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이야기/서재

풍작을 비는 얄라셩과 뉴기니의 정치가 얄리_총균쇠 01_210104 el quince de enero el viernes

1972년 7월, 대학교육을 받지 않은 젊은 정치가 얄리는 독립을 준비하고 파푸아뉴기니에서 만난 제레드에게 묻는다.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15쪽)

 

얄리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제레드가 그들의 지능을 검토해 봤다. 지난 14,000 년 동안 수많은 전쟁과 살인, 여러 가지 사고, 먹거리 조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연선택에 의해 뉴기니 사람들의 지능은 높을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아이들은 친구들과 부모와 공동체의 어른들과 대화하고 행동하며 자라나야 하는 환경 때문에 더 높은 정신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도 '화물'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그들은 왜 개발하지 못했을까.

 

그리미는 역류성 식도염, 스트레스와 신지로이드 부작용으로 인한 심장 질환으로 일주일째 고전 중이다. '얄리'라는 사람이 제레드에게 던진 질문과 답변 과정을 보다가 왜 이렇게 얄리라는 단어가 익숙할까 했더니 바로 고려가요의 후렴구이기 때문이다. 청산별곡의 후렴구. 검색을 해 봤더니 2020년 5월에 발간된 '성호경'의 "얄리 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의 뜻과 특질"이라는 국문학회 논문 초록에 이런 글이 실려있다. 일단 이 논문이 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였는지 알 수 없고, 몽골과 뉴기니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가, 뉴기니는 농업이 아니라 수렵 채집 생활을 하는 곳이므로 풍년을 이루라는 감탄사가 뉴기니의 이름으로 되지는 않았으리라.   

 

"이 글에서 필자는 <청산별곡>의 후렴이 지닌 뜻을 몽골어로써 파악해 보았고, 그 후렴의 특질에 대하여도 살펴보았다.
“얄리 얄리 얄라셩(또는 ‘얄랑셩’) 얄라리 얄라”는 몽골어의 명사 šeng(뜻은 ‘되[升]’)이 주어인 자동사 yali-(‘매우 많은 양이 되다; 좋은 품질이 되다’)의 2인칭 명령형(yali)들과 자원형들(yali-ya, yali-ya-n), 그리고 yali-의 현재 동명사형에 대격 조사가 붙은 말(yalii-yi 등)을 목적어로 한 타동사 ali(‘주어라! 나에게 다오!’)의 명령형이 이어진 것의 표기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 뜻은 ‘대량(또는 양질)이 되십시오! 대량이 되십시오! (우리) 대량이 되게 하십시다, 되가(곡식이)! 대량이 됨을 주십시오! 대량이 되게 하십시다!’ 등일 수 있다. 
그 작자는 뜻과 형태가 비슷한 몽골어의 명령법 형식들을 변화감 있게 반복하고 청자를 바꾸어 가며, 풍작을 바라는 화자의 간절한 요구를 묘미 있게 표현하고 전방위적으로 청원하게 했다. (중략) 그 소리들은 단조로움을 피하면서 원활하고 유창하며 밝고 산뜻한 어감을 준다. 그리고 같은 어간에 비슷하면서도 다른 형태의 어미들이 붙은 말들 등의 반복은 ‘통일성 확보와 그 속에서의 변화성 부여, 주제의 강조와 확장, 재미를 줌’ 등의 기능을 수행하며, 같거나 비슷한 모음들 또는 자음들의 조합은 청각적인 조화와 관련되는 효과들을 거둘 수 있다. 이와 같은 뜻과 소리의 특질을 지니기에, <청산별곡>의 시상 및 정서와는 딴판인 그 말들이 고려 궁중 공연에서 임금에 대한 찬양의 성격을 띨 수 있는 말로서 후렴 자리에 들어갔으며, 조흥의 구실도 인상적으로 잘 수행했을 것이다."

 

제레드가 이 책을 쓰는 이유를 뚜렷이 밝힌다. 중국과 한국, 인도가 위대한 1,500년을 보냈는데도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도 밝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개항에 성공한 일본이 아시아에서 가장 위대한 민족이라는 착각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설명이 나오리라는 기대가 든다.  

 

"각 인종들 사이의 바뀌기 어려운 지위 차이가 뚜렷이 눈에 보인다. 우리는 1500년 당시의 세계적 불평등에 대한 생물학적 설명이 얼핏 보기에는 명료해도 사실 옳지는 않다고 믿지만 정확한 설명은 아직 어디에서도 듣지 못하고 있다. 역사의 광범위한 경향에 대하여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어떤 상세하고 설득력 있는 설명이 나올 때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인종차별적인 생물학적 설명이 정확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것이다." (32쪽)

 

잘 사용하지 않는 연대들이니 기억하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사람이 고릴라 침팬지와 다른 진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 700만 년 전 => 오스트랄로피테쿠스 250만 년 전 => 호모 에렉투스 170만 년 전 => 호모 사피엔스 50만 년 전 => 알래스카 이주 BC 12,000년 => 클로비스 유적 BC 11,000년. 이 정도는 머리 속에 넣어 두어야 한다.

 

아메리카 대륙 전체에 사피엔스가 대규모의 이주와 정착이 완료된 흔적들이 수백 군데에 걸쳐서 발견된다는 시기가 BC 11,000년의 일이다. 사피엔스의 구석기 문화 흔적들이 클로비스에서 처음 발견되었기 때문에 이 모든 유적들을 클로비스 유적이라고 부른다. 구석기 유물의 분석과 탄소연대측정으로는 논란이 일고 있지만, DNA 분석을 통해 클로비스 유적이 아메리카의 최초 구석기 문명인 것으로 증명되고 있다. BC 11,000년은 지구가 경험한 마지막 빙하기의 끝이었다.

 

"시간을 BC 11,000년으로 거슬러 돌아간 관찰자는 어느 대륙의 인간 사회가 제일 빨리 발전할 수 있을지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며 그 어느 대륙에도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결과를 이미 보았으므로 유라시아가 제일 빨랐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유라시아 사회가 더 빨리 발전한 이면에는 우리가 상상해 본 BC11,000년으로 돌아간 고고학자가 짐작했던 단순한 원인들이 아니라 진짜 원인들이 따로 있었다. 이 책의 나머지 부분은 그러한 진정한 원인들을 찾아보려는 것이다." (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