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호기심천국/인도여행

[인도 아그라_델리]네 스스로 원하는 모습을 이야기하라_190129 쓰리다

여행이 끝나갈 때 쯤 되니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먹고 자고 놀다보니 시간이 빠르게 흐른 것이겠지. 8시 반 쯤 느긋하게 식사하러 내려가서 한 시간 동안 여유있게 식사를 즐겼다. 마지막으로 호텔 옥상에서 아름다운 타지마할을 다시 한 번 감상하고 짐을 싸서 로비로 내려갔다. 라자의 말대로 호텔의 무료 셔틀서비스는 없다. 얼마냐니까 900루피란다. 됐다. 올라를 불렀다. 140루피다. 스스로 우리의 아들이라 외치던 라자는 택시 가격의 두 배를 불렀다. 택시를 타고 나가는데 호텔 바로 앞에서 그가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그래, 안녕. 어떻게든 잘 살아라.


인도는 인도의 색이 있다. 그렇더라도 변해야 할 것은 변해야 한다. 올라 시스템이 지금처럼 성장하면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바가지 시스템은 자취를 감출 것이다. 대신 너무 싼 올라 가격이 인상이 되어야 한다. 정부에서는 최저 임금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너무 많은 잉여 노동력 때문에 쉽지 않겠지만 가이드 라인이라도 되어야 한다.


인도 기차의 화장실은 밖의 고리가 잠겨 있는 경우 대부분 비어 있다. 내부로 들어가면 내부에서만 잠글 수 있는 고리가 있다. 그리고 깨끗하다. SL 등급 이하는 타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3AC 이상은 화장실이 참 깨끗하게 관리되고 사용된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2등칸 보다 잘 관리되고 깨끗하다. 기차를 총 4번 이용했는데, 처음 두 번은 틀림없이 지저분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아예 이용하지 않았다. 여유가 생기고 나서 화장실에 가 봤는데 깨끗했다. 2AC에는 양변기와 쪼그려 변기가 있어서 원하는데로 이용할 수 있었다.




아그라 칸트역에서 델리의 니자무딘 역으로 오는 Kongo Exp는 대체로 정시 운행했다. 플랫폼이 바로 옆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빼놓고는. 3등칸이라도 사이드 침대 아래 위를 점령하면 우리 둘 만의 공간이 확보되어 행도이 좀 편했다. 낮이어서 2층 또는 3층 침대 위에는 모포가 가득하여 무슨 침구 쓰레기장 같다. 마침 옆 침대들이 널널하게 비어 있어서 아무 침대나 차지하고 누워 24일간의 델리 여행기를 읽는다. 그리미의 일기도 함께. 참 긴 여행이었고 즐거웠다. 어서 돌아갔으면 싶기도 하다가 더 있고 싶기도 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호텔은 호화판이고, 괜찮은 호텔인줄 알았는데 그저 그랬다. 발품을 팔아 호텔을 구하지 못한 것이 다소 아쉽다. 아들들과 다시 오게 되면 반드시 발품을 팔아 3박 4일씩 머무르며 여행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예쁜 아이가 열차 산책을 나왔기에 풍선 하나를 불어 주었더니 아주 좋아한다. 까꿍 놀이도 하면서 친해졌다. 아빠가 삼성에서 일한다고 한다. 인도에는 유난히 삼성과 현대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많다. 안정된 일자리가 되어 준다니 고마운 일이다.


멀리 타밀나두에서 올라온 잘 생긴 친구 프랜시스는 군대에서 모포 개던 솜씨를 발휘해서 그의 일을 도와주면서 친해졌다. 불과 네 장의 모포를 함께 갰지만 말이다. 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잠시 기다리란다. 주머니에서 빗을 꺼내 거울을 보며 예쁘게 머리를 빗고, 작업복을 열어 젖히자 깔끔하게 다려진 푸른 색 셔츠가 멋이 난다. 그래, 훌륭하다. 멋을 알아야 인생은 즐겁지.







3시간의 짧은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마지막 기차를 내렸다. 델리역보다는 덜하지만 짐을 들어주겠다는 포터에서부터 릭샤, 택시 기사까지 열차 구내까지 올라와 영업을 한다. 미안. 사람이 적은 매표소로 가서 올라를 불렀다. 금방 답이 와서 통화를 하는데 그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또 도움을 청했다. 2번 게이트 앞 주차장에 있단다. 고마워요. 호텔 앞까지 250루피다.


