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벅차기는 하지만 따로 읽는다고 해서 특별히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서 함께 읽는다. '과학과 계몽주의'는 친구가 추천한 책이고, '파인만에게 길을 묻다'는 전자책을 뒤적이다가 발견한 책이다.
1. 세마 science와 계몽주의 : 토머스 핸킨스 지음 / 글항아리(2016)
먼저 사람들을 기억하고 싶다. 1600년 조르다노 부르노는 무한우주론을 펼치고 마리아의 처녀성과 삼위일체설을 부정하여 7년 간의 재판과 고문 끝에 화형당했다. 1637년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을 썼고, 1641년 갈릴레오의 종교 재판에 유의하면서 '성찰'을 썼다. 1642년 갈릴레이가 죽은 해에 태어난 뉴턴이 1687년에 '프린키피아'를 썼다.
"우리는 이 혁명을 세마혁명science revolution이라 불렀으며, 이는 갈릴레오 갈릴레이 Galileo Galilei(1564-1642),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1571-1630), 르네 데카르트 René Descartes(1596-1650), 아이작 뉴턴 Isaac Newton(1642-1727)과 같은 위대한 인물들이 관련된 문화사건이었다. 1759년에 달랑베르는 이 혁명이 진행 중이고 가속되고 있다고 믿었다. 자연철학은 이전 과정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었다. 달랑베르가 본 것처럼 “혁명의 토대가 놓이면 이 혁명을 완성하는 것은 그 이후 세대이다”. 17세기는 혁명을 시작했고, 18세기는 그것을 완성할 것이었다." (15쪽)
세마혁명은, 초기에는 수학과 천문학에서 일어난 커다란 발전을 의미했고, 1700년에 가서야 정치학, 도덕, 문학 등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비로소 공표한다. 그렇더라도 여전히 세마학자들은, 종교의 문제로 연구와 상상의 자유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오늘날에도 세마학자들은 연구 윤리 문제로 연구와 상상의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요즘은 화형대에 올라가는 세마학자가 없지만 사람을 직접 대상으로 하는 연구는 거의 불가능하다. 어느 구석에 숨어서 무엇인가가 진행될 수도 있지만 말이다. 17세기 세마혁명의 시대가 지금은 야만이라고 느껴지는데, 먼훗날도 아닌 한 백 년쯤 후에 '배아 줄기세포와 인간복제 등을 포함한 연구 윤리에 위배되는 연구'를 금지한 것이 야만 행위로 느껴질 수도 있을까 궁금하다.
"달랑베르는 동료학자들이 가진 반종교 성향에 공감하면서, 어느 누구라도 스페인으로 수학자를 몰래 데리고 들어갈 수 있다면 수학자들의 명석하고 이성에 바탕을 둔 사고가 널리 퍼져 스페인의 종교재판소가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 (16-17쪽)
종교가 여전히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을 뿐 르네상스 이전이든 이후든 사람은 제대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제대로 생각하려면 애매해서는 안되는데 문학과 기행, 도덕, 철학, 역사와 정치학은 애매하다. 18세의 맥스웰이 생각한 대로다. "(도덕철학 강의를 듣고) 모호한 생각은 그릇된 결론을 이끌어낸다는 사실만을 깨닫게 해줄 뿐이었다." (모든 것을 바꾼 사람, 54쪽)
그래도 인문학은 논증을 시도했고, 성과도 거두었다. 자연철학 또는 과학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으니 인문학자나 정치학들이 이런 시도를 계속했다는 것은, 과거의 성과 위에서 새로운 이론을 추구하는, 자연과학 보다도 훨씬 어려운 상황에서 학문을 이끌어 간 것이다.
