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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단 한 가지 사실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_맥스웰과 과학 04_200928 el veintiocho de septiembre el sábado_двадцать восемь суббота

하루하루를 시로서 정리하면 어떨까? 부동의 유사성으로 깊은 은유로 시를 읽는 재미가 느껴지면 더 없이 좋다. 그러나 그런 시상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훈련되지 않은 뇌나 손끝에서 그런 위대한 시를 쓸 수는 없을 것이다. 성실한 노력이 필요하다. 중용.

 

1. 과학이란 무엇인가? : 리처드 파인만 강연 / 정무광 정재승 옮김 / 승산(2008)

 

지난번 파인만의 강의는 주제는 좋았으나 논증의 흐름이 썩 좋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고맙게도 파인만은 자신의 정돈된 아이디어가 꼭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물 흐르는 듯한 논리는, 정리하면 마치 끝말잇기처럼 부드럽다. 그런 부드러움이 느껴지지 않아서 결론은 우리가 아는 이야기이지만 흐름은 좋지 않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강연을 '나 같은 노벨상 수상자도 해괴한 논리로 황당한 주장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드리는 데 기꺼이 바치려 한다." (88쪽)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실용 과학'과 '새로운 과학'의 발견이라는 측면에서 19세기와 20세기는 "과학의 시대"임이 분명하지만 "예술과 문학, 혹은 삶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와 이해 같은 것들에 대해 과학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지금이 과학의 시대인가를 묻는다면, '전혀 아니다'라는 것의 나의 대답이다." (90쪽). 즉, 과학이 인류의 삶을 대체로 지배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과학은 조금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고만 말할 수 있다.

 

거의 다 읽어 가는데도 세 번째 강연에서 파인만이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되짚어 가려고 한다. 1) 과학의 시대에 과학의 방법론과 맞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서 불만스럽다.  2) 권위 있는 과학자도 해괴한 논리로 황당한 주장을 할 수 있으니, 권위의 허상을 깨 주기를 바란다. 일단 말하려는 내용은 이 두 가지다.

 

파인만은 이런 결론을 내리고 예를 들어 설명한다. "과학에서는 아이디어를 결국에는 실험과 비교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지만, 다른 분야에선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긴 하지만, 과학에서의 판단 방법이나 경험 중 일부는 분명히 다른 분야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92쪽)"

 

독심술이 가능한지를 실험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 - 사실 별 것도 아닌 방법들을 여러 가지 제시하고 나서 이렇게 말한다. "독심술에 대해 '백만 분의 1'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독심술사라는 확신을 못 갖는 게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101쪽)" 즉, 여러 가지 실험들을 통해 그 사람이 독심술을 해 내면 독심술을 거의 믿지 않는 파인만도 그 사람이 독심술사라는 것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험과 관찰의 힘이다.

 

그리하여 과학의 방법이 쓰일 수 있는 첫 번째 예 1) 존재는 여러 실험을 통해 확인하면 믿을 수 있다. 두 번째 예 2) 진리는 계속된 관찰을 통해 점점 분명해진다. 세 번째 예 3) 존재는 관찰된 현상의 특징들이 일관성이나 불변성을 가진다. 네 번째 예 4) 가능한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97~108쪽)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파인만은 무언가를 계속 이야기해 주고 싶어 한다. 50년의 시간차가 있으니, 그 당시에는 애매해서 파인만의 설명이 필요했던 일이, 현재는 설명이 불필요할 수도 있다. 어쨌든 변함없이 괜찮은 말이니 정리를 해 두고 넘어가자.

 

"한두 가지 사건을 가지고 어떤 걸 증명할 수는 없다는 얘기이다. 모든 것들을 조심스럽게 검사해 보아야 한다." (116쪽)

 

"통계적으로 적절한 표본을 구성하고 이런 방식으로 사람들의 특징을 결정하는 것은 모두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123쪽)

 

"측정할 수 있는 양들만 기준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124쪽)

 

"세상에 모든 비과학적이며 이상한 것들이 만들어 내는 문제점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중 많은 것들이 미처 생각하기 어려운 문제들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그저 부족한 정보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다" (126쪽)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불확실하다는 사실뿐이다." (134쪽) 

 

두 번째 강연에서 사회주의 소련에서 사상의 자유가 억압당함으로써 과학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 파인만에게는 무척 부담이 되었던 모양이다. 다시 한 번 두 번째 강연의 결말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선택을 반성하고 속이 후련해 한다. 불확실하다면 선택을 최대한 늦추어라. 늦출 수 없다면 선택했다고 하더라도 열린 마음으로 좀 더 확실한 방법을 찾아라. 그것이 최선이다. 그런 이야기다.

