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호기심천국/인도여행

[인도 바라나시] 우리의 배려를 확인하다_190123 쓰리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 생각에는 여러 가지 좋은 점들이 있어도, 공기가 나쁘고 바다와 하늘이 예쁘지 않아서 인도 여행을 오지 않을 것같다. 어제 저녁, 나는 그녀의 힘든 몸을 쉬게 할 것이냐 푸자 의식을 볼 것이냐 사이에서 갈등했다. 그리미는 컴퓨터 수리를 원하는 나를 배려할 것이냐 푸자 의식을 볼 것이냐 사이에서 고민했다. 결국 의기 투합해서 호텔로 돌아왔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어제 만난 분들이 사르나트를 다녀오신 모양이다. 싯다르타의 '카스트를 거부하는 만민평등의 혁명 사상'을 평소 존경해 오던 나이지만 사르나트를 꼭 다녀오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더 좋은 카스트로 태어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윤회의 사슬을 끊어버리기 위해 열심히 살고 수행하면 모든 사람이 붓다가 될 수 있다는 석가모니의 철학은 호쾌하다. 아무 것도 아닌 부처상에 절하며 기도를 드려도 거부감이 없으며 불자들과는 다른 마음이다. 어지러운 사바 세계이자 혼란의 도시 바라나시를 떠나 인도의 대혁명가 싯다르타의 첫 연설지인 사르나트를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어제 빨아둔 양말이 다 말랐다.



일기 예보대로 밤새 내린 비가 아침까지 이어진다. 아침을 먹고 나가보니 천둥 번개가 친다. 1월 7일부터 22일까지 돌아다니는 동안 한 번도 비가 내리지 않았으니 건기는 건기다. 그래도 험한 바라나시에 비가 내리니 일단 먼지는 가라앉을 것이다. 오늘 아침에는 뿌리가 나올 것이라고 해서 기대했지만 또 자파띠다. 대신에 샌드위치가 들어가고 볶음밥이 나왔다. 그래 이것이면 되었다. 요구르트를 먹으려 했더니 그것도 오늘은 나오지 않았다. 과일은 어제보다 더 좋아졌다. 짜이와 아메리카노도 주문했고, 오믈렛 대신에 그냥 계란 후라이를 주문했다. 밥 덕분에 배부르게 잘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짐을 싸들고 프런트로 내려왔다. 여직원이 프런트를 지키고 있다. 반갑다. 온통 남자들만 우글거려서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 계산을 하는데 속이 좀 쓰리다. 물론 서비스는 하려고 최대한 애쓰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레스토랑도 훌륭하다. 그렇지만 방은 모텔만하고 뜨거운 물은 아침에 미지근한 물만 나온다. 게다가 창문을 열면 바로 벽이라 창문이라 할 수 없는 창문이 붙어 있다. 시트는 강가에서 세탁했을테니 매우 깨끗하지만 지저분하다. 이런 수준의 호텔을 최고급 호텔로 생각하고 9,211루피에 이틀 밤을 예약했다. 가격은 정말 테러블이다.  호텔은 분명 여러 가지로 좋지만 가성비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5점이다. 이 호텔은 억울하겠지만 가격 조정을 해야 한다. 50루피를 잔돈으로 바꾸는 것은 간신히 해냈고, 500루피를 100루피로 바꾸는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영어 소통도 어렵다. 잘하는 친구는 혼자 떠들고 못하는 친구들은 아예 못한다. 그래도 좋은 호텔이다. 교통도 좋다. 공항에서 22km, BSB역에서 6KM, 아시가트에서 5KM, 사르나트에서 16KM로 모두 접근성이 좋다.



올라가 다른 도시와는 달리 기동성이 떨어진다. 10분 이상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하고, 단 한 명의 기사를 제외하고는 요금도 시스템이 책정한 최대 금액에 잔돈이 없다며 팁으로 처리하자고 한다. 다행이 기차역으로 오는 마지막 기사는 도착 시간에서부터 운행시간, 잔돈 준비까지 완벽하다. 기분이 좋아서 30루피를 팁으로 지급했다.

 

사르나트로 가는 올라를 잡는데 15분이 걸렸다. 한 대는 취소하고 한 대는 매우 더디게 오더니 길을 빙빙돌아서 가서 요금이 과하게 올라갔으며 팁까지 요구한다. 거절했다. 물론 그래봤자 500루피(8천원 / 16KM를 60분동안 주행)지만 말이다. 사르나트 앞에는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총리가 방문한다며 경비가 삼엄하다. 다행이 출입통제까지는 하지 않아서 치안이 오히려 안전하다. 경찰들의 호위를 받으며 사원 스투파 관람을 시작했다.