"계몽주의 시대의 과학은 기본적으로 생산물 못지않게 기술에도 덕이 존재한다는 문학적 이데올로기를 따르고 있었다. 논증되지 않는 모든 것에 대해 의문을 품는 새로운 비판적 정신은 자연과학 이전에 문학에 나타났다. (중략) 피에르 벨Pierre Bayle(1647-1706)은 무신론자로 구성된 공동체 사람들이 철저히 도덕적인 삶을 살았다고 했으며, 몽테스키외Montesquieu(1689-1755)는 그의 책 『페르시아인의 편지』(1721)에서 프랑스의 관습과 제도의 부조리함을 보여주었다. (중략) 데이비드 흄 David Hume(1711-76)은 역사는 신의 의지를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을 이해하는 것이라 이야기했다. (중략) 자연철학은 옛것의 토대 위에 새것을 받아들인다고 하는 논리적 연관성을 갖는다." (32~33쪽)
문학, 철학, 정치학은 기존 토대 위에서 쌓아 올라가며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거인의 어깨 위에서 멀리 내다볼 수 있는 것은 과학이다. 모든 것이 희미했고, 신의 섭리로만 받아들여야 했던 과거를 돌이켜보면, 자연의 변화들을 설명할 수 있는 무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데카르트의 제자이기도 했다는 말브랑슈가 뉴턴의 '광학'에 찬탄했으면, 1637년에 데카르트가 방법서설에서 발표한 ‘광학’은 뉴턴의 '광학'보다 저열(?)했다는 말일 것이다. 과학은 중간 단계를 굳이 몰라도 되는, 최종 결론을 증명하고 사용할 수 있으면 된다는 편리함도 있다.
"계몽주의 이데올로기는 자연철학자들을 영웅으로 만들어주었고 프랑스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은 뉴턴이었다. (중략) 볼테르와 몽테스키외와 같은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자유로운 사상과 자유의 원천으로 보였으며 (중략) 1706년 말브랑슈는 라틴어로 된 뉴턴의 『광학』을 읽고 찬탄하며 그것을 받아들였으며”(34~7쪽)
기원전 7세기의 탈레스가 자연철학자였으니 자연철학에서 과학이 분리되어 나오는데는 무려 2,500년이 걸렸나 보다. 수학의 발전이 모든 학문 분야를 구분하는데 핵심 원인을 제공한 것일까. 최소한
“계몽주의 시대에 변화하는 세마 science의 범주들은 자연관과 이에 대한 연구관의 변화를 반영했다. 오늘날 우리가 세마라 부르는 것이 계몽주의 시대에는 자연철학으로 불리는 편이 더 자연스러웠다. (중략) 자연철학은 여전히 철학의 한 부분이고 영혼의 존재, 물질의 능동성과 수동성, 자유의지, 신의 존재와 같은 문제들을 고민하였다. (중략) 살아 있는 사룸체 live body는 한낱 기계일까, 아니면 무사룸체와 구별되는 사룸의 원리 the principle of thing를 갖고 있는 것일까? 화학현상을 운동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기계 운동으로 환원시킬 수 없는 자연계의 힘은 존재할까? 이러한 의문들은 철학의 일부이기도 하고 세마의 일부이기도 했다.(중략) 지식을 얻는 그들 각각의 방법은 수학의 방법론을 넘어서는 일이지만, 그들은 수학이라는 이치에 맞는 방법론을 사유의 본질과 모형으로 보았다. 수학은 계몽주의 세마에 형태를 잡아주었다." (44~52쪽)
오늘 읽은 부분에서 가장 정리하고 싶은 내용은 기계론 철학이다. "자연세계에서 관찰된 변화를 물질의 운동과 재배치라는 관점에서 설명할 것을 요구하였다"는 기계론 철학은 물체의 운동과 변화의 원인을 서로 다르게 생각하였다. 맥스웰이, 물질의 특성이 무엇이냐는 해밀턴의 질문에 대해, 물질은 감각으로는 인지할 수 없으며, '인지할 수 있는 모든 것이 힘으로 환원될 수 있다'라는 말이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1) 데카르트 : 물체 내부에 어떠한 힘도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이 움직이도록 창조한 것은 신이다. 우리가 관찰하는 것은 모두 운동중이다.
2) 말브랑슈 : 물체의 움직임을 변화시키는 주체는 신이다. 우리가 실제로 관찰하는 것은 물체 운동의 변화일 뿐이다. 우리는 자연의 사건들을 질서 있게 연관시키기 위해 이 변화들에 원인을 부여할 뿐이다.
