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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사교육과 강남으로부터 멀리 살다_친구농활단 01_200828_el veintiocho de agosto el viernes_двадцать восемь Пятниц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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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에게 반강제로 농활을 오라고 했더니, 스스로(?) 두 명이 온단다. 코로나 때문에 걱정을 나누다가 모두 건강한 상태이고, 불과 두 명의 외지인 즉 네 명의 만남이니 그냥 진행하기로 했다.

 

워낙 멀리서 오다 보니 미안해서 주유권도 보내주고 많은 먹을 것을 준비했다. 새벽에 일을 하자는 친구의 요청에 따라 생활리듬을 바꿔 6시에 일어나는 훈련도 했다. 친구를 맞이하는 것도 손님을 맞이하는 것과 같구나. 

 

좋아하던 곱창 전골집을 대신해 새로운 곱창전골집을 발견해서 먹어 보았다. 선지 한우곱창탕. 뭐 그런대로 맛이 좋았지만 내 스타일은 아니다. 친구들에게 약속했으니 2인분을 사서 내려갔다.

 

단 하루 일찍 일어나는 훈련을 했는데도 오늘은 hoy 5시 반에 눈이 떠졌다. 30분을 누워서 더 뒹굴다가 여섯 시에 son las seis 일어나서 머리도 감고, 일 할 준비를 했다 estoy risto para trabajar.

 

첫 번째 친구는 7시 반에 도착했다 mi amigo viene a las siete. 세종시에서 100분 정도 걸려서 왔다. 차 한 잔 마시고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었는데, 약속한 시간에 못 맞춰 왔으니 빨리 일을 나가자고 재촉하는 바람에 허겁지겁  커피를 들이붓고 나서  tomamos cafe y 논으로 출발. 

 

논둑에 덮어 두었던 부직포를 걷기로 했다. 3개월을 흙속에 묻혀 있어서 온통 흙투성이다. 풀도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금방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시간도 많이 걸렸다. 깔끔하게 접어서 마음이에 싣고 오려고 한 계획도 달성하지 못했다. 중간에 비도 쏟아졌다. 척척한 몸을 뉘일 곳도 없어서 맨바닥에 주저앉아 두 번을 쉬었다. 선베드를 사지 못해서 가지고 오지 않았더니 몹시 후회가 된다. 누워서 쉬어야 더 재미있는데.

 

친구는 텃밭에 심어 두었던 고추가 다 죽었단다. 긴 장마로 텃밭을 찾지 못했더니 풀도 많이 자라서 간신히 풀을 뽑고 김장배추를 심었다고 한다. 비가 내릴 정도로 날이 흐린데도, 큰 물통의 물을 둘이서 다 마셔버릴 정도로 더웠다. 예초기를 돌리는 동안에 친구가 보이지 않아, 어디에서 쓰러진 줄 알고 큰 소리로 불렀다. 절집 앞마당에서 웃통도 벗어 젖히고 쉬고 있다가 고개를 내민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나도 쉬러 갔다.

 

부직포를 걷으면서 걱정은 되었다. 풀도 나고, 태풍도 오고. 아직도 추수까지 50일은 남았다. 지금 걷는 게 맞는 일일까. (부직포를 걷고 나서 매우 많은 비가 두 번 내렸는데, 논둑은 터지지 않았다)

 

부직포 걷는 일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예초기를 돌려야 했다. 그럴 것에 대비해 마음이에 싣고 왔다. 그러나 pero 기름통을 창고에 두고 왔다. 풀을 베다가 기름이 떨어지는 바람에 풀을 다 베지 못했고, 그래서 por eso 부직포를 다 걷지 못했다. 일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소 아쉽지만 남은 기간에 논둑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기왕 이렇게 된 것 9월 말까지 놔둘까 싶기도 하다. 

 

부직포를 정리해서 가져오지 못한 것은 흙과 풀이 너무 많이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논둑에 뒤집어 놓고 흙도 씻어 내리고 풀도 말릴려고 한다. 다음 주에 시간이 되면 걷어야겠다. (이번 주에도 비가 계속 내려서 걷지 못했다. 이 상태로 두면 풀이 뿌리를 내릴까 두렵다. 다시 걷는 작업을 해야 한다. 젠장)

 

샤워를 마친 친구를 마음이에 태우고 동네 구경을 나간다. 먼저 육회를 사러 가기 위해 일죽 쪽으로 나갔다. 가면서 수해 현장을 봤는데, 너무 평화롭다. 수재민들은 좌절감 속에서 헤매고 고단한 몸으로 복구 작업을 하고 있을 텐데, 멀리서 스쳐 지나가는 우리들의 눈에는 그저 평화롭기만 하다. 육회 거리를 400g 사서 삼성면 쪽으로 간다.

 

고속도로 주변에 산사태가 크게 났다. 이곳은 그다지 평화롭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더 피해가 컸던 모양이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단다. 삼성 하나로마트에서 덕산 막걸리 한 병과 사이다 한 병, 하드 13개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점심 한 상을 크게 차려 내놓으셨다. 술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포천 이모부 내외까지 오셔서 함께 이야기를 하여 더 풍성한 점심상이 되었다. 박정희 논쟁으로 덕산 막걸리 맛이 더 좋았다. 입장은 달라도 웃으면서 자기 이야기할 수 있는 것으로 충분히 즐겁다. 어느 쪽이 되었든 가랑비에 옷이 젖지 않을까. 

