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은 일찍 깼지만 바로 일어나지 않고 빈둥대다가 커피와 빵으로 아침을 먹고 밭으로 갔다. 나름 철저하게 준비해서 나간다고 했지만 예초기를 다시 정비하느라 4번을 왕복해야 했다. 예초기의 톱날을 고정하는 나사는 왼나사다. 오른손의 힘만으로 왼쪽으로 힘껏 조이고 나가서 작업을 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톱날에 걸리는 저항 때문에 손으로 조인 나사는 풀려 버리고 만다. 처음에는 이것을 몰라서 계속해서 손으로 조였다가 두 번을 왕복해야 했다.
농사일도 정리정돈이 제일 중요하다. 작업 시작 전 10분, 작업 후 30분 정도는 정비 시간과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밭둑이나 논둑에는 흙과 식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이 관리하는 것이 최선이다. 풀 나지 말라고 덮어놓은 부직포는 시간이 지나 낡아지고 나니 풀을 막지 못하고, 돌아가는 예초기에 빨려 들어가 예초기를 고장 나게 한다. 봄에 부직포를 덮었으면 가을에 걷어 두어야 한다. 고추 끈이나 그늘망, 지주대, 호스, 통, 돌 등 온갖 장애물이 밭둑에 가득하다. 던져두지 말고 전부 정리해서 걷어 들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하나하나 일일이 치워가며 다시 말해서 정리를 하면서 작업을 해야 하니 시간도 많이 걸리고 '노동의 짜증'을 불러 일으킨다. 음. 그러다가 결국 가장 비싼 대형 물통에 예초기의 칼날이 지나가면서 커다란 일자 구멍을 내고 말았다. 작업 전후에 정리정돈을 하지 않으면 결국 이런 손실이 발생한다.
집과 밭을 모두 일곱 차례 왕복하면서 6시 40분부터 시작된 오전 작업은 10시 반에야 끝났다. 어깨가 뻐근하다. 다행히 비가 내리려는 듯 흐린 하늘이 작업환경을 최적으로 만들어 주었다. 원래는 밭둑만 하려고 했던 작업을 마당의 쥐똥나무 정리까지 확장했다.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다가는 일을 못하겠기에 지나가는 길에 슬슬하자고 했는데, 우연히 큰 일을 해냈다.
어제의 기억으로 오늘은 작업하기 전에 보일러를 올려놓고 갔다. 샤워를 하는데 따뜻한 물이 힘차게 나온다. 좋아요. 개운한 기분으로 옷을 입으며 보니 쥐똥나무 언덕에 심어놓은 딸기 덩굴에 빨갛게 열매가 열렸다. 커다랗게. 세상에. 하나를 따서 먹었다. 새콤달콤하다. 최고의 딸기 맛이다.
딸기는 이제 쥐똥나무 언덕에 심어야겠다. 쥐똥나무 언덕에 무엇을 심을 지 고민하다가 채송화도 뿌려보고 어성초도 심어 보고했는데, 딸기가 최고다. 채송화는 단 한송이의 꽃도 피지 못했고, 어성초는 쓸모가 없고 꽃도 예쁘지가 않다. 3년 만에 이렇게 튼실한 열매가 맺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리 강력한 풀이나 나무가 있어도 딸기의 번식력은 당하지 못한다. 한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고, 초봄에 귀여운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노지 딸기. 이것이 답이었다. 과학영농을 주장하는 수많은 학자와 농부들도 이런 답을 주지는 못했다. 농업은 결국 우연이다. 여러 가지 시도를 해서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조용히 지켜보다가 잘 되면 계속하면 실패하면 다른 시도를 해 보면 된다. 오, 딸기. 나의 큰 고민을 해결해 주려나 보다.
점심을 먹고 오후 3시 반부터 나가서 수중 모터 테스트를 했다. 자연 수압보다도 안 나온다. 삼촌과 통화를 해 보니 고장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반납하기로 하고, 삼촌이 직접 테스트를 해서 다시 보내기로 했다. 뭐 하나 새로 도입하기가 이렇게 힘들다. 임시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기 위한 시도를 3년째 하고 있는데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 돈과 시간은 펑펑 쓰고 '노동의 짜증 지수'는 엄청나게 올라가는 일이다. 어떻게든 성공해서 보상을 받아야 한다.
논으로 갔다. 비료를 먼저 뿌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논에서 빠져 나오지 못할 것이다. 오른손 왼손을 번갈아 사용하여 힘든 오른손을 아껴서 사용했다. 메벼 논과 찰벼 논의 한쪽 구석은 비료가 제대로 뿌려지지 않았다. 대신에 유박 퇴비를 한 포대 나눠 뿌려야겠다.
논둑을 정리하고 모를 심었다. 모를 심고 나니 일한 흔적이 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인 논둑 정리는 논을 망가뜨리지 않으려 예방하는 일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을 게을리하다가는 크게 낭패를 본다. 이런 일을 잘 해야 한다. 남들 눈에 띄지 않는 일들을.
일을 하다가 찰벼 논의 가운데를 보니 물봉선화가 계속 올라오고 있다. 엄청나게. 써레질에 실패하면서 제대로 갈리지 않은 잔풀들이 남아 있다가 일시에 고개를 드는 모양이다. 논둑 정리를 하다가 말고 논 가운데로 슬슬 끌려갔다. 7시에 일을 마치려 했으나 결국에는 7시 50분까지 물봉선을 걷어내는 일에 매달려야 했다. 그래도 하고 났더니 기분이 좋다. 지친 몸으로 비옷 하의를 벗으려고 하니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밥을 먹고 뉴스도 보지 못하고 9시 반부터 잤다. 아침 6시 반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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