3) 뉴턴 : 중력과 응집력, 탄성과 같은 힘의 존재를 확신했다. 물질은 인력이나 반발력을 가진 내부입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가정 위에서 역학개념을 만들어냈다.
4) 라이프니치 : 물질은 현상일 뿐이며, 힘은 물질보다 더 '실제적인' 것이다. 물질을 충분히 쪼개면 물질이 아닌 것을 만나게 되고 이런 비물질 형이상학의 존재는 힘과 방향의 근원이다.
2. 파인만에게 길을 묻다 : 리너드 믈로디노프 지음 / 정영목 옮김 / 세종서적(2004)
19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1973년 10월 6일부터 10월 25일까지 이집트와 시리아가 주축이 된 아랍 연합군과 이스라엘이 치른 전쟁) 중 키부츠에서 리처드 파인만의 '물리학 법칙의 특징'을 읽고 물리학을 전공하기로 한 믈로디노프의 이야기다. 믈로디노프는 양자역학이라는 마법과 같은 학문 세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낡은 청바지 한 벌과 그 책을 바꿔왔다.
"20세기의 첫 수십 년 동안 물리학자들은 플랑크의 양자가설의 결과들을 정리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유명한 '불확정성이론'이다. (중략) 예를 들어, 어떤 물체의 위치를 아주 정확하게 규정한다면 그 속도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중략) 원자의 구성물들의 경우에는 아주 큰 의미가 있다.
(중략) 양자이론의 또 하나의 결과는 물리학자들이 '파동-입자 이중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중략) 빛의 이러한 개념은 어떤 금속들이 광자와 충돌한 뒤 전자를 방출하는 광전자 효과를 이해하는 관건임이 확인되었다. 양자가설을 물리학의 근본 법칙으로 받아들인 첫 인물인 아인슈타인은 1905년에 이런 맥락에서 광전자 효과의 신비한 속성들 몇 가지를 설명하는 유명한 논문을 썼다. 아인슈타인이 1921년에 노벨상을 받은 것
(중력) 양자가설과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 즉 이른바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합하는 방법은 아무도 찾아내지 못했다 (중략 / 파인만의 말) 우리는 운이 좋다. 아직 발견할 것이 남은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자연의 근본 법칙을 발견하는 시대이며, 이런 날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7~8%)
눈에 보이는 현상인데도 복사라는 말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제대로 설명을 못한다. 복사. 다시 한 번 정의를 정리해 본다.
"복사란 발생원으로부터 에너지가 나와서 주위의 매질을 통해 전파되어 가는 과정과 그 과정중에 포함된 에너지다. 대표로 빛과 소리를 들 수 있다." (15%)
복사는 그나마 관찰을 통해 익숙한 개념이지만 양자 세계로 들어가면 온통 이해하지 못할 세계들의 연속이다. 머레이의 쿼크를 설명해 보자. 원자 = 원자핵 + 전자 = (양성자 + 중성자) + 전자 = (쿼크 블록 + 쿼크 블록 + 쿼크 블록) + 전자 = 원자. 이런 식의 도식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일단 이해하고 넘어가자. 파인만은 쿼크는 특별한 속성들이 많아서 저런 도식의 블록으로 이해할 수 없다. 쿼크는 쿼크가 아니라 파톤 parton으로 이해한다고 주장한다.
