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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천국/인도여행

모두가 고생이니 마땅히 내가 이를 평안케 하리라, 신은 없다_180808 입추

인도는 무엇이 많은 나라이다. 사람, 산과 강, 고원, 더위, 종교, 언어, 문자, 역사 등등.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고타마 싯다르타다. 그는 카스트로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계급에 관계 없이 누구나 부처 붓따 깨달은 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비록 그의 지혜가 인도인들을 변화시킬 수는 없었으나 아쇼카 시대에 전 인도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었고, 중국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 나간다. 신은 없다. 모두가 수행을 통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그의 말은 감동이다. 다음백과사전에서 그의 탄생을 이렇게 정리해 두었다. 공자도 그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고 죽었다.

"석가의 본명은 고타마 싯다르타이다. 그는 기원전 563년 인도 북쪽 네팔 국경 근처에 있던 카필라바스타에서 슈도다나 왕과 마야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왕에게는 오랫동안 아들이 없었다. 그러다 마야 부인이 하얀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꾼 후 아이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출산이 임박하자 마야 부인은 당시 풍습에 따라 고향으로 향했으나 고향에 도착하기 전 룸비니 동산에 이르렀을 때 산기가 와서 아들을 낳게 되었다. 이는 아소카 왕이 석가모니의 성지를 순례하며 세웠던 석주가 1896년에 발견(뉴델리에 있다 / 무일)되며 증명되었다.

경전에 따르면 석가모니가 태어나자 하늘에 오색구름과 무지개가 피었으며 가릉빈가가 왕자의 탄생을 축하했다고 한다. 석가모니 왕자는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어가 오른손은 하늘을 향하고 왼손은 땅을 향한 채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는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오직 나 홀로 존귀(尊貴)하도다. 삼계(三界)가 모두 고통스러우니 내가 마땅히 이를 평안히 하리라"라는 뜻이다.

* 가릉빈가 : 이 새는 극락정토에 깃들이며 인두조신(人頭鳥身)의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한다. 자태가 매우 아름답고, 소리 또한 묘하여 묘음조(妙音鳥)·호음조(好音鳥)·미음조(美音鳥)라고도 하며, 극락에 깃들인다 하여 극락조라 부르기도 한다." - 다음백과에서


인도는 또한 베다의 나라이다. 베다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인도 고대의 경전으로 아리안족과 드라비다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아리안족에 의해 정리된 사람사는 이야기다. 베다 -> 우파니샤드 -> 라마야나 등의 서사시 -> 바가바드 기타로 이어지는 힌두교의 문헌(?) 체계를 머리에 두고 재미있게 읽으면 된다.


"기원전 1500년경, 페르시아 북부를 중심으로 모여 살던 유목민족인 아리아 족이 가축의 먹이를 구하기 위해 이동했다. 아리아 족의 이동은 선주민인 드라비다 족과의 마찰을 불러일으켜 전쟁으로 비화되었고, 결국 무력충돌에서 승리한 아리아 족은 인도의 새 주인이 되었다. 선주민이던 드라비다 족은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아리아 족의 인도 침입과 그 후의 생활에 대해 알 수 있는 문학작품은 〈베다(Veda)〉이다. 이 시대는 '베다 시대'라고도 불리는데, 베다란 '성스러운 정신적 지식'을 의미한다. 아리아 족은 농경민으로 정착했다. 그러나, 주변 민족과의 전쟁이 잦아짐에 따라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게 되었고, 단순한 부족 공동체에서 군주제(君主制)로 이행되었다. 왕위는 세습적으로 계승되었고 부족회의나 원로회의가 왕권을 견제했다. 또한 인종적 편견주의를 도입시킨 카스트 제도를 만들었는데, 이는 인도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신분제도이다. (건너뛰기)


BC 15세기경 인도에 정착한 초기 인도·유럽인의 종교를 그들의 성전의 이름을 따서 베다교라고 부른다. 베다교로부터 점차 브라만 계급이 중심이 된 제사주의적 종교가 성장했으며, 이것을 브라만 사제계급, 또는 그들의 최고 존재로 받드는 브라만으로부터 브라만교라고 명명했다. 베다교의 대부분은 소멸되었고, 그중 살아남은 것은 힌두교의 일부로 융화되어 더이상 독립적 요소로 분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힌두교의 많은 특성들이 그 뿌리를 베다 시대에 두고 있으며, 윤회와 해탈 등 몇 가지 관념은 지금까지도 인도인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결정짓고 있다.


