줄 알았던 겁니다. 어떤 작품을 보아도 마감을 어찌나 잘했는지 경탄하지 않을 수가 없죠. (중략) 가끔 이집트 문명을 외계인이 세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왜 그런 소리를 하는지 그 까닭만큼은 이해가 갈 정도입니다. 이 압도적인 완성도" (204~8쪽)
이집트 회화의 특징은 1) 정면성의 원리 2) 그리드 기법으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문자의 역할도 했다.
이집트 조각의 특징은 사실을 묘사하는 것으로, 죽은 사람의 영혼이 똑같은 모습의 조각상에서 낮에는 쉴 수 있게 했다.
40층 높이의 메르(피라미드). 쿠푸 - 카프레 - 멘카우레 3대의 무덤이 나란히 지어진 고왕국 시대의 문명이 꽃 피던 시절이다. 평민들이 농한기에 임금을 받고 건설한 거대한 무덤으로 귀족들의 무덤과 부속 건물들로 이루어졌다.
"640년경 이슬람 세력에게 정복당한 이후로 피라미드도 크게 훼손되었고요. 이슬람 통치자의 입장에서는 이교도가 남긴 거대한 종교 건축물이 불편했을 겁니다. 술탄 무하마드 알리는 피라미드 외벽을 뜯어내 자기 성을 짓는 데 썼고, 피라미드를 완전히 파괴하려고도 했습니다. 피라미드가 너무 커서 성공하지 못했을 뿐이지요." (254쪽)
카프레 메르(피라미드)와 세세푸우(모래 속에서 세세푸우를 발굴한 투트모세 4세는 지평선의 호루스라고 명했다 / 스핑크스)는 그리스인들의 기록에 의존해 설명해 왔다. 이집트 신성문자가 1822년에 샹폴리옹이 뒤늦게 해석했기 때문이다. 이집트는 아프리카 문명이며, 아프리카 내륙의 발달한 고문명을 계승한 문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럽 사람들이 '그리스 문명은 아프리카 문명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어려워 이집트 문명을 아프리카 문명과는 다른 문명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한동안 이집트 연구는 그리스 사람이 남긴 기록에 전적으로 의존했습니다. 널리 알려진 헤로도토스의 "역사" 같은 책을 읽고 거기에 적힌 그대로 이집트를 이해한 거예요. 이를테면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이집트에 가서 엄청난 구조물을 보고 '삼각형 모양의 거대 건축물이니 피라미드라고 부르자' 라고 써놓은 걸 그대로 이어받은 거죠. (중략) 서양 학자들 중에는 이집트를 아프리카 문명이라고 보는 데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종종 있습니다. 서양 문명이 스스로 모태라고 생각하는 그리스 문명이 이집트 문명의 영향을 받았다는 건 반박 불가능한 사실이거든요." (267~9쪽)
지금까지 읽은 이집트 문명은, BC 3천 년 경 나일강 상류에서 내륙 아프리카의 문명을 이어받은 문명이다. 예쁜 신성문자로 충분한 기록을 남겼고, 돌을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다. 고왕국 시대의 메르(피라미드) 문명과 신왕국 시대의 왕들의 계곡에 찬란한 유산을 남겼다. 나일강의 범람이 적정 수준에서 일어나면 풍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3천 년 동안 30개 왕조가 명멸하며 독특한 문명을 세웠다. 정면의 원리와 격자 기법으로 틀을 만들어 풍부한 예술을 만들었다. 파라오들의 기록에도 가족과 함께 하는 모습이 많은 것을 보면 가족을 중시하는 현대의 모습과 닮아 있다. 그리고,
"우리가 지나온 신전의 각 공간에는 저마다 상징적인 의미가 부여 (중략) 거대한 필론은 산, 천장 없는 뜰은 열린 하늘, 기둥들이 늘어서 있는 열주전은 숲 (중략) 자연에 착안해 구조물을 하나하나 만들어낸 것입니다. (중략) 이집트 문명은 기술력이 고도로 발달한 문명인 동시에 자연과 밀접한 (중략) 고대 이집트 문명을 살펴보다 보면 현대 문명이 걷고 있는 길만이 문명의 유일한 길은 아니라는 생각" (329쪽)
또 한 가지. 세상에나. 이집트 신성문자가 상형 문자가 아니다. 소리글자다. 새와 말이 하나의 이집트 알파벳이었다. 1799년 나폴레옹이 발견했다가 영국에게 빼앗긴 로제타 스톤을 프랑스 언어학자 샹폴리옹이 해석하는 데 성공했다. 이집트학이 생겨난 배경에는 "엄청난 양의 문헌과 유물, 장구한 역사"(340쪽) 덕분이다. 새는 A, 말은 L, 갈고리는 O, 반원은 T, 네모는 P다.
삶과 죽음은 어떻게 연계되는 것일까. 어떤 생명도 죽음에서 회생할 수는 없고, 유전자에 의해 세대를 이어갈 뿐이다. 나는 죽음 앞에서 외로운 존재일 뿐이다. 생명을 이어받아 생명을 누릴 때, 충분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 생명은 죽음에 이를 때까지 존재하는 모든 생명과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 속에서 학문과 예술, 사랑과 행복이 솟아오른다. 다음 생명에게로 내 생명을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완전히 새로운 생명의 세상으로 이곳을 잊고 떠나야 한다. 생명의 흔적으로는, 생명을 위한 '정신과 세계의 평화를 위한' 싱싱한 양분을 남길 수 있다면 충분할 것이다.
"현대미술이 인체의 허무함과 유한성을 통해 드러내는 문명의 한계는 이집트 미술에서 보이는 인체에 대한 신뢰와 애정과 대비해봤을 때 충격적일 정도의 온도 차 (중략) 이집트 사람들은 죽음을 삶의 연장이라 보고 현세를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여겼기에 신체를 신성시하며 보존했던 겁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현대인은 그렇지 않잖아요.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니 도리어 죽음을 강하게 부정하고 꺼리는 거죠." (354~5쪽)
재미있게 잘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