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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천국/인도여행

[인도 오르차_잔시] 잔시에서 Queen of Jhansi를 보다_190125 뺘뜨니차

보드카 한 잔에 맥주 두 병을 나눠 마시고 9시부터 잠을 잤더니 새벽 다섯 시에 잠이 깬다. 인터넷으로 뉴스공장 2부를 들으며 웃다가 김미숙의 가정음악까지 듣고 있으니 집에 온 기분이 들었다. 일어나 세수를 하고 어제 사진을 보며 추억이 되어 버린 시간을 되새긴다. 어제 일인데도 까마득하면서도 선명하게 즐겁다. 우리가 여행을 잘 하고 있는 모양이다. 사소한 다툼과 감정 싸움을 계속하고는 있지만, 그것은 낯선 곳에 우리 둘만 있다는 사실에 긴장했기 때문이다.


팩트 TV에 등장한 아주머니의 이야기가 관심을 끈다. 10년 전에 목포 문화유산거리에 500평을 사서 들어왔는데, 장사가 되지 않아 굶어죽게 생겼다. 손혜원 의원이 집을 사서 개조를 하면서 이 거리가 살아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보였다. 그래도 집값이 네 배 다섯 배 오르려면 10년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 조사해야 할 사람은 손혜원이 아니라 최근에 실제로 네 배 다섯 배를 주고 네 채의 건물을 산 사람들이다. 도대체 이곳의 집을 그렇게 비싼 값으로 사서 들어온 이유가 뭔가. 그 사람들 꼭 조사해야 한다. 한국은 그렇고.


어제 베트남은 잘 싸우고 졌다. 7,80년대 열심히 하는 한국 축구를 보는 느낌이다. 일본 축구는 무기력했다. 밥 먹으러 가야 하는데 아직도 8시가 되지 않았다. 아, 어제 본 가게 아저씨. 한국 사람들이 이곳에 얼마나 많이 오는지 한국말을 이것 저것 잘 하신다. 마우스용 배터리 한 개 50루피, 물과 과자 두 봉 100루피. 언제까지 이곳에 머무냐고 묻더니 자기 가게에는 없는 것이 없으니 또 오라며 신나는 웃음을 선사한다. 나도 좋다.


기념품 가게 아저씨는 아이를 안고 달래고 있다. 손자일 것같기도 하다. 풍선을 하나 불어서 손에 쥐어 주었다. 잘 살겠다. 어제 싸르나트 앞의 학교에서는 잘 차려입은 학생들이 깔끔한 얼굴로 교문을 나서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오토바이와 승용차로 아이를 데리러 온 부모들도 있었다. 살 만한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아이들을 잘 키우고 있는데, 열 한 시가 되어도 여전히 가방을 메고 학교로 걷고 있는 데칸 고원의 아이들의 미래는 어떨까.


아침 식사를 하러 갔다.  8시 반이 넘었는데 커다란 레스토랑에 우리 밖에는 없다. 따뜻한 접시에 주문한 음식들을 차례대로 가져다 놓는다. 음식 하나 하나를 가져다 놓으며 나와 눈을 마주치며 음식 이름을 설명해 주고 먼저 가져다 준 음식이 어떤지를 물어봐 준다. 종원원이 아니라 친구와 같은 느낌이다. 뿌리와 오믈렛과 에그 스크랩블 샌드위치와 볶음밥과 파파야와 짜이와 커피로 푸짐한 식사를 했다. 라씨를 먹으려 했는데, 체크 아웃할 때나 맛봐야겠다. 너무 배부르다.


손석희 파일이 터져 나왔다. 정말 찌질한 사람들이다. 국가와 기업의 부를 빼돌리는 전문가들이면서 국가 안보를 자신들의 안락한 방패막이로 이용해 먹는 매국노들이 하는 짓이 다 이렇다. 재미있는 나라다. 이 나라를 이 정도 수준으로 만들어 준 시민 여러분께 감사 드리고, 내가 얼마나 위대한 시민인지를 알겠다. 손석희도 애 많이 쓴다. 그런데 어찌하랴, 전선에서는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는 것을. 손석희는 신이 아닌다. 하루에도 여러 가지 잘못을 저지르고 산다. 그는 좀 더 나이든 나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비가 그쳐서 산책길에 나섰다. 어제 만났던 청년과 그 친구를 만났다. 쉬쉬 마할로 탄두리 치킨을 먹으로 오는 길인데, 벌써 여러 차례 인도를 여행한다고 한다. 부러운 젊음이 아닐 수 없다. 어제 가지 않은 뒷길로 접어든다. 뒷길에서 바라보니 우리가 묵은 쉬쉬마할이 비로소 궁전다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시멘트도 아름다운 건축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색 잘 칠하고 유지보수 잘 한다면 말이다. 길은 사람이 없어서 한적하고 좋은데, 아쉬운 것은 무서워서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넓직한 길만 걸었다. 비가 내리고 나니 공기는 더욱 상쾌했다.


