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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천국/인도여행

[인도 오르차] 착하게 살아라, 이곳은 신들의 땅이다_190124 취띠예르그

두 시간 정도 늦어진 상태에서 잔시역에 무사히 도착했다. 9시가 다 되었으니 해도 뜨고 날씨도 시원하다. 작지 않은 도시다. 기차역에는 유난히 사람이 많다. 그러나 올라가 뜨지 않는다. 기차역의 오토 릭샤는 300을 부르고 자동차는 500을 부른다. 20km에 40분 가까이 걸린다. 5분 정도 검색을 하다가 포기하고, 할인 협상도 포기하고 그냥 호텔로 간다. 쉬쉬 마할은 정말 다 무너져 가는 고성이다. 어쩔려고 이렇게 해 놓고 호텔을 열었는지. 이런 호텔을 이용해 보는 것이 처음이니.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경험이 중요하다. 멋진 방으로 업그레이드를 해서 early check in을 할 수 있는데 3천루피만 더 내면 된다고 한다. 그리미가 좋다고 했다면 모를까 뭐 그렇게까지.


짐을 맡기고 호텔을 나선다. 마을까지는 한참(10분 이내의 내리막, 아 이따가 다시 올라와야 하는구나)이나 내려간다. 가이드북에서 성폭행을 당했다 살인을 당했다 하며 7, 8년 전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으니 부담스러워서 고즈넉한 장소들을 산책하기가 두렵다. 호텔 바로 오른쪽 건물은 자한기르 마할이고, 왼쪽 건물은 라자 마할이다. 입장료는 통합으로 250 루피고 사진은 25루피다. 호텔 쪽에는 성과 관련된 낡은 시멘트 건물들이 즐비하고, 마을 쪽으로는 사원과 관련된 낡은 시멘트 건물이 즐비하다. 그런데도 바라보면 근사한 것을 보면 지형이 아름답고 건축물도 새로운 아름다움을 추구한 모양이다. 하늘이 도와주지 않아 멋진 사진은 얻을 수 없었지만 걷기에 좋았다.







작은 마을이라 걷기에 좋지만 곳곳에 구걸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힘들다. 무시하고 다녀야 하는데 잘 되지 않는다. 대충 훑어보고 나서 아침을 먹으러 갔다. 호텔에서 나와 다리를 건너 첫번째 레스토랑이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라고 하는데, 뭐랄까 실내 포장마차 수준을 생각하면 된다. 감자를 중심으로 각종 야채를 볶아서 토스트, 계란, 커피와 함께 제공하는 아침 메뉴가 180루피고, 계란 볶음밥 120루피, 짜이 30루피다. 시골이라 세금을 받지 않는다. 물은 가져온 것이 있어서 주문하지 않았다. 맛은 괜찮았다. 야외에서 먹다보니 마지막 세 숟가락이 남은 볶음밥이 식어 버려서 맛이 떨어졌다.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한국에서는 맛볼 수 없는 멋진 맛이다.


개가 왔다. 처음에는 꺼려져서 쫓았는데, 다리를 다친 녀석이 자꾸 옆으로 온다. 감자 튀김을 반으로 잘라 두 번 던져 주었더니 잘 먹고 다시 온다. 휴지로 손을 감싸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터키와 달리 잘 관리가 되지 않는 개들이라서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만져본다. 따뜻했다. 녀석도 기분이 좋으니 가만히 눈을 감았다 떴다 한다.

 

40년째 친구라는 영국 아주머니 두 분이 그리미의 아침 셋트를 보고 테이블에 앉아 같은 것을 주문한다. 보기에 맛있어 보인다고 한다. 이곳에 나흘간 머물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틀을 보고 잔시로 이동해서 잔시에서 하루 더 자고 아그라로 이동할 계획이다. 영어로 소통이 잘 되니 영국인들이 인도를 여행하는 것은 매우 편안해 보인다. 영어만 잘 한다면 이 분들과 계속 수다를 떨어도 좋겠는데, 참 아쉽다.


