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 저녁 9시. 헤르메스를 탈까 마음이를 몰고 갈까 한 시간을 갈등했다. 몸이 피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번 편한 것에 길들여지면 영원히 자전거를 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수원에서 지지대쉼터로 차를 돌렸다. 헤르메스를 타고 시원하게 달렸더니 아무 생각 없이 즐겁고 상쾌했다. 오늘 아침도 제법 햇살이 따가워 자전거 타기가 쉽지 않았지만 고가도로 아래 그늘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즐겁게 출근할 수 있었다.
흑미 논의 물이 많이 줄어 있었다. 금요일부터 계속해서 온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절집 펌프를 돌려 흑미 논에 대고 찰벼 논을 보니 어머니께서 어제 펌프를 돌려놓으셨다. 메벼 논과 찰벼 논은 모두 상태가 좋았다. 메벼 논 논둑에서 우렁이들이 작업하는 것을 관찰했다. 두 개의 멋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10년 만에 처음이다.
장면 1. 우렁이 한 마리가 7미리 정도의 풀 위를 덮치더니 순식간에 먹어 치운다. 바로 옆에 1센티짜리 풀도 있는데 방향을 옆으로 트는 바람에 먹지 않았다.
장면 2. 우렁이 한 마리가 고개를 쳐들어 개구리 밥을 먹었다. 그러더니 개구리밥과 연결된 뿌리를 거의 3센티 정도를 꿀꺽꿀꺽 삼켰다. 참으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결국 나의 우렁이 농법 설명도 틀렸다. 싹이 트기전에 땅속에서 막 움트는 여린 싹을 먹어서 제초를 한다는 내 생각은 틀렸다. 우렁이들은 작은 풀은 물론이고 여린 뿌리까지도 모두 먹어치울 수 있다. 풀을 찾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풀을 제대로 제거하지 못한다. 이번에는 써레 작업을 제대로 못해서 우렁이들이 먹어줘야 할 풀들이 벌써 많이 싹을 틔우고 있다. 22일에 써레질을 했으니 오늘이 9일째인데 벌써 풀이 올라오는 게 눈에 보인다. 우렁이들이 이렇게 활기차고 왕성하게 일을 해 준다면 풀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대부분의 모들이 자리를 잘 잘아서 꼿꼿하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비료를 뿌려야겠다.
비료 6포대를 싣고 논으로 왔다. 5시가 넘었다. 바람이 시원해서 일할 만하다. 비옷 하의를 입고 작업을 하는데도 온몸에 흙물이 튄다. 좀 깨끗하게 작업을 하고 싶은데 왜 이리 사방에 흙물이 튀는지. 논둑도 정리하고 모를 심어야 할 곳에는 모를 심고 하다 보니 7시 45분이다. 몸을 씻고 비료를 논둑으로 날라다 놓았다. 6시경부터는 비료를 뿌리려고 했는데, 논둑 작업을 하다 보니 비료 뿌릴 시간이 나지 않았다. 내일 뿌리면 되지.
논바닥을 긁어내면 작은 풀들이 뿌리를 하얗게 드러내며 떠오른다. 우렁아 우렁아, 풀을 먹어다오.
일을 마치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면 기분이 맑아지고 피로가 좀 풀린다. 오늘은 보일러를 늦게 올려서 물이 차다. 간신히 머리만 감고 들어왔다. 내일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 일찍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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