여기저기서 한 사람씩 나타날 때마다 괜히 걱정이 된다. 저 사람이 혹시 나쁜 사람일까. 인도는 여전히 공포의 대상인 것일까. 도시락통을 들고 학교를 가는 듯한 아이가 사진을 찍자고 한다. 사심없이 사진을 찍었는데, 돈을 달라고 한다. 미안해. 도시락통을 들고 가는 곳은 학교가 아니고 성앞 유채밭 근처다. 일하러 온 것일까. 염소들은 조용히 유채밭에서 풀을 먹고 있다.











호젓한 시골길을 더 즐기고 싶었지만 다른 관광객들이 도와주지 않아서 혼잡한 시내로 간다. 저 멀리 있는 락쉬미 사원을 갈까 하다가 이번에 다 봐 버리면 나중에 올 일이 정말 없을 것같아서 그냥 시내를 다시 돌기로 했다. 비가 내려서 포장을 덮어버린 좌판이 많은데 지치지 않고 열심히 호객 행위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들 맨발로 어느 사원을 향해 간다. 신랑 신부인듯한 사람도 간다. 따라가 보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신전인 듯한 뭔가가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하다. 노숙인들이 가득 모여 손을 벌리고 있다. 대부분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지나가다가 잔돈이 필요했는지 지폐를 내고 거스름돈을 바꿔가는 사람도 있다. 적선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다시 호텔로 돌아가는데, 문이 닫힌 야외 화장실에 고성지대다운 안내판이 붙어있다. 인간 모두가 존엄한 존재이므로 누구나 다 King과 Queen이다. 야만의 세상에서 벗어난 정말 인간다운 생각이다. 그런데 인도에 왔더니 우리는 Sir와 Madam이 되어 있다. 어디에서나 그렇게 불리우다보니 멀리서 Sir 소리만 들려도 날 부르는 소리로 알고 고개를 든다. 갑자기 가인이 부르는 '아가씨'가 듣고 싶다.


"님이 오는 소리 같이 멀리서 들리는 소리 내 가슴을 조이는 그 소리"











기차를 좀 더 편리하게 타기 위해서 잔시에 호텔을 잡았다. 오르차에서 12시에 체크 아웃을 하고 올라를 부르려했는데 잡히지 않는다. 호텔에서 차를 부르면 얼마냐고 물었더니 800루피란다. 어제 우리는 500루피에 호텔 앞까지 왔다고 했더니, 모든 차들이 잔시에서 출발해 오기 때문에 왕복 요금을 받아야 한단다. 릭샤는 어떠냐고 했더니 300루피란다. 릭샤를 불러달라고 했다. 300루피를 달라고 해서 주었더니 릭샤 왈라에게 수수료를 떼고 요금을 지불하는 모양이다.

 

날씨가 무척 차다. 비가 내린 북인도의 겨울은 늦가을의 우리나라와 같다. 맨몸으로 바람을 맞으니 추워서 배낭에 넣어 두었던 패딩을 꺼내서 무름을 덮었다. 릭샤 안이 포근해졌다. 이렇게 제대로 된 요금을 받은 릭샤들은 합승을 하지 않고 운행하는 모양이다. 대부분의 인도 사람들이 합승으로 릭샤를 타고 다닌다. 시골로 올수록 그런 모습을 정말 많이 보게 된다. 잔시 쪽으로 접근할수록 공기가 나빠진다. 그리미는 머플러를 두르고 코를 막고 이동한다. 멀미가 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소음이 지독하다. 머리가 아프다. 조용한 고성지대와 호텔을 나오니 지옥이 바로 앞이다. 그런 지옥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여유롭고 아름다운 인도인들이 얼마나 많은 지 모르겠다. 우리는 아직 적응이 되지 않았을 뿐이다. 수련도 한적한 시골이 더 좋다고 말했다.