우리는 첫 날은 도착해서 어안이 벙벙해서 긴장되고 둘째날부터 떠나는 날까지는 적응이 되어 괜찮다가도 새로운 곳으로의 이동이 잘 될 것인가에 대해 걱정이 되어 또 긴장을 한다. 여행은 짜릿한 긴장의 연속이다.

   

11시가 되어 호텔로 올라왔다. 체크인을 해 준다. 거대한 열쇠와 자물쇠를 주고, 마치 감옥같은 방으로 안내한다. 실내는 온통 100년은 되었을 가구들로 장식되어 있고, 시트는 저 아래 썩어가는 강물에서 세탁한 것처럼 꼬질꼬질하다. 햇볕에 잘 말렸는지 냄새는 나지 않는데, 여기저기 볼펜 낙서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정말로 새것으로 교체한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모든 호텔에서 느꼈던 그 기분이다. 노 프로블럼. 방도 넓직하고 조명은 어둡다. 촛불도 켤 수 있다. 일단 전기 온수기로 뜨거운 물을 데워서 샤워를 하고 한잠 자기로 했다. 그리미는 열심히 자는데 나는 잠들지 않는다. 좀 잘까.







오후 3시에 다시 호텔을 나섰다. 관광객들이 고성 지대를 살펴보러 오느라 웅성대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방이 자한기르마할 입구 옆에 있다. 고성 입장료를 내고 내부를 볼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500루피 절약해서 비싼 호텔비를 벌충하기로 했다.


방에 두고 온 셀카봉을 가지러 가다가 카메라를 떨어 뜨렸다. 10여년 전 호주여행에서 카메라를 떨어뜨려 망가뜨린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다. 카메라를 휴대할 때는 언제나 손목에 감고 다녀서 절대 떨어뜨리지 않는데, 오늘은 미처 길을 제대로 나서지 않은 상태에서 호텔 방으로 되돌아 오다가 벌어진 일이다. 다행이 렌즈는 박살나지 않고 옆으로 떨어지면서 줌기능이 망가졌다. 또 다행인 것은 자동 초점 기능도 살아있는 것이다. 남은 5일 간의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멀리서 지켜보던 그리미가 뛰어와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궁전같은 힌두사원을 둘러보기 위해 마을을 돌아보는데, 사원 왼쪽 편에 텐트촌이 형성되어 있다. 젊은 처자가 나오기에 옆으로 가도 되느냐고 눈빛으로 물으니 괜찮단다. 텐트촌을 촬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원의 옆모습을 찍기 위해 작은 언덕을 오르는 것이다. 텐트촌 옆은 화장실용 공터다. 여기 저기 흔적이 남아 있다. 이십 여 개의 텐트가 제법 견고하게 자리잡은 것을 보면 벗어날 수 없는 집이 되어 버린 모양이다. 그렇다고 집시가 되어 예전처럼 떠돌지도 못하고, 떠도는 여행객들이 그들을 찾아 전세계에서 오니 오르차에서 구걸판을 벌이는 모양이다. 사원은 멋있었고 텐트촌은 우아한 사원을 배경으로 초라하고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다.






고성의 흔적들은 쓸쓸하게 버려져 있다. 600년 정도의 시간이 흘러서 완벽하게 버려졌다. 일부 장식들은 매우 정교하고 아름답게 남아있는 것을 보면 제법 근사한 마을이었을텐데, 정치 격랑에 휩쓸린 도시의 참담함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은 참 잔인하고 야만스럽다.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희노애락의 단순한 감정 그 이상의 것에 대한 욕심과 집착에서 기인한다. 모래처럼 빠져나가 버린 권력의 달콤함을 되찾기 위해 반란을 일으키고, 그 반란을 진압한다고 이 아름다운 도시를 처참하게 파괴해 버린다.