기대했던 대로 참 고요하고 평화롭다. 바라나시 가트도 나쁘지 않았지만 이곳은 일단 적은 수의 관광객 말고는 없다. 게다가 부처님의 첫 번째 설법지이자 진신사리가 안장되었던 스투파가 있던 곳이다. 겨우 축구장 하나 정도의 부지에 제법 많은 건물들이 지어져 있다. 굽타 왕조 시대에 특별히 번성했던 곳이라고 한다. 붉은 벽돌의 폐허도 고요하고 아늑했지만 스투파를 둘러싼 잔듸밭에 앉아서 조용히 승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동남아 어딘가에서 왔을 사람들의 진지한 표정이 보기에 좋다. 그들은 한 시간도 넘게 이곳에 앉아 마음 공부를 하는 듯했다.






스투파는 대단한 규모다. 전체적으로 조망하면 둥그런 원기둥에 불과하지만 다가가서 살펴보면 하단부의 대리석 장식과 꾸밈이 아름답고 상단부의 벽돌로 올린 탑도 근사하다. 반시계 방향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탑돌이를 하며 향을 피운다. 깨끗한 물을 컵에 담아 주욱 늘어놓은 것도 대단한 장식이 아닌데 어떤 정성이 느껴진다. 창살 밖으로 애타게 적선을 요구하는 여인에게 20루피를 주며 다른 여인과 나눠 쓰라고 했다. 그녀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을 보니 나눠쓸 것같다.


가문의 돈이나 국가의 힘만으로는 이 거대한 유산을 지켜낼 수 없었을 것이다. 오로지 종교의 힘이 모아져야 가능한 일이다. 종교가 사람의 현재와 미래와 내세에 대한 불안감을 볼모로 삼아 돈과 지식과 사람을 끌어 모으고 그것으로 부처님 사후 2,500년 동안 이 유적을 지켜온 것이다. 이곳이 부처님의 설법지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 것은 스투파 앞쪽에서 발견된 아쇼카왕(BC 250년 전후)의 석주에 새겨진 기록 때문이라고 한다. 멋지지 않은가. 인도 아대륙의 역사에서 존경할만한 군주라면 악바르 대제와 아쇼카 황제일 것이다. 힌두의 나라에서 무굴제국과 불교국가의 왕들이 큰 정신 유산을 남겨 두었다. 종교에 대한 열린 태도이다.


한 시간 여를 거닐다가 스투파 주변에 여러 나라에서 세운 사원을 방문했다. 스투파 바로 옆의 황금 사원이 뭔지 궁금했는데 가서 보니 자인교 사원이었다. 스리랑카 사원의 부처님 앞에서 7배를 올리고 마음의 평화와 여행의 무사 귀환, 우리 가족들의 평안한 날들을 기원했다. 사슴 정원 deer park 바로 옆의 근사한 사원은 어느 나라에서 지은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내부의 부처님 일생에 대한 벽화는 일본 화가가 그렸다고 한다. 마하티르 총리가 제대로 구경이나 했는지 모르겠지만 기념 촬영을 하고 황급히 떠난다.


두 시가 다 되어 간다. 호텔로 돌아가야 한다. 올라를 부르는데 시간이 걸린다. 두 번째 올라 기사는 관광 안내를 전담하는 친절한 인도인이 통화를 해 주고 편안한 휴식 장소를 내주어서 마음 편히 15분을 기다렸다. 그가 도착했는데 근처에 없다. 이상하다. 티벳 사원 쪽인 모양이다. 경비를 담당하는 경찰관에게 전화기를 주어 통화하게 했다. 무슨 대화를 하는지 한참을 이야기 하더니 잠시 기다리면 그가 온다고 전해준다. 5분 이상을 더 기다리고 나서야 올라가 왔고, 경찰이 우리를 차에 태워 준다음 드라이버에게 뭔가를 말한다. 기사는 조용하다. 올 때보다 100루피는 적게 나왔다. 물론 교통이 덜 막힌 영향일 것이다.