베다교는 근본적으로 제사주의이며, 제사는 목적에 따라 여러 유형으로 구분된다. 인간의 생명과 생존의 보존, 위험과 재앙의 극복, 일상적 수단으로 맞설 수 없는 악신이나 적의 분쇄, 보이지 않는 힘의 통제, 초세속적이고 성스러운 질서와의 우호적 관계 유지 등을 위해 복잡한 제사 형태가 고안되었다. (건너뛰기)


현재 108가지 정도 알려져 있는 우파니샤드에는 일찍이 BC 1000~600년경에 크게 활약했던 일련의 힌두 스승들과 성현들의 사상들이 기록되어 있다. 후기 인도 철학의 많은 부분이 이 문헌에 기반을 두었다. 우파니샤드는 베다 전통의 마지막 단계를 대표하기 때문에 이것에 기반을 둔 가르침들을 베단타(Vedānta : 산스크리트로 '베다의 결론'이라는 뜻)라고 부른다. 초기의 우파니샤드는 각 베다서의 브라흐마나(주석서)의 일부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우파니샤드는 철학적·신비적 문제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베다의 신들과 제사의례에 관한 관심이 옅어지면서 브라흐마나와 분리되었다.


우파니샤드는 실재의 본성에 특별한 관심을 두고 있다. 최고의 유일한 존재에 대한 관념이 형성되고 있으며, 지식은 그것과 재결합하는 데 있어서 직접적 수단으로 중시된다." - 다음백과에서


베다시대에서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세계 4대 문명의 하나라고 하는 인더스 문명이 나온다. 아프리카에서 건너 온 토착민인 드라비다 족에 의해 건설된 BC 2300~1750년 경 인더스강 유역에 발달한 문명을 말하는데, 1922년에 발굴된 하라파와 모헨조다로의 유적을 비롯한 100여 곳의 유적이 존재하는 문명이다. 500자 내외의 문자가 사용되고 농경과 무역으로 번성한 도시를 건설하였다고 한다.



"인더스 문명은 BC 4000년경 발루치스탄 고원지대에서 발달하기 시작한 농경문화가 BC 3000년경 인더스 강 유역의 범람지로 확대·발전되면서 본격적으로 꽃피기 시작한 문화이다. 인더스 강 문화는 1922년 영국의 고고학자 마셜 경과 그의 동료학자들에 의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중략) 인더스 문명의 가장 큰 특징은 정연한 도시계획에 있다. 건물들 사이는 일정한 간격을 둔 바둑판 모양의 깔끔한 모습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골목길 상하 좌우로는 벽돌의 높낮이를 조절하여 사방으로 연결되는 수로를 판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상·하수도 시설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략) 가장 일반적인 건축재료는 벽돌이었다. 구운 벽돌과 진흙 벽돌을 건축물의 사용목적에 따라 각각 구별해서 썼다. 예를 들어 제방이나 대중집회소에는 진흙벽돌을 사용했고, 목욕탕·성벽·수로 등에는 구운 벽돌을 사용했다.


(중략) 갑작스러운 멸망의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정설이 없다. 홍수에 의한 자연재해설, 인구폭발에 따른 식량부족설, 외부의 공격에 의한 파괴설 등 여러 가지 학설이 가정 수준에서 논의되고 있을 따름이다. (건너뛰기) 이 문명은 문자를 알았고, 문자체계는 약 250~500자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부분적·잠정적으로 해독되었고, 언어는 드라비다어로 추론되고 있다.


(중략) 인더스 문명에서 가장 유명한 유물은 일반적으로 스테아타이트로 만든 도장인데 그 종류와 질이 독특하다. 측면의 길이가 19~32㎜인 4각형이며 뒷면에는 손에 잡고 걸기 위한 구멍 뚫린 돌기가 있다. 작은 끌과 송곳을 사용해 매우 아름다운 음각 문양을 조각했는데, 이런 문양은 코끼리·호랑이·코뿔소·영양과 같은 실제 동물에서 복잡한 모습을 한 공상적인 동물까지 다양했고, 때로는 사람의 모습도 조각했다. 모헨조다로에서 발견된 도장에는 후대 힌두교의 위대한 신 '시바'의 원형을 조각한 듯하다는 점에서 특히 관심을 끈다. 대부분의 도장에는 인더스 문자로 씌어진 짤막한 문장이 있다.