호텔은 정말 멋진 대접을 해준다. 모든 직원들이 눈을 맞춰 적극 인사를 나눈다. 영어도 유창해서 나는 못 알아 들을지언정 그들은 매우 잘 알아들어서 원하는 것을 도와준다. 방도 넓고 쾌적하다. 6만원이라. 중국에서 5년 전에 비슷한 돈으로 받던 대접을 이곳에서 받는다. 앞으로 5년 후에는 아마도 이 가격에 이런 대접을 받지 못할 것이다. 아그라와 델리에서 실컷 즐기도록 하자. 물론 절대로 뜻대로 되지 않는 노 프로블럼이다.


짐을 풀고 잔시포르를 보러 나왔다. 릭샤를 탈까 하다가 20분만 걸으면 된다고 해서 걷기로 했다. 릭샤를 타지 않고 약간이라도 편하게 걷기 위해서는 릭샤 운행의 역방향 즉 우측통행을 하는 것이다. 앞에서 벌어지는 교통 상황도 알 수 있어 빵빵의 의미를 이해하니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잔시성으로 가는 길목은 오토바이 수리점이 집단으로 모인 곳이다. 이 작은 도시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오토바이가 있는 것일까. 인근 오르차나 괄리오르에서 이곳까지 수리를 위해 오는 것일까. 파파야와 멜론을 파는 행상들도 제법 많다. 비가 내려 한결 공기는 깨끗하다.


길을 가다 반가운 벽화를 만났다. 쓰레기 버리지 말고 열심히 청소해서 깨끗한 거리를 만들자. 그래, 그래야지. 그런데 그림이 어째 인도의 그림같지 않고 우리나라 새마을운동 선전 그림 같다. 누군가가 혹은 그녀가 나라돈으로 희사한 것일까.


외국인은 없다. 20만명의 인도인 사이에 우리 두 사람이 섞여있다. 호텔에서 외국인은 보지 못했다. 입장료는 우리를 위한 특별 요금 300루피. 돈 많은 외국인 티를 팍팍 낸다. 이곳의 티켓 판매소에는 매우 드문 일인지 여권까지 등록하는 영광을 주면서 시간을 팍팍 잡아 먹는다. 하루 입장료는 2만원을 예상했는데, 오르차와 잔시에 머무는 사흘 동안에 600루피(만원)을 사용했다. 저렴한 인도에서 절약을 잘 하고 있다. 다만 아그라의 관광물가가 다른 인도지역에 비해 높아서 여행자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니 대비해야겠다.












잔시성은 세포이 항쟁 당시에 마하라니가 영국 제국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아 박살이 난 곳이 아닐까. 제법 높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어서 쉽게 함락하기 어려운 곳이다. 결국 마하라니는 왕위 계승자를 업고 말을 타고 이 성을 탈출하여 괄리오르 Gwalior까지 가서 그곳의 마하라자를 설득하여 영국군과 일전을 벌인다. 서른 살의 꽃다운 나이에 그녀는 전선에서 죽어간다. 이곳의 인도인들은 그녀를 존경하여 곳곳에 그녀의 동상과 그림을 그려놓고 기억한다. 1857년부터 58년까지 1년 이상 계속된 그녀의 항쟁은 인도 독립운동사에 큰 획을 그은 일일 것이다. 물론 다른 인도는 영국에 빌붙어 부와 권력을 유지하는 일에 급급하여 항쟁 이후 90년을 영국의 식민지로 살아간다. 인도가 영원히 영국의 땅이었더라도 위대했을 그녀의 투쟁은 1947년 인도의 독립으로 더욱 빛난다.


입장료에 걸맞는 구경을 하느라 성을 뺑뺑 돌며 쉬며 한 시간 넘게 구경을 하다가 다시 길로 나섰다. 입구의 마하라니 기념 공원에 들르기 위해서다. 노숙자들이 이상한 모습으로 앉아 있으면 어쩌나 하고 갔는데, 오 깨끗하다. 수학여행을 온 듯한 교복을 입지 않은 학생들이 모여 앉아 놀고 있고, 넓은 공원은 깨끗하게 잘 가꿔져있다. 저쪽에서 아이들이 뛰어온다. 사진을 찍자고 한다. 내가 찍고 싶었지만 여학생들이니 그리미와 찍기로 한다. 처음에는 두 명이었는데 점점 늘어난다. 악수도 나누고 인사도 하고 즐겁게 만났다가 헤어진다.