 

"나는 열린 통로를 갖는 게 좋다는 아이디어를 열렬히 지지한다. 불확실성의 가치를 인정하고 지금 만들어 낸 해결책을 섣불리 선택하기 보다는 더 나은 새로운 해결책을 발견해 낼 수 있는 열린 통로를 갖추게 된다면, 지금 어떤 선택을 하던 간에 다른 방법을 기다렸다가 문제를 푸는 경우보다 훨씬 나쁠 것이란 것이다." (134쪽)

 

파인만은 '종교원리주의'와 '극우반공주의'를 매우 경계하며 통계든 방법이든 모든 면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핵실험에 대해서도 방사능 낙진의 위험 때문에 핵실험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틀렸다고 주장한다. 핵실험으로 인류에게 유해한 방사능 양의 증가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니 핵실험의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전쟁방지에 도움이 되려면 '핵을 보유해야 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해야 한다. 그렇지만 과학자는 이것을 판단할 수 없다. 인류가 지혜를 모아 종교와 도덕이라는 가치를 기반으로 판단해야 한다. 

 

과학을 기반으로 해서 이 문제에 대해 과학자로서는 답할 수 없지만 지구촌의 한 인간으로서는 답할 수 있어지 않았을까. 인간으로서의 답변을 회피하기 위해, 과학자로서의 답변은 불가능하다고 말했기에 '비굴하게 정직'하다는 것일까. 적어도 정치가 요구하는 답변을 하지 않을 정도로 정직하다는 것일까. 

 

"나는 이 문제에 관해서는 비굴할 정도로 정직할 수 있는 것이다." (144쪽)

 

과학 기술 분야의 발달이 세계에 미친 좋은 영향으로 통신기술을 들고 있다. "무엇보다도 많은 나라들이 귀를 틀어막고 싶어도 '통신기술의 발달' 때문에 서로의 얘기를 듣지 않을 수 없다" (160쪽). 그리고 과학의 방법론 중에서 과학 이외의 세계에서 주목해야 할 것도 지적한다. 50년이 지난 지금은 꽤나 퍼져있는 생각이다. 다만, 진실을 은폐하려 할 때는 이 방법을 무시한다.

 

"먼저 충분한 관찰을 하고 나서 받아들이는 신중함'과 같은 어떠한 일종의 방법 체계 mechanism, 즉 도덕적 가치를 선택하는 체계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160쪽)

 

이제 파인만의 강의에서 벗어나려 한다. 실험과 관찰의 중요성, 불확실성의 가치, 열린 통로, 신중한 가치 판단. 이 정도로 파인만의 이야기를 정리하자.

 

 

2. 모든 것을 바꾼 사람 맥스웰 : 바실 메이헌 지음 / 김요한 옮김 / 지식의 숲(2008)

 

토성 saturn, 그 신비한 물체를 왜 한 번도 관측하지 못했을까. 가난해서, 게을러서, 관심이 없어서, 능력이 안 되서,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서, 시험문제에 나오지 않아서, 도전 정신이 없어서, 돈 쓰기가 아까워서, 시간이 없어서. 어떤 이유도 토성을 관측하지 못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 금년이 가기 전에 반드시 토성을 관측해 내자. 먼저 다음백과를 검색해 보았다.

 

"토성의 고리는 갈릴레오가 1610년에 원시적인 망원경으로 처음 관측했는데 '손잡이'처럼 보였다고 한다. 1659년 크리스티안 호이헨스는 개선된 망원경으로 고리들의 성질을 관측 (중략) 영어식 표현인 'Saturn'은 로마 신화의 농업의 신 '사투르누스(Saturnus)'에서 비롯되었다.

 

(중략) 토성은 약 12만 km에 달하는 지름, 지구의 95배에 달하는 질량과 760배에 달하는 부피를 가진 태양계에서 목성 다음으로 큰 행성이다. 크기와 부피에 비해 밀도는 태양계 행성들 중 가장 낮은 0.7g/cm3이다. 태양으로부터 약 14억 km 떨어져 있으며, 태양 주위를 1회 공전하는 데에는 지구 기준 평균 9.69km/s의 속도로 29.6년이 소요된다. 자전 주기는 10시간 33분 38초이다.

