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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진리를 알 수 있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다_친구농활단 02_20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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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반에 간신히 눈을 뜨고 커피와 빵 한 조각을 먹고 마당으로 나왔다. 가마솥 거치용 부뚜막의 기초를 만들기 위해서다. 둘 다 처음 해 보는 일이다. 일단 내가 생각한 것을 중심으로 설명한 다음에 일을 진행하다 보니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빗물에 무너져 내리는 바닥을 다지느라고 시멘트를 부어 놓았는데, 굳지 않은 시멘트 위에 다시 흙을 부어 압력을 가하면서 바닥 고르기 작업을 할 수 있을까. 우리 둘 다 모르겠다. 윗집 선생님의 도움을 청했다. 한참을 지도받았다. 듣기가 다소 힘들었지만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는 그 마음이 고마웠다.

 

작업을 두 개로 분리해서, 일단 부뚜막 작업을 먼저 하고 시멘트가 굳으면 무너지는 바닥 정리작업을 하기로 했다. 흙과 자갈이 잘 섞인 자신의 흙을 가져다가 기초를 다지라고 한다. 윗집에 올라가서 세 수레의 흙을 퍼왔다. 혼자 가서 퍼 올 때는 정말 힘이 들었는데, 친구와 둘이 가서 퍼오니 힘만 들었다. 기초 만들기는 되었다. 

 

이번에는 부뚜막 외벽 쌓기. 수평자로 수평을 맞춰가며 4인치 벽돌로 벽을 쌓는데, 몇 번 하지도 못하고 숨이 턱에 찬다. 친구가 힘차게 일을 계속해 나간다. 엄지 손가락이 시원찮아 힘을 쓸 수 없다면서도 나보다 두 배의 힘으로 일을 한다. 간신히 보조를 맞추며 일을 하다가, 해가 나면 해가 난다는 핑계로 얼른 그늘로 쉬러 갔다. 땡볕과 그늘을 왔다갔다 하면서 쓰러지지 않으려고 계속해서 휴식을 취했다.

 

나는 1단만 쌓고 일을 끝내고 싶었다. 친구는 3단을 쌓자고 한다. 그래야 일 한 흔적이 나는 것은 맞다. 그렇지만 부뚝막 만들기를 오늘 다 끝낼 수는 없다. 나만 동의한다면 밤을 새워서라도 일을 끝낼 태세다. 안 돼. 월요일에 동서와 아들이 오기로 되어 있으니 우리의 과업은 기초와 벽이다. 시멘트가 굳을 시간이 필요하니 이 작업까지만 해 놓으면 돼. 어머니가 내 오신 수박이 휴식의 좋은 핑계가 된다. 

 

여러 번을 쉬어 가면서 다섯 시간 가까이 일했다. 마지막에는 기운이 다 빠져 나가서 몸살이 날 지경이다. 그런데 친구 녀석은 뭐가 좋은 지 금방이라도 노래를 부를 태세다. 엄청난 체력이다. 10개월 동안 제지공장에서 힘든 일을 했다. 그곳에서 사람의 삶에 대해, 나와는 다른 사람들의 변하지 않는 울타리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신나게 일을 했더니 동료 노동자들이 이상한 놈 취급을 한다. 퇴직할 때 오직 한 친구가 매우 아쉬워했다. 그것만 해도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10개월 만에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니.

 

친구가 부뚜막 뒷마무리를 하는 동안에 나는 사용한 삽과 호미와 시멘트 혼합할 때 쓴 큰 그릇을 씻었다. 서 있을 기력이 없어서 수돗가에 걸터 앉아서 간신히 씻었다.

 

샤워를 하고 나니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다. 평소라면 타이레놀을 먹고 빨리 회복을 했을텐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약을 먹지 않고 상태를 지켜봤다. 땀을 많이 흘리고 더위에 지쳐서 그런 모양이다.

 

점심을 먹고 자러 방으로 들어갔다. 잠을 자려고 하지 않는다. 어제에 이은 이야기가 계속된다. 기존 생활의 청산. 엄청난 결단을 내렸다고 한다. 3년 동안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면서 완전히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고 한다. 두 개의 큰 산을 넘었다.

 

하나는 경제 문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새로운 삶을 준비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러기 위해서 코로나 정국을 전후해서 위험한 투자를 결행했다. 지옥 문턱에까지 다다를 정도의 위험이 있었지만, 코로나를 염두에 두지 않고도 충분히 발전 가능성이 있는 두 개의 기업을 발굴해서 투자했고, 마침내 성공했다.

 

두 번째는 진리의 문제. 종교를 넘어서고, 또 하나가 뭐였더라. 철학이었던가. 인문학이었던가. 인문학을 억지로 되살리려 한다고 해서 살려지는 것은 아니다. 17세기 이후 근대가 만들어지는 과정들을 보면서, 근대의 발전들을 우리 것으로 만들어 가야 봉건에서 탈피하는 것은 물론이고, 현대를 더욱 힘 있게 살아갈 지혜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리학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과학자들의 노력에 의해 진리는 발견되거나 진리로 가는 길이 발견되었다. 그리하여 그것을 알려주고 싶단다.

 

뭐가 되었든 사이비로 빠지지만 않는다면, 진리에 완전히 도달했다고 즉 신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오만한 마음만 품지 않는다면, 진실 또는 사실들을 엮어 간다면 그것은 진리일 것이다. 그의 가르침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다만, 내가 그런 지식과 지혜와 열린 마음이 있기는 있는 것일까. 아마도 뚜껑을 열어 보아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자기가 떠나야 내가 쉴 수 있다며 친구가 몸을 일으켰다. 나도 부천(120km)으로 퇴근했다. 나보다 먼저 머나 먼 대구(200km)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강변에 우뚝 선 작은 아파트를 장만하여 친구는 참으로 안정된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논둑의 뒤쪽에서는 논둑이 터지는 것을 예방할 수 없고, 논둑의 앞쪽에서 작은 부직포 한 장으로도 둑이 터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지난 15년 동안의 농사 경험에서 얻은 지혜다. 그의 생활이 곪아 터지기 전에 앞에서 조치할 일들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의 문제가 나의 문제이고, 나의 어려움이 곧 그의 어려움이다. 그것이 친구다.

 

친구와 작업한 사진은 단 한 장도 없다. 기록이 중요한데, 일이 우선이니 기록할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