(중략) 모헨조다로의 문명은 극적이고 급작스럽게 끝났다. 이 도시는 BC 2000년기 중엽에 침략을 받았는데, 침략자들은 시체들을 방치한 채 도시를 휩쓸고 지나갔다. 누가 공격했는가는 상상에 맡길 문제이다. 이 사건은 보다 오래된 〈리그베다〉에 기록된 아리아족의 인더스 지역 학살과 시간·장소에서 일치하는 듯하다. 이 책은 새로 온 사람들이 원주민의 '성벽도시' 또는 "요새'를 공격했고 아리아족의 전쟁신 '인드라'가 '세월이 옷을 낡아 떨어지게 하듯 성채들을" 부수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

- 다음백과에서


그리고 또 공부해야 할 것이 무굴제국(1526~1761 또는1857)이다. 샤 자한이 만든 인도 무슬림 최고의 건축물 타지 마할이 무굴제국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인재들의 작품이면서 그 인재들을 희생시킨 악마성을 가진 건축물. 무굴제국은 티무르(1336~1405 / 몽골 차가타이의 후예)의 손자 바부르에 의해 세워진 나라다. 티무르의 제국은 사마르칸트를 수도로 해서 인도가 아니라 중앙아시아와 지중해, 이집트 전체를 정복했지만 지배하지 못했다. 티무르 제국은 꿈이 좌절되자 인도로 방향을 바꾸었고 지배에 성공한다. 그것이 무굴제국이다. 이슬람과 몽고 후예들의 인도 지배가 만든 제국.


죽음의 순간에 찾아오는 친절한 위안이여!
(중략)
나에게는 노망이 들거나 꿈을 꿀 시간이 없습니다.
(중략)
노인이여, 나는 그대를 바보라고 부르지는 않겠네만,
그런 것은 그대에게 줄 선물이 아니라네.


이것은 미국의 저명한 시인 에드거 앨런 포가 쓴 대서사시 〈태멀레인(Tamerlane)〉의 도입부이다. 〈태멀레인〉은 서양인들이 14세기 후반에서 15세기 초반까지 중앙아시아에서 활약했던 정복자 '티무르(Timur)'를 일컫는다. 티무르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할지 몰라도 한 시대의 영웅이었으며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준 인물이다.


그가 죽고 나서 한 세기 남짓 무렵부터 페르시아 어로 쓰인 그의 전기가 유럽의 여러 언어로 번역되기 시작했다. 1587년 엘리자베스 1세가 통치하던 잉글랜드, 이른바 '황금시대'에 셰익스피어와 함께 시대를 대표하던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는 시대극 〈탬벌레인 대왕(Tamburlaine the Great)〉을 무대에 올렸으며 18세기에는 이탈리아에서 오페라로 만들어졌다.


앞에서 인용한 포의 서사시 〈태멀레인〉에서는 죽음을 앞둔 티무르가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이 버렸던 젊은 시절의 첫사랑 아다(Ada)를 회상하면서 신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그는 신에게 자신이 '부서진 심장(Broken Heart)'을 대가로 권력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환상과 상징을 많이 사용하는 포의 다른 작품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 시의 키워드인 '부서진 심장'과 불멸의 여인 '아다'에 대해서는 이중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이 시를 낭만주의적인 작품으로 본다면 '부서진 심장'은 어린 연인 아다를 잃은 남자의 '실연' 정도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렇지만 보다 심각한 의미를 갖는 작품으로 해석한다면 '아다'와 '부서진 심장'은 티무르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버려야만 했던 소중한 '가치'들과 그 가치들을 포기함으로써 가지게 된 정신적인 고뇌를 의미하게 된다.


- 다음백과 '불멸의 제왕들 - 티무르 바를라스' 중에서




대략 이 정도의 역사를 외우고 나면 기본 지식이 만들어졌다 할 것이다. 매번 기억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자꾸 읽고 말하다 보면 뇌에 스며들 것이다. 입추라 바람이 시원하다. 헤르메스를 타고 음성에 다녀오는 내내 멋진 그늘을 만들어 준 양버즘나무. 감우재 고개길이 나를 즐겁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