 

토성에는 82개의 얼어붙은 위성이 발견된 바 있다. 이중에서 9개는 1900년 이전에 발견되었고, 20개는 2019년에 발견되어 목성을 앞지르고 태양계에서 가장 많은 위성을 거느린 행성이 되었다." (다음백과 중에서 순서는 임의로 편집했다)

 

토성 saturn이 사투르누스에게서 나온 말이고, 사투르누스는 농업과 수확의 신이라고 한다. 고야의 끔찍한 그림,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로만 알고 있던 잔인함과 어리석음의 상징신이 아름다운 토성에게 이름을 물려주었고, 기독교 시대에 크리스마스 축제를 만드는 원형이 되었단다. 아, 무지의 세계는 끝이 없다.

 

"로마 종교에서 섬기는 씨 뿌리는 신. 영어 표기는 ‘Saturn’이다. 그리스의 농업신 크로노스와 동일시되지만 잔혹하게 묘사되는 크로노스와 달리 관용을 베푸는 신으로 여겨진다.

 

(중략 / 크로노스는)  우라노스(하늘)와 가이아(땅)의 아들인데 어머니 가이아의 지시로 하르페를 가지고 아버지를 거세시킨다. 이렇게 해서 하늘과 땅이 갈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뒤 크로노스는 누이 레아를 배우자로 삼아 헤스티아·데메테르·헤라·하데스·포세이돈을 낳았는데 이들을 모두 잡아먹었다. 그러나 제우스가 태어나자 레아는 제우스를 크레타에 숨기고 남편을 속여 대신 돌을 먹게 한다. 제우스는 안전하게 성장해서 아버지로 하여금 삼켜버렸던 형제 자매들을 토해내게 하고 싸워 이긴다. (다음백과 그리스신 '크로노스'에서 발췌)

 

가장 큰 축제로는 사투르날리아가 있었다. 이 축제는 한 해의 가장 즐거운 축제로 여겨졌으며, 본래 12월 17일 하루에 치러졌지만 뒤에는 7일 동안 계속되었다. 축제가 시작되면 모든 일과 사업이 중지되었는데, 이때에는 노예들에게도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일시적인 자유를 주었으며 도덕적인 규율도 완화되고 선물을 자유롭게 교환했다. 이는 로마의 가장 큰 축제였으며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도 크리스마스와 서양의 신년 명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음백과 중에서)

 

 

토성 관측을 위한 동영상 자료들을 찾다가  deep sky 별의별 tv를 구독신청했다. youtu.be/SuS2e460VUE 이 영상의 25분경에 토성이 보인다. 그런데, 디지털 카메라로도 토성을 관측할 수 있단다. youtu.be/LjYTgk9mXbc 이 영상은 꾸밈없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어째서 굉장히 비싸 보이는 천체 망원경으로 본 토성과 거의 똑같을까. 토성이 지구로부터 12만 8천km나 떨어져 있기 때문일까. 일단 토성 관측에 대한 것은 여기까지.

 

수학으로 발견했다는 해왕성에 관한 더욱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애덤스 상은 존 카우치 애덤스가 해왕성을 발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상이었다. (중략) 당시까지 알려진 가장 바깥 행성인 천왕성의 작은 비틀거림 현상으로부터 새로운 행성이 있을 만한 위치를 예측하는 수작업 계산을 하는 데 4년의 시간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1845년에 나온 그의 예측 결과를 왕립 천문학자 조지 에어리 경이 무시해버리고 말았다. 

  그 다음 해, 프랑스 사람 위르뱅 르 베리에가 독립적으로 그와 동일한 예측 결과를 내놓았다. 위르뱅은 그 결과를 베를린 천문대에 보냈고, 베를린 천문대는 곧장 망원경을 조정하여 해왕성을 발견했다. (중략) 애덤스와 르 베리에에게 똑같은 명성이 주어지게 됐다. 애덤스는 나중에 왕립 천문학자가 됐다." (121~2쪽)

 

맥스웰은 토성 고리의 구성과 안전성에 대한 설명 문제에 대해, 홀로 답하고, 애덤스상을 받았다. 그것을 수학문제를 증명하듯이 되풀이 하고 싶지만 불가능하다. 그러면 나는 무엇을 배우는 것일까. 진리에 접근하는 방법, 천재 맥스웰, 과학에 기반한 예측은 관찰로 증명된다, 과학은 거인의 어깨 위에서 멀리 내다볼 수 있게 한다 등등. 아, 아쉽다. 설사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계속 공부하고 싶다. 꿈인가 망상인가.