 

침대 방에 들어가서 자라고 했더니 그럴 필요 없단다. 83년 하숙집의 어느 방구석처럼 방바닥에는 친구가, 이층 침대에는 내가, 각각 누워서 늘어지게 한 잠잤다. 잠이 깨어, 친구는 기타를 치고, 나는 뉴스를 뒤적였다. 기타를 치려거든 노래도 한 자락 넣으라고 했더니 노래는 못한단다. 내 음악 세계도 들려주고 싶었는데, 몸이 피곤해서 그냥 누워서 계속 쉬었다.

 

5시가 다 되어 대구에서 출발한 친구가 도착했다. 맥주 한 컵과 빵 한 조각을 대접했더니 맥주만 홀랑 마시고 일하러 가잔다. 낫 한 자루씩을 들고 검정깨 밭으로 갔다. 셋이서 작업을 하니 30분도 안 걸려서 끝나는 작은 밭이다. 물이 빠진 하우스로 이동을 해서 끈으로 묶고, 말리기 위해서 빨래줄에 널어놓는 작업까지 했다. 

 

처음에는 농부들의 원칙대로 참깨대를 똑바로 세워서 널어 놓으려 했는데, 무게 중심 때문에 쓰러진다. 확인하고 작업하자고 제안한 친구의 혜안이 없었더라면 묶는 작업을 한 번 더 할 뻔했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한 가지 방법이 더 있었다. 빨랫줄을 느슨하게 하여 바닥에 닿게 참깨대를 세웠으면 가능했다. 어쨌든 그것도 빨랫줄을 다시 묶어야 한다. 내년에는 줄을 느슨하게 하여 바로 세우는 것이 좋을까. 살짝 의문이 든다. 그냥 털기에는 지금 방법도 좋다. (참깨가 잘 마르고 있었는데, 엄청난 비가 내려서 하우스에 다시 물이 찼다. 다행히 쏟아진 참깨가 없어서 피해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세 번 이상 물이 찼다가 빠진다. 친구들과 애쓴 참깨가 썩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걱정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주시는 대로 먹는다)

 

사람 손이 많으니 일도 빨리 끝난다. 다음 작업은 고추 따고 고구마순과 깻잎 따기. 고구마순과 깻잎은 따서 친구들에게 보낼 생각이었다. 시골에 왔으니 뭔가를 가져가야 한다. 원래는 돈을 내고 사가야겠지만 농활을 와 준 고마운 친구들이니 선물로 보낼 생각이었다. 생각에 그치고 말았다.

 

따야 할 고추가 너무 많았다. 해가 져 버리는 바람에 바구니 한 가득 딴 고추만 집으로 가져오고 다른 일은 접어야 했다. 모기도 달려들고, 탄저병으로 썩어가는 고추가 너무 많아서 일이 신나지 않는다고 한다. 하루 와서 일하는 사람도 그러니 매일같이 썩어가는 생명들을 보고 있는 농부들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농부는 강한 심성을 가져야 한다. 어떤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는. 그런 점에서 뜻대로 안 되면 성질부터 내는 나는, 농부도 못 되는, 연약하고 무능력한 선비일 뿐이다.

 

어머니는 귀한 친구들 고생한다고 걱정이 댓발이다. 처가 농활단이 고생하는 것을 보시는 것도 힘겨워하셨는데, 이번에는 친구들까지 와서 또 그런다고. 하루빨리 농토를 처분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줘 버렸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그럴까. 나도 그러고 싶다. 그러면서 내년 농사계획을 또 잡고 있다. 좀 더 효율을 높여서 손쉽게. 그런 농사는 없지만, 지향한다.

 

샤워를 하고 육회와 선지곱창탕에 따뜻한 찹쌀밥으로 저녁 식사를 한다. 나는 소주를 친구는 막걸리를. 세상 사는 이야기가 끝이 없다. 차를 내오란다. 복숭아 향이 나는 녹차를 우려내어 친구들 잔에 채워준다. 

 

새벽 한 시가 되어 세종 사는 친구가 먼저 일어섰다. 오랜 세월 세종과 공주를 떠나지 않고 아이들을 키웠다고 한다. 여유가 있었지만 사교육과 강남에 눈을 두지 않고 살았다. 교육도시의 도움도 커서 일찍 기숙사 생활을 한 아이들 덕분에 부부가 평화로운 생활을 오래도록 했다.

 

아들과 딸이 세상을 너무 알뜰하게 사는 것이 마음에 걸려 얼마 전에 노트북 하나를 선물해 줬더니 그렇게 좋아하더란다. 아빠가 해 주는 밥이 있다면 휴가를 내어 집으로 오겠다는 이야기에 우리가 놀랐다. 요리를 할 줄 안다니. 십 년도 안 남았지만 은퇴하게 되면 아내와 둘이서 여행하고 공부하며 살겠단다. 틀림없이 그리 될 것이다. 그렇게 우리에게 부러움을 잔뜩 안기고 노동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어 친구는 떠나갔다.

 

그로부터 세 시간을 더 비몽사몽이었다가 멀쩡한 정신이었다가를 반복하며 "대구의 정신"으로부터 이야기를 듣는다. "대구를 살리기 위해 대구를 죽여야 한다"에서 시작되어 "인문학은 죽어야 하고, 과학을 통해 진리의 세계에 접근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계속한다. 간혹 내가 껴들어 말을 섞기는 하지만 수준 높은 친구의 이야기를 20%도 이해하지 못했다. 친구는 자려고 했지만 내가 이야기를 너무 진지하게 들어줘서 어쩔 수 없이 계속했다고 한다. 다음번에는 끊어주마.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새벽 5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을 것이다.

 

진도 운림산방 앞 미술관에서 만난 귀한 그림. 수묵담체화의 매력이 물씬 넘쳐난다. 비록 서울에서 태어나 충청도에서 살고 있지만 예향을 고향으로 두고 있다는 것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