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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아, 비가 내려도 너무 내리는구나_200518 las dieciocho de mayo_el lunes

써레질은 정말 잘 해야 한다. 우렁이들이 본격 작업을 하기 전까지 움트는 모든 풀씨들을 로터리로 잡아줘야 한다. 그리고 논의 수평도 잡을 수 있으면 더욱 좋고.

 

4시 반에 트랙터를 빌려와 물 한 잔 마시고 써레질을 시작하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우비를 챙겨 입고 잠시 즐겁다. 아, 시원하다. 지나가는 농부들마다 물이 적다고 걱정을 한다. 나는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논에 들어가서 한 바퀴를 돌고 났더니 물이 부족하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그래도 기계는 천천히 잘 돌아가니까 문제 없이 잘 끝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는 언제나 실망으로 돌아온다. 네 바퀴를 돌면서 무난하게 써레질을 잘 해냈고, 마지막으로 한 바퀴만 더 돌기 위해서 천천히 논을 돌고 있는데, 기계가 자꾸 빠지는 느낌이 난다. 로터리를 들어 올리면서 그럭저럭 마지막 코너를 돌고 있는데, 트랙터가 전진을 못하고 논으로 빠져 든다. 결국 제자리에 서버렸다. 20분을 삽질로 논흙을 걷어낸 다음에 다시 시도해봐도 제자리에 못박혀 있다. 

 

할 수 없이 반장에게 지원 요청. 트랙터를 끌고 와서 움직이게 도와준다. 이 때부터 겁이 나기 시작한다. 또 빠지면 어떻게 하지. 매우 보수적으로 운영할 수 밖에 없다. 로터리를 깊이 내려서 모가 뿌리를 쑥쑥 내릴 수 있게 해 줘야 하는데 4, 5단으로 높여서 작업을 했다. 트랙터는 더 이상 빠지지 않았지만 이런 정도로 써레질을 해도 모를 심을 수 있는 것일까.

 

트랙터를 빼면서 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트랙터에 빠졌을 경우에 탈출을 돕는 레바가 있다. 이 레바를 발로 꽉 밟고 전진을 하게 되면 왠만한 수렁에서도 빠져 나올 수 있다. 매년 이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어서 그동안 잊고 있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오늘 트랙터를 빌릴 때는 이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아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반장이 와서 트랙터를 빼는 과정에서 이 점을 지적해 주어 알게 되었다. 매년 다시 배운다.

 

벌써 해가 저물기 시작하고 빗줄기는 점점 더 강해진다. 라이트를 켜고 부지런히 왔다갔다 한다. 가끔 가다가 로터리를 깊이 내려서 시도해 보지만 트랙터가 나가지 않는 것이 느껴진다. 물이 부족해서 더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쏟아지는 비가 계속해서 논에 물을 채워주고 있어서 다행이 물부족은 해소되고 있다. 논상태는 울퉁불퉁. 8시 20분까지 야간작업을 강행해서 여러 차례 써레질을 해 주었지만 제대로 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저 여러차례 써레질을 했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비가 내려도 너무 내린다.

 

저녁을 먹으며 모내기 지원을 나오신 군산 삼촌의 76세 생일을 축하했다. 비가 거세게 내리다가 11시가 되어 그쳤다. 논에 가서 보니 오늘 오후에 내린 비가 한 번 더 내린다 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였다. 절집 펌프는 메벼 논에, 논둑 펌프는 찰벼 논으로 돌려서 계속 물을 받게 해 두었다. 내일은 오늘보다는 물부족의 문제는 없을 것이다. 오늘의 경험이 내일의 주작업을 훨씬 수월하게 해 줄 것이다.

 

가족이 있어서 참 행복한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