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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파인만과 계몽주의 03_201018 el dieciocho de octubre el domingo_bocembhachatb bockpecebehe

파인만은 즐겁게 잘 읽었다. 물론 과학이론을 설명한 상당한 분량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앞으로도 오래도록 난항이 예상된다. 좌절하지 않은 것은 바하의 평균율과 무반주 첼로 협주곡 때문이다. 바흐의 작곡 의도를 모르고도,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해도, 음악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물리학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하더라도 과학이 즐겁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으로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1. 과학과 계몽주의 : 토머스 핸킨스 지음 / 글항아리(2016)

 

'칼을 만드는 집안'에서 태어난 디드로가 무려 10년, 1772년 총 28권이 완성되기까지 21년의 세월동안 달랑베르, 볼테르, 몽테스키외, 루소, 튀르고가 기고해서 만들어진 것이 지식의 나무이며 방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백과전서'다. 18세기에도 여전히 종교의 영향력이 막강하여 과학을 물신숭배라 매도했다. 그런 속에서 강력한 과학이 자라났다는 것이 신비할 따름이다. 명과 조선이 무시한 과학을, 마녀사냥을 하면서까지 척결하려 했던 적으로서의 과학이 넘어서 버렸다. 역시 무시당하는 것보다 싸우는 것이 낫다. 

 

"모든 과학에 대한 체계적인 사전인 『백과전서』는 상상할 수 있는 주제, 즉 종교, 법, 문학, 수학, 철학, 화학, 군사학, 농업까지 모든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게 해주었다. (중략) 반대파들은 『백과전서』가 “물질주의를 전파하고 종교를 파괴하며 도덕의 타락을 부추겨” 사회의 유대를 훼손하려는 반종교적 선전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디드로와 달랑베르는 개혁의 정신을 자신들의 작업에 녹여내려 했고, 각 주제마다 마땅한 필자를 확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440쪽)

 

201029_계몽주의의 주요한 인물들이 대부분 대혁명 이전에 자연사하고 라부와지에는 로베스피에르에 의해 단두대로 보내진다. 대혁명이 철학과 인간학의 측면에서 계몽주의의 산물이라고 보여지는데, 혁명 진행과정에서는 계몽에 반하는 폭력 행위가 난무하였다. 황제와 귀족, 계몽가, 혁명가들 모두가 폭력의 희생자들이 되었고, 실물로서의 인간들은 혁명 과정에서 살해되고 "인간과 인권"이라는 관념만이 계몽주의와 함께 살아 남았다. 근대의 관념이 살아남아서 새로운 세대를 만들어내고 있었고, 계몽시대에 발전한 과학은, 제도와 종교의 억압에서 해방된 과학은,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이 각각의 역할을 즐겁게 수행하면서 발전을 거듭하였다. 계몽의 시대에 생물학이 어떻게 발전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명사로서의 자연은, 인간의 노동에 의해 변형되지 않은 세계를 의미하며, 서술어로서의 자연은, 인간과 세계가 삶을 영위해 나가는 방식으로, 스스로 그러하다는 세계의 작동 방식이다. "자연을 설명하고 기술하는 것"이 검증과 재현을 통해 각 차원의 과학이 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세계를 설명하고 기술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은 변한다', '음양의 조화를 통해 균형을 유지한다'라는 것은 자연의 진리이자 세계의 진리가 될 것이다. 

 

"(생물학을) 계몽주의 시대의 사람들이 보았던 식으로 세상을 보려면 무엇보다도 자연사적 시각을 견지해야 한다. ‘자연사 natural history’는 자연에 대한 탐구를 의미하며 아리스토텔레스적 의미에서 ‘자연’은 인위적인 것이 들어가지 않고 형성된 물질적 세계의 일부이다. (중략) 인간의 노동과 지혜가 들어간 사물들은 거기에서 제외된다. 자연사의 방법은 기술적記述的이며 범위는 매우 넓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이를 가리켜 모든 과학의 “위대한 뿌리이자 어머니”라고 하면서 실험철학의 필수불가결한 서곡으로 삼았다." (301~2쪽)

 

(1) 자연사와 기계론 철학 : 잘 만들어 놓으면 잘 작동하는 기계처럼 인간을 포함한 세계는 기계처럼 작동한다. 기계론 철학과 자연사 연구는 서로를 발전시키다가 '생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생물학의 지평을 넓혔다.

 

  1) 종교에 밑바탕을 둔 기계론 철학은 지혜로운 창조주 하느님을 인정했다. 너그러운 창조주가 세계의 일상에 간여하지 않음으로써 무수한 창조물들이 복잡한 세계를 만들어냈다. 이 복잡한 행위들 속에서는 창조주를 발견할 수 없으며, 전체의 조화를 살펴봐야 창조주를 이해할 수 있다. 창조주는 정밀하고 아름다운 감동의 세계를 만들었다.

 

  2) 영혼이 배제된 르네상스 과학의 전통을 이어받아 계몽시대의 자연사 연구는, 생명체와 비생명체를 통합하는 이론을 추구했다. 생명의 원인을 방기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이성이며, 세계의 운동에 영혼을 배제하였다. 이런 자연사 연구는 기계론 철학과 궤를 같이한다. 생명체에 대한 이해가 낮은 상태에서 기계론과 결합한 자연사 연구는 '생물학'으로 발전하지 못했고, 기계론 철학을 거부하면서 '생명'에 대한 연구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3) 경험과학이 발전한 잉글랜드에서는 데카르트의 합리주의(추상 원리를 바탕으로 추론한 세계)를 버렸다. 기계론 철학을 바탕으로 세밀한 관찰과 연구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자연사 연구에 매진했다.

