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는 태풍 때문에 걱정이었는데 아무 일 없이 지나갔고, 이번 주는 편안하게 일할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일요일부터 내린 비로 논둑이 터졌다. 드디어 터졌다. 천재와 함께 열심히 다진 논둑이 넉달 만에 터졌다. 우리 집안의 신기록이다.
거북놀이 대사를 외워가며 슬슬 논둑을 밟았다. 비가 줄줄 내리는 속에서 우산을 쓰고 시원하게 리듬에 맞춰 일했다. 걱정했던 중간 논둑은 괜찮고, 열심히 작업을 한 반장과의 경계논이 터졌다. 콸콸 쏟아진다. 야, 저 구멍을 막을 수 있을까. 조금만 늦었더라면 논둑 전체가 터졌을지도 모른다. 먼저 논바닥을 슬슬 밟았다. 크게 주저 앉은 부분에는 장화신은 발로 흙을 끌어다가 꾹꾹 눌렀다. 제대로 작업이 되지 않는지 물의 양이 그다지 줄지 않는다.
이번에는 논둑 안쪽을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거북놀이는 벌써 다섯 번째 부르고 있다. 물의 양이 점점 줄어들고 논둑이 점점 낮아진다. 아예 논둑을 낮춰서 비가 더 쏟아지면 이쪽으로 물이 넘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그런 계획으로 폭 2미터의 논둑을 부지런히 밟았다. 서서히 땀이 나기 시작한다. 무사히 큰 구멍은 잘 막았다.
작은 구멍이 네 개 정도 더 있어서 물이 새고 있다. 이 구멍들도 방치해 두면 거대한 구멍으로 발전하고 결국에는 논둑이 터져 버린다. 수압은 알 수가 없다. 별 힘이 없는 듯 보이는데, 드렁허리나 땅강아지, 지렁이가 뚫어놓은 미세한 구멍으로 조금씩 물을 흘려 보내다가 어느 순간 손가락만한 구멍을 내고, 주먹만한 구멍으로 확대했다가 논둑을 터뜨릴 수 있는 거대한 구멍을 만들어낸다.
열 시가 넘어서 작업을 끝냈다. 비가 이런 식으로 계속 내리면 몇 군데의 둑에서 구멍이 날 것이다. 매일 돌아봐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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