폐허 속을 걷고 있으려니 이런 풍경을 좋아하는 아들들 생각이 난다. 여행 떠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다 큰 녀석들은 잘 지내고 있단다. 정말로 상황이 바뀐 모양이다. 우리는 아들들의 이런 저런 도움이 필요한데 말이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며 힘차게 흐르고 있다. 아무려면 어떠랴 우리 앞에는 대양이 놓여 있으니 말이다.




















작은 도시에서 울리는 경적 소리는 귀청을 찢는다. 이제 경적소리 정도에는 눈도 꿈쩍하지 않을 것같았는데, 이곳에서 다시 경기가 난다. 장소가 작아지니 소음의 파괴력이 훨씬 커졌다. 그나마 소음이 적은 곳인 아침을 먹었던 길거리 람라자 레스토랑으로 가서 저녁을 주문했다. 인도 아낙네들이 차를 마시며 우리를 구경하고, 우리는 아낙네에게 안겨 있는 사내아이를 바라 보았다. 맑은 눈과 귀여운 얼굴을 가진 아이다. 낯을 가리는지 내 인사는 받아주지 않는다. 아무려면 어떤가. 탈리와 아침셋트와 짜이를 주문했다.


식사를 거의 마쳐갈 즈음에 아침의 그 개가 또 나타났다. 자파티 남은 것과 커리, 감자를 바닥의 그릇에 담아 가져다 주었더니 얌전하게 잘 먹는다. 착한 녀석, 잘 살아라.


지나가던 소에게 펌프질을 해서 물도 먹이고, 저녁을 먹으며 산 그늘에서 풀을 뜯으며 쉬던 소들도 퇴근하는 모습도 지켜본다. 한가롭지 않은 오르차 시내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탈리는 먹을 만하다. 감탄할 정도는 아니다. 우리 입맛에 맛는 커리가 3종류 정도는 되고, 나머지 3종류 정도는 굳이 먹을 생각이 들지 않지만 너무 배가 고프면 먹을 수 있는 정도다. 짜파티는 3장까지는 먹을 수 있다. 부족하면 무료로 더 가져다 주니 배 곯을 일이 없다. 비리야니 또는 볶음밥으로 채워지는 쌀밥 쪽은 볶음밥을 줄 때 훨씬 행복하게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오늘 저녁 한끼도 무사히 끝냈다.


레스토랑 앞 다리를 건너야 고성 지구를 들어갈 수 있는데, 여러분들이 앉아 계신다. 다리 위에서 얻고 싶은 우리들의 셀카를 그네들이 방해한다. 사진을 포기하고 쉬쉬 마할로 들어간다. 멋들어진 고성 옆에 자리한 초라한 성이지만 내부는 페인트칠과 고가구로 깨끗하게 단장하고 호텔 프런트와 레스토랑으로 사용하고 있다.


킹피셔 한 병을 시켜서 둘이 나눠 마시며 직원과 손님과 단순한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다. 아들들과 영상 통화도 한다. 쉬쉬마할 호텔에서 와이파이가 되는 곳은 이곳 뿐이기 때문이다. 너무 썰렁해서 레스토랑을 떠나 방으로 돌아왔다. 부른 배를 잠시 쉬었다가 룸서비스로 킹피셔 한 병(250루피)과 보드카 한 잔(140루피)을 주문했다. 안주는 오르차 시내에서 사온 귤과 감자칩이다.


오르차 시내의 과일 노점 아낙은 매우 거칠다. 손님을 부르는 목소리가 안타까워 귤을 사러 갔는데, 대충 달아서 1kg이라며 100루피를 내놓으라고 한다. 두 배 가격이다. 2개를 덜어내고 50루피를 주고 돌아선다. 딸 아이까지 달려들어 통역을 한다며 난리를 피우는데 가관이다. 계산을 하러 돌아서는 나에게 공짜라며 팔찌를 내민다. 순간 당할 뻔했다. 이 녀석이 나에게 덤탱이를 씌우려는 모양이다. 웃는 얼굴로 돌아섰다. 예쁜 아가, 착하게 살아라, 이곳은 신들의 땅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