공원을 나오다가 볕바라기를 하고 있는 네 명의 아이를 만났다. 인사를 건네기에 인사를 받고 그냥 지나치다가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그러란다. 다 웃는데 한 명이 웃지 않는다. 웃으라고 했더니 자기는 안 웃는게 좋단다. 사진을 찍고, 이름도 묻고 - 그러나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 하면서 낄낄 대다가 풍선 하나를 불어서 제일 어린 아이에게 준다. 네 명 모두 좋아한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바나나를 샀다. 1kg에 20루피란다. 세상에 이렇게 싸다니. 오르차의 과일장수 아주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니다, 바나나가 아니라 귤을 산 것이니 꼭 같은 가격이 아닐 것이다. 길거리 행상을 하는 사내들의 표정이 이렇게 밝고 신나다니. 함께 사진을 찍어야 했는데 그냥 인사만 하고 돌아선 것이 정말 아쉽다. 호텔 앞에는 영화관과 레스토랑이 있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려고 했는데, Take out 전문 식당인 모양이다. 다른 곳을 찾아보자. 영화관 앞에는 두 명의 아이가 험한 음식을 먹고 있다가 우리를 보며 쫓아온다. 바나나 두 개를 떼어서 주니 너무 좋아한다. 다행이다, 필요한 것을 준 모양이다.


Queen of Jhansi가 오늘 개봉하였다. 이 영화를 잔시에서 보게 된 것은 어떤 운명이다. 그런데 그리미가 보지 않겠단다. 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결국 호텔방에 그녀를 혼자 두고 영화를 보러 나왔다. 230루피. 꽤 비싼 가격이다. 장면이 참 멋지다. 잔시 고성은 내가 본 잔시 고성과는 완전히 다른 스펙타클한 광경이 펼쳐진다. 그녀가 특히 멋지다. 남자의 사랑을 구걸하는 연약한 여인이 아니라 영국 장교에게 부당하게 갈취한 인도의 가축들을 찾아오고 해야 할 말을 당당하게 하는 멋진 여성이다.








그녀는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승마, 펜싱, 사격을 취미로 익힌 19세기의 현대 여성이다. 영화에서는 카스트가 다른 여인이 내미는 찻잔도 그대로 받아 마시고, 그들과 어울려 함께 춤춘다. 정말 멋지다. 물론 이 멋진 영화는 인도의 독립 영웅에 대한 이야기라 우리 나라에 수입될 일이 없을 것이다. 영화 보는 내내 그녀의 당당한 언행에 박수가 터져 나오고 구호가 터져 나온다.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알 수 없지만 말을 타고 드넓은 황야를 달리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하다. 영화의 끝은 내부의 배신과 그녀의 최후인데, 아주 잘 처리했다. 내가 본 두 시간 내내 그녀는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잔시성의 탈출 조차도 그녀의 승리였다. 그리고 마지막 패배하는 모습은 불꽃으로 승천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전혀 슬프지가 않다. 장엄하다. 잔시와 오르차 여행의 최고를 이 영화관에서 얻었다. 박수와 함께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을 나서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비가 쏟아진다. 세상에. 호텔에서 먹기로 한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는데, 우리 식사가 끝나기 전에 모두 떠나 버려 그 많은 종업원들이 오직 우리를 위해 대기한다. 눈을 마추치면 식사는 어떠냐 필요한 것은 없냐 계속 묻는다. 그래서 내가 실수를 했다. 이태리 샐러드, 새우 볶음밥 치킨 커리로 이미 충분한 양이었는데, 그만 난을 주문하고 말았다. 우리 치킨 커리가 남아 있어서 그가 와서 난이 필요하냐고 묻기에 서비스로 주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주문을 받자 바로 카운터로 가서 입력을 한다. 아, 너무 배부르다. 두 사람의 부페 이용료가 1,200루피다. 최고로 비싼 저녁을 먹었다. 이만원이다.


분명히 히터를 켰는데 온도는 여전히 18도이고 히터 도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프런트에 전화했더니 사람을 보낸다. 30분 넘게 작업을 해서 정상 작동한다. 별 이상이 없었다고 한다. 아닌데,,, 노 프러블럼. 슬리퍼를 두 개 달라고 했다. 역시나 새벽 3시경에 히터가 다시 들어오지 않아 실내 온도가 18도로 떨어졌다. 나는 상쾌해서 좋았지만 그리미가 추웠던 모양이다. 체크 아웃할 때 다시 한 번 이야기를 했는데, 미소로 끄덕이는 그의 표정이 노 프러블럼인지 프러블럼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한국 축구가 카타르에 패배하는 마지막 10분을 지켜 보았다. 처참했다. 축구가 축구다워지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https://youtu.be/tKmkMVaNu9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