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세계대전사를 충분히 읽어내고 다른 책들을 읽으려고 했는데, 전자책들이 잘 정돈이 되지 않아서 정리하다가 천유런의 이야기에 다시 빠지고 말았다. 장징궈의 이야기처럼 정리해 둘 필요를 느꼈다. 언제고 다시 읽어도 즐겁게 읽을 만한 이야기 들이다.
어제 친구가 10권의 책 목록을 보내왔다. 제목만 들어도 행복하다. 뭔가 충만한 지식이 채워진 기분이다. 전공하지 않아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책들을 골랐다고 한다. 20세기 이후로 과학이 발전하면서 깊어진 인간의 사고와 진리에 근접해 가는 책들이라고 한다. 인문학과 철학이 한계를 보이고, 이제 과학과 철학이 하나로 융합되는 시대가 도래한 모양이다.
1. 리처드 파인만- 과학이란 무엇인가 / 2. 칼 세이건 -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 / 3. 크로포트킨 - 근대과학과 아나키즘 / 4. 짐배것 - 기원의탐구 / 5. 에른스트 페터 피셔 - 또 다른 교양 서문 / 6. 바실메이헌 - 모든 것을 바꾼 사람 맥스웰 / 7. 에른스트페터피셔 - 과학의 파우스트 / 8. 리처드 도킨스 - 눈먼시계공 / 9. 토머스 핸킨스 - 과학과 계몽주의 / 10. 피터 하민 - 에너지 힘 물질
1. 토지 1부 2권 :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전자책)
용이의 월선에 대한 사랑은 좌절로 끝나가고 있고, 산을 떠돌던 강포수는 신식 총에 끌려 내려왔다가 귀녀를 사랑하고 만다. 어떻게 전개될 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치수는 별당아씨가 구천이와 밤도망을 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인다. 총을 들고 사냥에 나선다는 것이, 죄를 묻기 위한 움직임일까.
줄거리는 그렇다치고 재미있는 말들이 다시 등장해서 기록해 둔다. '가리'는 가루다. 사전에는 가리가 '갈의' 즉 칡덩굴 껍질로 만든 옷이라 나오기에 칡껍질을 두드려 부드러운 섬유를 만들어 옷을 만드는 것으로 추정했었다. 아니다.
'가리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지는 벱이니께.'
윤씨 부인에서 출발하는 토지의 막장 드라마는 현대의 막장 드라마로 연결된다. 토지에서는 긴 호흡으로 천하지 않게 표현하고 있어서 막장이 막장으로 느껴지지 않는 장점이 있다. 치수의 복수는 냉철하고 잔인하게 준비되는 듯 하다. 아직은 막장에 도달하지 못해서 홀로 괴롭지만, 지금부터 많은 사람들이 긴장하면서 괴로움에 동참하게 된다. 인간은 홀로 즐겁거나 홀로 괴로울 수 없다. 그럴바에야 같이 즐거운 것이 낫겠다. 여민동락. 내 아파트 값만 올리려고 너무 애쓰지 말고, 이곳 저곳 사람들이 살 만한 곳이 많으니 거주이전의 자유를 확대하는 쪽으로 그렇게 살아가자.
"(구천의 말) 지아비 잃은 여인을 사모하였기로, 어찌 죄가 된다 하시오. 하늘이 육신을 주었거늘, 어찌 육신을 거역하라 하시오. (중략) 지옥의 죄 많은 망자들이 울음 우는 소리 같기도 한 인경이 산과 수목과 새벽이 걷혀 가는 하늘에 울려 퍼질 때 밤이슬에 흠씬 젖어서 치수는 돌아오곤 했다.” (2권 36~7%%)
동학농민혁명이 휩쓸고 간 뒤에 치수와 동진이 나누는 대화. 머리와 입으로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갖고 말하더라도 행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권력과 명예와 부를 누릴 때, '처음처럼' 생각과 말과 행동이 비슷하게 맞아 돌아가야 한다. 언행을 함께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고, 권력과 부를 잡았을 때 생각이 바뀌지 않도록 절제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절제하지 못한 사람들은 농민혁명군들의 죽창을 피할 수가 없었다.