 

"제임스는 우선 고체 고리 가설에 착수했다. (중략) 질량의 5분의 4가량이 원주의 한 지점에 집중되어 있고 나머지 질량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 한 가지 기묘한 배열을 제외하고는, 하나의 고체 고리가 안정을 취할 수 없다. (중략) 유체 고리는 반드시 파열되어 낱개의 거품이 되고 말 것 (중략 / 토성 고리는) 틀림없이 독립적으로 회전하는 수많은 분리된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으리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중략) 1980년대 초반 보이저 1호와 보이저 2호가 보내온 사진은 토성의 고리가 제임스가 예측했던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형태의 구조를 지녔음을 보여주었다. (중략) 제임스는 그로부터 두 해를 꼬박 그 논문을 개선하는 데 썼고 일반 독자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고쳐 1859년에 출판했다." (122~6쪽)

 

 토성 고리의 안전한 수학 구조는 큰 틀에서라도 이해는 할 수 있는데, '분자 속력의 맥스웰 분포'는 아무 것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리학에서 거의 처음으로 등장한 통계 법칙(135쪽)"이라는데, 모르겠다.

 

1) "어느 특정한 분자의 전체 속력 s는, 방향과 관계없이 x, y, z의 속력 제곱 값을 더한 총합의 제곱근과 동일할 것이다" 가 무슨 뜻이냐.

2)"세 축이 서로 간에 직각이기 떄문에 하나의 속도 성분, 예컨대 x의 특정 값을 지닌 분자의 수는 다른 속도 성분 y와 z의 특정 값을 지닌 분자의 수에 달려 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분자가 전체 속력 s의 특정 값을 지녔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는 또 무슨 뜻이냐.

3) "분자가 또 다른 방향보다 어느 한 방향으로 더 빨리 움직일 까닭이 없으므로 속도 분포의 모양은 각 축에서 동일하다"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현재 200쪽을 읽고 있는데, 아무 것도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읽어서는 안된다. 당시의 과학자들조차 맥스웰의 이론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어떻게 읽어야 하나. 맥스웰은 자신의 '전자기장의 역학적 이론'을 통해 맥스웰 방정식을 만들어 냈지만 실험이나 관찰로 증명해내지 못했다는 것일까.

 

"제임스는 자신의 이론이 옳을 수는 있지만 확실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스무 해가 지나서 하인리히 헤르츠가 전자기파를 생성하고 탐지하고 나서야 사람들은 그의 이론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게 됐다." (197쪽).

 

현재 255쪽까지 거의 130쪽을 아무 것도 알지 못한 채 읽고 있다. 맥스웰은 전기, 자기, 전자기, 전자기파, 기체, 광학 등등 수많은 분야에서 연구를 거듭하여 알아낼 것은 알아내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했다. 지금 현재 10월 4일 밤 10시 30분이고, 이 책의 마지막까지 읽어내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아무것도 얻지는 못할 것이다. 그저 몇 개의 단어에 익숙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기체를 비롯한 모든 물리학에 관해서 중학교 교과서로 돌아가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만이 간절하다. 필요한 일일까. 컴퓨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몰라도 - 내부 메카니즘을 몰라도, 우리는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다. 맥스웰이 얻은 성과가 무엇인지를 알 수 없어도 맥스웰이 위대한 과학자인지는 알 수 있을까. 맥스웰 사후 25년이 지나서 톰슨이 전자를 발견했다. 맥스웰은 기체 운동이 분자들의 충돌이라고 했다. 맥스웰은 혼합 기체를 원심분리기를 통해 분리 추출할 수 있다고 했다. 

 

놀라운 것은, 전자의 실체를 모르고도 전기와 자기와 관련된 연구는 물론이고,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방정식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 끝.

 

정리는 끝내고 맥스웰의 조용한 최후와 역자의 후기를 읽는데, 앞부분에 나왔던 이야기 하나가 새삼 눈에 띈다. 평생 자기의 과제와 사명, 역할 또는 하고 싶은 일을 깨닫고 매일같이 부분부분을 완성해 가는 것을 아는 것은 정말 행복하다. 맥스웰이 젊은 시절에 자신이 할 일을 정리하면서 느낀 행복을 이렇게 정리했다.

 

"오늘의 할 일 속에서 평생 이뤄갈 일과 이어지는 작은 부분을 깨닫는 사람, 영원의 일이 조금씩 구체화되는 것을 깨닫는 사람, 그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가." (286쪽).

 

물리학을 공부하겠다는 우주신의 다짐. 이제 150년 전의 맥스웰과의 거리처럼 그렇게 멀리 떨어지는 것일까. 의미는 있는 것일까. 아, 다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