* 양성자 : up quark 2 + dn quark 1 = 4/3 - 1/3 = +1
* 중성자 : up quark 1 + dn quark 2 = 2/3 - 2/3 = 0
"(머레이는) 양성자, 중성자를 비롯한 기타 입자들이 내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이 구조는 몇 개의 기본적인 집짓기 블록의 다양한 결합으로 형성된다고 주장했다. 이 집짓기 블록들이 말하자면 '소-소립자'였다. 즉 핵을 구성하는 입자들 내의 입자들이었다. 그는 이 집짓기 블록들에 '쿼크 quark'라는 별명을 붙였다. (중략 / 파인만은) 쿼크에는 그가 연구해 온 물리적 과정과 관련이 없는 특별한 속성들이 많았다. 따라서 자신의 계산으로부터 그의(머레이의) 이론에 나오는 보이지 않는 입자들이 그런 특별한 속성들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 즉 그 입자들이 쿼크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머레이의 이론은 틀렸고, 양성자 안에는 아직 특징이 밝혀지지 않은 다른 보이지 않는 입자들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 떄문에 파인만은 그의 이론의 내부입자들을 쿼크라고 부르지 않고 대신 '파톤 parton'이라고 불렀다." (14~15%)
"바빌로니아인은 어떤 계산 방법이 효과가 있느냐, 즉 실재하는 물리적 상황을 적절하게 묘사하느냐 하는 문제에만 큰 관심을 가졌을 뿐 그것이 정확한가, 더 큰 논리 체계와 맞아떨어지는가 하는 문제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 중략) 바빌로니아인은 현상에 초점을 맞추었고 그리스인은 그 밑에 깔린 질서에 초점을 맞추었다. (중략) 수학에 끌려다니지 않고, 물리적 과정의 관찰과 해석에 기초하여 추론(함으로써 / 중략) 파인만은 자신이 바빌로니아인이라고 생각했다." (16%)
믈로디노프는 머레이와 파인만의 차이를 좌뇌와 우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차이라고 설명한다. 철학의 문제이면서 인생이 걸린 선택의 문제라고 믈로디노프는 생각했다. 자연 자체의 존중, 김용옥이 노자 강의에서 말하는 것을 물리학자 파인만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물질세계의 다양한 현상의 밑바닥에는 영원불변의 패턴이 있다고 믿었다. 머레이 같은 물리학자가 시도한 것은 이런 패턴을 수학적 용어로 묘사하는 것이었다. (중략 /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진정으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우리의 감각으로 지각 가능한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파인만과 마찬가지로 자연 자체를 숭배했지 그 밑에 깔려 있다고 하는 추상을 숭배하지는 않았다. (중략) 질서와 조직을 찾으려는 좌뇌는 머레이이고, (중략) 패턴을 지각하고 직관을 강조하는 우뇌는 파인만" (17%)
증명되지도 않은 방법으로 계산을 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이런 이야기를 읽을 때 답답한 것이 증명이든 결론이든 내 손에 잡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식과 공식이 있고 그것을 이해하거나 그래프가 있어서 그것으로 명쾌하게 되거나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다. 이런 부분들을 자꾸 읽는다고 해서 내가 정말 이해한 것은 사실 하나도 없다. 설명이 불가능하고, 재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냥 넘어가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어렵고, 그냥 넘어가야 한다면 굳이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전체의 흐름이 중요하지 않은가. 그렇다. 그런데, 뭔가 알아야 전체의 흐름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나.
"파인만의 접근방법은 당대의 물리학자들이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행로들의 합계를 내기 위해 그가 만들어낸 이른바 '행로적분'도 수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으며, 간혹 분명치 않은 구석도 있다. 그리고 이론으로부터 답을 만들어내는 그의 그림 기법, 즉 파인만 다이어그램은 물리학자들이 그 전에 본 어떤 방법하고도 달랐다. 물리학자들은 증명을 요구했다. (중략) 그래도 그들은 파인만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몇 달이 걸렸던 이론적 계산을 그가 불과 30분 만에 해치웠기 때문이다. (중략) 결국 다른 젊은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이 파인만의 방법과 일반적인 방법 사이의 연관을 보여주었으며, 그 결과 파인만의 방법이 차츰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19%)
성공을 거머쥔 믈로디노프는 млодинов 칼텍에서 파인만과 머레이 근처에서 연구실을 배정받는다. 아무런 제한도 없는 연구 공간을. 그런데, 갑자기 자신감이 없어지고 무엇을 해야할 지도 모른 채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게 된다. 성공은 우연일까. 그런 순간에 믈로디노프는 자신을 물리학의 길로 이끈 파인만이 마침 옆 사무실에 암수술을 받고 돌아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의 도움을 받기로 결정한다. 존경할만한 스승이 있다는 것은 정말 아름답고 행복한 일이다. 제일 부럽다.
