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4년~413년. 위진남북조 5호 16국의 시대.
힌두교 이야기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를 읽다가, 갑자기 궁금해 하던 구마라지바(산스크리트어 발음) 鳩摩羅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그가 태어난 344년은, 한나라가 망하고 삼국시대를 거쳐 위진 남북조 시대에 접어든 중국은 5호 16국의 대혼란기였다. 톈샨산맥 天山山脈과 타클라마칸 사막 사이의 톈샨난루 실크로드의 광대한 오아시스에 세워진, 흰색민족 코카서스인들의 나라 쿠차 Kucha 龜玆 왕국의 왕자로 출생한다. 어머니는 코카서스계이고 아버지는 인도계 망명귀족이다. 쿠차는 지금 중국에 속해 있으며, 인구 40만명으로 이중 87%가 이슬람을 믿는 위구르의 땅이다.
코카서스 지방은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의 지역으로 코카서스인종은 백인을 대표하는 명칭으로 사용된다. 아들이 왕권 다툼에 휩싸이는 것을 염려한 어머니가 8살 때부터 간다라(북인도 16국의 하나로 파키스탄 페샤와르 주변 지역)와 카쉬가르(타클라마칸 사막의 서부 끝)에 유학을 보내 일찍부터 불교와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게 했다.
쿠차로 돌아와 톈샨산맥 아래의 차르타그(불모의 산)에 있는 퀴질 Qujil 석굴에서 수행하였다. 차르타그는 텐샨산맥과 타클라마칸 산맥 사이에 있는 또 하나의 산지다. 타클라마칸은 위구르어로, 타클라는 죽음, 마칸은 끝없이 넓은 땅으로,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땅이라는 의미다. 4세기경 쿠차왕국은 불교가 번성해 1만명의 승려와 100여개의 가람이 있었다. 퀴질석굴은 쿠차에서 서쪽으로 차르타그의 계곡을 넘어 70km를 들어가면 나오는 오아시스에 있다. 마치 인도 아잔타와 엘로라의 사암계곡이 부처님을 모시는 석굴로 채워졌듯이, 퀴질에도 천불동 계곡 석굴이 있다. 석굴은 승려들의 숙소인 승방과 법회를 가지던 장소다. 17굴의 벽화가 유명한데, 검은색은 붉은색이 변색된 것이다. 그걸 모르고, 아잔타 석굴에 벽화를 보고, 인도인이 검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한 것으로 이해했다.
쿠차왕국은 열강에 의해 지배받는 운명을 타고났다. 오래전부터 흉노제국의 통치를 받아야했고, 한나라 무제 시절에는 전쟁터가 되었다. 쿠차는 상인들의 통행을 보호하고 관세를 받아 부유해졌지만, 그 부를 탐내는 열강들이 많았다. 역시 세금을 많이 걷어야 나라가 부강해지고, 그 세금이 잘 쓰여지면 시민들이 모두 와아happy해 진다.
쿠차 왕국이 16국의 하나인 전진에게 정복당해 멸망하고, 구마라지바는 전진의 왕 부견으로부터 초청을 받았으나, 그가 죽자 장수인 여광의 포로로 잡혀 17년 동안(385~401) 그의 말상대를 해야 했다. 강마석모도. 석가를, 악마가 여자를 이용해 유혹하려했으나 물리친 것을 그린 그림이다. 여광이 구마라지바를 같은 방식으로 파계를 유혹했고, 여자를 죽이겠다고 협박하여 결혼하게 한다. 그런 수모의 과정에서 구마라지바는 완벽한 중국어를 습득하게 된다. 403년부터 후진의 수도 장안에서 왕명을 받아 불경을 번역하게 되는데 '색즉시공 공즉시색' '지옥' 등의 말을 만들고, '반야경', '법화경' 등 동아시아 불교의 핵심 경전 348권을 대부분 중국어로 번역하였다. 구마라지바를 대접한 전진의 왕 부견은, 고구려 소수림왕에게 불교를 전했다.
구마라지바 Kumarajiva는 자신이 부족한 능력을 갖고 있지만 번역에는 단 하나의 오류도 없다고 공언했을 정도로 자신의 작업에 자신감을 가졌다. 413년에 열반에 든다. 진리 탐구에 열중하고 불경 번역에 마지막 생을 받침으로써 어려운 시대를 잘 살아갔다. 그래,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구마라지바 鳩摩羅什가 수행한 퀴질석굴은 청금석(라피스라즐리)으로 치장되어 있는데, 수많은 사찰과 수행 장소가 만들어질 정도로 차르타그(불모의 땅) 속의 오아시스로 번성했다고 한다. 석굴 앞에 생각에 빠진 구마라지바의 동상이 설치되어 있다. 라피스라즐리 靑金石은 19세기 울트라블루가 합성될 때까지 변치않는 유일한 청색 염료로 황금처럼 귀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가 태어난 쿠차 지역은 현재는 위구르족이 살고 있고 85%가 이슬람교를 믿는 중국의 땅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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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마라지바는 번역에 대해 "이미 입에서 한 번 씹은 밥을 다른 사람에게 먹이는 것과 같아, 원래의 맛을 잃는 것은 물론 심지어 구역질까지 느끼게 한다"고 했으며, 한역에 대해서도 "천축의 풍습은 문채를 몹시 사랑하여 그 찬불가는 지극히 아름답다. 지금 이것을 한문으로 옮겨 번역하면 그 뜻만 얻을 수 있을 뿐 그 말까지 전할 수는 없다"고 했는데,
조선 중기의 문인 서포 김만중은 쿠마라지바의 말을 인용해, 문학의 가치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말(음성언어)에서 시작해 글과 노래(즉 시각언어)로 옮겨지기도 하는 것이라며, 한글로 쓰여진 정철의 관동별곡과 사미인곡, 속미인곡 같은 작품을 굳이 칠언고시 같은 중국식으로 번역하려는 것에 대해 자기(조선) 말을 버리고 다른 나라(중국)의 말을 배워서 표현해 봤자 앵무새가 사람 말을 따라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부질없는 짓이라 비판하고 당시의 민간에서 부르는 노래(즉 한자로 적지 않은 순수한 모국어)가 소위 학자나 사대부가 말하는 시문(詩文)보다 형식이 저속할지는 모르지만 표현의 진솔함에 있어서는 오히려 그들이 감히 따라올 수도 없다고 적고 있다. 김만중의 이 비평은 한문이 아닌 국문으로 제작된 시문학의 가치를 긍정하는 것으로 한국문학사에서 높게 평가받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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