그레이트 리프 레스토랑에서 바라나시의 마지막 식사를 한다. 내 친구는 쉬고 있고 어제의 그 친구들이 나와 있다. 치킨 커리와 버터난, 볶음밥과 짜이와 물을 주문했다.  치킨 커리가 들어간 순간 가격이 600루피로 뛰었다. 닭이 쫄깃하고 맛있어서 먹기에 좋았다. 볶음밥이 짠듯 했는데 토마토 케첩을 살짝 뿌려 먹었더니 간이 딱 맞는다. 여유가 많지 않아서 느긋하게 식사를 하지는 못했지만 잘 먹었다. 50루피를 팁으로 주고 호텔로 돌아가 올라를 불렀다. 최고의 올라였다.


바라나시 Jn 역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바닥에 앉거나 누워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도 있으나 대부분의 사람은 차가운 바닥에 모포 한 장을 깔고 추위를 피하고 있다. 반면에 몇 명 안되는 외국인 승객들은 커다란 웨이팅 룸에서 편안하게 기다린다. 추운 바닥에 누워 있는 인도 사람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어서 빨리 그들에게도 똑같은 대우를 해 주어야 한다. 기차에서 먹을 바나나와 과자 두 봉지를 사서 가지고 오다가 웨이팅룸 앞의 아이에게 과자 한 봉지를 건넸다.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좋다. 기차를 타러 가느라 나올 때까지도 과자를 아껴 먹고 있었다. 잘 지내라고 하이 파이브를 해 주고 그들 곁을 떠난다. 이 가족에게도 신의 축복이 있기를 빈다.
 





걱정했던 열차 타기에 성공했다. 한국과 전혀 다른 시스템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왜 그렇게 조심해라 주의해라 그랬는지 알 수 없다. 어쨌든 조심했다. 바라나시 JN 기차역은 바라나시에 있는 네 개의 기차역 중에 하나다. 그 중 17:45분에 잔시를 거쳐 괄리오르로 가는 분델칸드 특급(Bundelkhand Express)은 기차번호가 11108이다. 대신에 바라나시로 들어오는 기차의 열차번호는 21108이다. 처음에 분명히 맞는 플랫폼에 들어왔는데 기차 번호가 달라서 우리 기차가 아닌 줄 알고 있다가 Varanasi - Gwoli를 보고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플랫폼 매점에서 확인했더니 맞다고 한다. 출발 시간에 기차가 들어왔으므로 다시 되돌아가기 위해 25분 출발이 지연되었다.



열차 이름인 분델칸드는 분델라 왕국의 역사에서 가져온 모양이다.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오르차 Orchha를 중심으로 번성한 왕국으로 악바르 대제때 작은 왕국이었으나, 악바르의 장남인 자한기르가 반란을 일으켰다 실패해서 숨어 들어온 곳이다. 오르차의 마하라자는 자한기르를 극진하게 대접하여 3년 후에 결국 제위에 오른 자한기르의 절대 신임과 후원을 받는다. 다만 그의 재위기간인 20여년 동안만. 이후에 다시 아우랑제브에게 반란을 일으켰다가 13세의 무굴 황제에게 패망하고 말았다. 어쨌든 분델라 왕국의 치세는 기차 이름에라도 남겨지게 되었다.



두 번째 기차이자 첫번째 2 AC Tier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3등칸 정도의 시설이다. 그래도 선풍기, 전기, 와이파이와 에어컨을 갖추고 있으니 나름 고급 열차칸이다. RAC 티켓을 구매하고 탄지라 좌석 배정이 떨어져 있다. 역무원에게 이야기하고 사이드 침대의 아래 위칸으로 옮겼다. 오케이 오케이 노 프러블럼. 이상하다. 영어가 전혀 안통한다. 딱히 할 일도 없어서 그리미가 읽어주는 오르차의 역사 이야기를 열심히 들었다. 오래 전에 읽은 이야기라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 난다.



인도 여행을 계획할 때 가장 궁금했던 지역이 교육열과 복지정책이 가장 잘 되어 있다는 께랄라와 악바르 대제(1555~1605)다. 일단 께랄라에 대한 작은 궁금증은 해결되었고 남은 것은 악바르 대제의 이야기다. 그 전초전으로 무굴제국의 기초를 닦은 후마윤의 무덤을 방문했었고, 증손자인 아우랑제브의 역사가 깃든 아우랑가바드를 즐겼다. 내일 아침부터는 아들인 자한기르를 후원했던 도시 오르차를 방문하게 된다. 오르차를 떠나면 멀리 아그라로 가서 손자인 샤자한의 타지마할과 악바르 대제가 건설한 수도 파테푸르 시크리를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