 

(2) 실험생리학 : 생명체에 대한 기계론의 설명이 실패하고 생명 현상에 대한 다양한 설명을 시도한다. 이 부분에서는 조금이나마 어떻게 실험이 되었는지가 설명되고 있어서 덜 답답하게 읽을 수 있었다. 현미경의 발달이 식물의 상태를 관찰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생리학도 지렛대, 도르래, 펌프, 체 같은 것으로 신체기관을 설명하는 것에서 벗어나 성장, 영양, 그리고 기계와는 다른 생명체의 재생과 같은 특징들에 관심을 가졌다.”(317쪽)

 

  1) 전기와 생리학 : 생명체에 '전기'라는 물리 실험의 결과를 적용하려 노력한 결과, 신체 내의 전기가 신경을 따라 감각자극과 운동명령을 전달하는 유체의 형태를 취한 사실을 밝혔다. 여기서 유체는 공기(기체), 물, 전기, 자기다. 파동은 유체인가 에너지인가. 이런 사실은 대전된 개구리의 다리가 움직이는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2) 식물의 호흡 : 말피기는 '기공'을 통해 공기를 흡입하거나 수액을 내놓는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프리스틀리는 연소와 동물의 호흡 과정에서 플로지스톤으로 오염되었던 공기를 식물들이 '탈 플로지스톤 공기(산소)'로 재생시킨다는 사실을 발혔다. 1772년 이전부터 1778년까지의 지난한 기간 동안 끈질긴 연구로 겨우 이런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프리스틀리는 식물과 동물 사이의 공기 균형은 '신의 균형잡힌 창조'의 예시라고 했다.

 

  3) 식물의 호흡은 좀 더 발전한다. 잉엔하우스는 식물을 퍼올린 자연수에 넣고 햇빛을 비추는 실험을 통해 잎이 산소를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것은 열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어두운 곳에서는 소량의 '고정 공기(이산화탄소)'를 내보낸다고 했다. 장 세느비에는 햇빛을 받는 나무잎이 물에 잘 용해되는 고정공기를 흡수하고 산소는 내보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소쉬르는 식물은 진공상태에서 살 수 있고, 필수 기체들이 없어지면 죽으며, 고정 공기의 농도가 8%일 때까지는 살 수 있다고 했다. 소쉬르는 물은 식물의 영양분이면서 영양분 전달자이고, 질소는 대기가 아니라 토양해서 흡수한다고 실험을 통해 밝혔다.

 

생명현상에 대한 실험과 관찰을 위한 노력은 눈물겹다. 그중에서도 소화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알기 위해서 구멍뚫린 공이나 스펀지를 위속에 집어넣었다가 꺼내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새는 물론 서커스를 하는 사람, 화학자도 기꺼이 자신의 고통을 참았다. 그렇지만 도마뱀 꼬리의 재생이 인간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지 손가락을 잘라보는 일은 하지 않았다. 다행이다.

 

게오르크 슈탈은 화학자이며 내과의사였는데, 혈액의 부패는 생명력 즉 영혼의 부재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강력하게. 현미경까지 동원했지만 확인할 수 없어서 답답했다. 그렇다고 상상하기를 멈추지는 않았다.

 

"위액을 분석하기 위해 솔개에게 구멍 뚫린 공을 삼키게 한 다음 끄집어냈다. 라차로 스팔란차니(1729-99)는 레오뮈르의 실험을 확인하는 한편 타액의 소화작용을 연구했다. 그는 인간의 위에서 분비되는 소화액이 동물의 그것과 비슷한지 알아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을 실험대상으로 삼아 다양한 공과 자루를 삼키며 실험을 했다." (328쪽)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라이프니츠는 "기계론만으로는 동물을 창조할 방법이 없다"고 했으나 생명에 대한 답을 내어놓지는 못했다. 디드로가 "맹인에 관한 서간"에서 물질주의를 주장하여 파리에서 투옥되었다는 것은 의외다. "자연의 질서가 곧 신이다"는 주장이 신을 부정한 것으로 봐서 감옥에 가뒀다는 것인데 상상이 되지 않는다. 프랑스 혁명 직전의 일이다.

 

더 어려운 일은 "발생"에 대한 실험들이다. 진딧물의 관찰을 통해 배아는 아주 작은 씨앗으로 암컷의 뱃속에서 자라며 정액은 배아의 성장을 촉발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있게 주장했지만 반만 맞는 말이다. 몇조각으로 잘라도 완전히 스스로를 재생하는 히드라를 통해 생명의 본질이 "물질들에 분포되어 있다"는 주장이 힘을 갖게 되었다. 1677년에 현미경으로 관찰된 포유류의 정자를 기생충으로 오해하고, 배아의 발생은 "정액의 혼"에 의해 난자에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정자와 난자의 결합이 관찰된 것은 무려 백 년이 지난 1875년이었다. 정말 끈질긴 노력이다.

 

동물을 통해 암컷과 수컷을 통한 발생을 발견하기 어려워지자 식물에 대한 연구도 발달하기 시작했다. "자연의 질서가 종의 고정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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