"애당초부터 체통 지킬 줄 았았다면야 탐관오리가 되었겠나. (중략) 우리 문중의 그 양반들, 파리 손을 부볐다니 원. (중략) 자네는 그래 하늘에 부끄럽지 않아 사대육부가 멀쩡했었다 그 말이구먼. (중략) 장담 못하지. 부끄러운 짓 할 자리에 있지 않았으니." (2권 37%)
기본 소득, 기본 주택, 기본 채무.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 날이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코로나 방역을 위해 진단에서 치료까지 전부 무료로 해 주는 것도 그렇다. 벌써 9개월이 다 되어가고 있고, 앞으로도 1년은 더 무료 치료를 해 줄 것이다. 4인 가족 100만원의 생활비, 이재명 지사가 요청하는 기본 임대주택, 최배근 교수의 기본 채무까지 더 해지면 그야말로 시민들의 최소 생활을 보장해 주는 사회안정망의 구실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톡톡히 하게 될 것이다. 조선 말기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의 차이다. 정부에서 보리 한 말 살 돈을 기업들에게 제공하는 공적자금의 금리 즉, 1% 내외로 제공한다면 가난한 시민들이 더 가난해 질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아버지께서 하시던 말씀이, 3년 열심히 농사지은 땅에서 나온 3년치 소출로 그 땅을 살 수 있었다. 땅의 희소성과 많은 인구 때문에 갈수록 꿈같은 이야기가 되어간다. 대한민국의 인구가 조만간 줄어드는 이유는,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작은 땅에 너무 많은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비좁은 수도권으로 사람들이 몰려 드는가. 수도권 이외에서는 제대로 먹고 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세상이 변한 기이 아니고 본시부텀 그런 거 아입니까. 지체 높은 최참판댁에서도 본시 재물을 모으기로는, 아 세상이 다 아는 일 아입니까. 숭년에 보리 한 말 주고 뺏은 땅이 새끼를 치고 새낄 쳐서, 그렇기 생각하믄 세상이 그릇되어 그렇다고만 할 수 있겄십니까.” (28%)
원인과 결과를 제대로 구분할 수 있어야 파국을 막을 수 있다. 조선이 망한 것은 세도정치의 폐해 때문이다. 벼슬아치들이 구전문사했기 때문이다. 구전문사(求田問舍) : 자기가 농사지을 논밭이나 살림할 집을 구하는 걱정만 한다는 뜻으로, 큰 포부를 가지고 있지 못함을 이르는 말. 부패한 벼슬아치가 재벌이 되겠다는 큰 포부를 가지고 구전문사하면 반드시 나라가 망하게 되어 있다. 권력자나 지식인들이 강남에 모여사는 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은 충분히 위기다. 강남을 떠나 넓은 대한민국에서 꿈을 펼쳐야 한다.
떠나라 지식인들이여, 내려가라 권력자들이여, 대한민국 곳곳이 그대들을 기다리고 있다.
"나라가 망하게 생겼는데 벼슬아치들은 구전문사(求田問舍)하고 상것들은 구전성명(苟全性命)에 급급하니 누가 나서서 원수를 막을 건고?” (28%)
장칭에게 7개월 동안 두들겨 맞다가 세상을 떠난 쑨웨이스를 보며 김명호는 "열 명의 군자에게 죄를 지을지언정 한 명의 소인에게 죄를 지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임이네의 남편 칠성이는 말로 엄청난 죄를 짓고 있다. 임이네는 소인일까 군자일까. 이 문장은 멋지다. 매몰찬 사람에 대한 부드럽지만 강렬한 항의다.
"한다는 말이 배지가 불러서 안 묵지 새끼 선다고 안 묵으까. 세상에 버릴 말이라도 그러는 법이 어디 있겄소?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