호텔은 같은 호텔이어도 서비스의 수준은 완전히 다르다. 웰컴 드링크로 열대 과일 쥬스를 한 잔씩 주는데, 오 베리 굿. 시원하다. 방은 깔끔하다. 창문을 열어보니 벽이다. 꾸뜨브 미나르로 가기 위해 짐을 챙겨 내려와서 호텔 방이 답답하니 창문 있는 방으로 바꿔 달라고 했다. 알겠단다.


다시 올라를 불러서 140루피에 9km 정도에 있는 꾸뜨브로 갔다. 카드 결제는 350루피(현금은 400루피). 탈세를 막기 위한 인센티브인 모양이다. 기대하면서도 기대하지 않은 꾸뜨브 미나르 유적군은 매우 좋았다. 두 시간이 넘도록 편안하게 아름다운 문화 유산을 즐겼다. 사진도 찎어주고 티벳에서 온 여행객들도 만났다. 젊은 아이들이라 방탄을 너무 좋아한다. 덕분에 우리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지난 여행기간 동안 가렵지 않던 종아리가 지난 며칠 간의 쌀쌀한 날씨로 피부가 건조해지자 갑자기 가려워진다. 무심코 손댄 종아리가 참을 수 없이 가려워진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사온 손 보습제를 꺼내 종아리에 마구 바르고 있는데, 꾸뜨브 미나레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던 친구들이 재미있어 한다. 아름다운 레이디가 보고 웃기에 미안하다고 했더니 괜찮단다. 날이 차니 당연히 건조해서 가렵지 않겠냐는 것이다. 미인은 이해심도 깊다.


경비원 아저씨가 자꾸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해서 피해 다녔다. 열심히 뛰어 다니며 멋진 사진을 찍어대는 철없는 청년들이 그래도 아름다워 보인다. 뭔가를 하고 싶은데 이 넓은 대륙에서 오토바이 타고 셀프 픽쳐나 찍어대는 것이 유일한 놀이다. 건전한 놀이다. 간디와 네루, 암베드 카르, 테레사 수녀 말고 인도의 현재와 미래에 젊은 청춘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 주어야 한다.


인도 여행을 하며 매우 아쉬웠던 일은 여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다. 얼마든지 그녀들의 하소연을 들어줄 수 있었는데, 내 영어가 너무 짧았다. 맑은 눈빛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지 못했다. 이제 막 봉건 상태에서 탈피한 한국의 자유인은 아직도 전근대의 그늘 속에 살고 있는 그녀들의 작은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 주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더 열심히 공부해서 다시 인도로 와야겠다. 비행기를 타도 인도, 기차를 타도 인도, 택시를 타도 내내 인도 안에 머물러야 하는 넓은 인도에서 외치는 목소리들을 들어야겠다. 간디는 말했다. 누군가 이야기 하는 모습의 당신이 아니라 네 스스로 원하는 모습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당신을 이야기하라고. 그들은 이야기 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고, 나는 아직 덜 준비되었다.








호텔로 돌아와서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들어간 곳은 Chinese Fast Food. 마지막 날의 저녁 치고는 좀 그렇지. 말을 타고 요란하게 웨딩 소식을 알리는 멋진 사내가 밴드를 앞세우고 지나간다. 호텔 방을 길가로 바꿨다. 창문을 여니 바로 앞에 작은 시장이 쫙 펼쳐져 있다. 그리미의 명을 받아 과일을 사러 나갔다. 50루피에 바나나와 귤을 사고, 70루피에 달콤한 과자 7개를 사고, 짜이도 한 잔 마시며 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왠지 친근하다. 이발소에 들려 풀코스의 가격을 알아봤더니 700루피를 달란다. 만원이 넘는다. 면도에 두피 마사지까지 거의 한 시간이 걸린단다. 알겠다고 했다. 안녕.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10만원이 넘는 호텔이지만 히터는 별도로 가져다 틀어준다. 슬리퍼도 한 켤레씩 받았다. 내일 비행기에서도 사용할 수 있겠다. 아, 정말 끝이 나는구나. 맛있는 귤과 바나나와 파파야도 이제는 맛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안녕, 인도. 나마스테 바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