"니코스와 나는 파인만과 마찬가지로 양자세계와 고전세계를 연결하는 방법을 탐사했다.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의 3차원보다 훨씬 많은 차원을 가진 우주에 살기만 한다면 양자세계도 우리의 고전세계와 비슷해 보일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어 세계에 무한의 차원들이 있다면 원자물리학의 어떤 문제들도 쉽게 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한한 차원이라는 그릇된 가정을 상쇄하고, 우리의 3차원 세계에서도 정확하고 타당하게 적용되는 답을 발견하는 방법을 보여 주었다. 우리가 한 작업의 전모가 분명하게 드러났을 때, 나는 우리가 택한 방법의 정확성에 놀랐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독창성이 자랑스러웠다. (중략) 내가 다시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중략) 아주 간단한 생각조차 따라갈 수가 없었다. (중략) 이웃 두 명과 함꼐 대마초를 피우며 저녁을 보냈다. 칼텍 물리학과를 졸업한 작고 가냘픈 몸집의 에드워드는 무기 연구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대마초 연기로 권태와 양심의 가책을 날려 버렸다. (중략) 창조성의 가뭄으로부터 빠져나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럴 사람은 나의 우상 파인만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략) 이렇게 해서 심리학을 철학보다 훨씬 더 경멸하는 파인만은 철학과 과학자의 심리학 두 가지 면에서 곧 나의 중요한 조언자가 되었다. (21%)
"눈에서는 섬광이 번뜩이곤 했다. 불치의 암에 걸렸다 해도 그의 정신은 여전히 우주를 지그재그로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중략) 반짝거리는 총명함으로 사람들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하지 않았다. (중략) 아테네 식당은 그의 스타일이 아닌 듯했다, 그는 그리시에 함께 가자고 했다. (중략) 나는 침묵을 꺨 만한 똑똑한 이야기를 찾아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내 머리는 텅 비어 있었다. (중략) 바나나에는 손이 닿지 않습니다. 누에바는 화가 나서 바닥에 누워 데굴데굴 구릅니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아인슈타인은 9년째 상대성이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확실한 돌파구를 열려면 아직 2년이 남았죠. (중략) 사실 발견을 위한 원료는 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발견이 그 당시에는 놀라운 일로 여겨지지만, 후대에는 단순하고 당연한 일로 여겨지곤 하는 것이죠. (중략) 발견에 대한 책을 읽어 가지고는 발견하는 방법을 알 수가 없네. (중략) 원숭이가 발견을 할 수 있다면 자네도 할 수 있다." (23~5%)
오늘(23일) 낮에 들은 이야기. 클래식 기타리스트는 하루에 6시간을 연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예술가는 하루에 6시간을 예술에 집중하고, 세마학자scientist는 하루에 문제를 찾으려고, 문제를 풀려고 6시간을 집중하는 모양이다. 우주신이 하루 종일 학교에서 물리 공부를 하고 있다. 나는 하루 4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다른 일을 하려고 한다.
강력이라는 힘으로 쿼크 문제를 해결했단다. 알지만 알 수 없는 이런 내용들은 증명을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다. 영원한 수수께끼일 것이다.
"사실 우리가 하는 일은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것 가운데 한 특정한 종류를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이 하는 것뿐일세. 사람들에게는 상상력이 있네 다만 그 상상력을 과학자만큼 오래 이용하지 않을 뿐이지. (중략) 그 사람들은 근육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정말 열심히 노력하거든. (중략) 과학자들도 보통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그것은 간단한 깨달음이었지만 큰 위로를 주는 깨달음이었다. (중략) 물리학자들은 강한 힘이 쿼크들을 서로 묶고 있기 때문에 머레이의 쿼크들이 단독으로는 발견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설명에는 문제가 있었다. 실험 관찰에 따르면, 양성자 같은 입자들은 서로 충돌할 때 내부에 있는 입자들이 가볍게 흔들리며 자유롭게 움직이는 듯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단단히 묶여 있다면 어떻게 이렇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가? (중략) 양자색깔역학에 따르면, 강한 힘은 다른 근본적인 힘들과는 달리 거리가 멀어질수록 강해진다는 것이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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