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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스프링쿨러 설치를 연습하다_180823 el ocho de agosto

지난여름 내내 가뭄이 심해서 스프링 쿨러를 설치해 물을 주고 싶었다. 그러나 충분한 수압을 확보할 방법이 없어서 고민만 하고 있었는데, 세상에나. 벼농사용 대형 공동 관정이 우리 밭 옆으로도 지나간다. 제일 가까운 반장 댁 관을 보니 올해 초 도로공사를 하면서 파손이 되어 호스 연결이 어려워 보인다. 김 사장 집 수도는 100미터가 넘는 위치에 있다. 일단은 김 사장 수도로 스프링클러가 작동하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8월 초에 설계도를 그리고 건재상에 가서 의논을 해 스프링쿨러 2대, 잔디 물 뿌리기 1대, 3.5인치 호스 2개, 연결관 2개 등 11만 원을 주고 재료를 구입해 왔다. 매우 단순한 작업이라 아버지께 맡기고 부천의 일을 보러 나왔다. 그 날 저녁 두 분께 전화가 왔다. 스프링클러가 작동을 하지 않아 깜깜할 때까지 계속 작업을 했지만 몸살이 날 지경으로 힘만 들어 포기하셨다 한다. 대신에 마당 수도에 연결한 호스로 집에서 10년 동안 썩고 있던 스프링클러 한 개를 돌리는 데 성공하셨다 한다. 헐, 그럴 줄은.

 

너무 덥고, 밀린 일들이 있어서 엄두가 나지를 않아 작업을 하지 못했는데, 태풍이 올라온다는 화요일부터 시간이 났다. 원래 계획으로는 고추도 따고 논둑의 풀도 벨 생각이었는데, 모든 일을 태풍 이후로 미루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얻은 시간 이틀. 혼자서 스프링쿨러 연결 작업을 했다.

 

먼저 김수도로부터 마당까지 3.5인치 관을 끌어와 연결관을 이어서 두 개의 스프링쿨러를 돌려 보았다. 한 대는 잘 돌아가는데, 나머지 한대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두 개를 비교해서 살펴보았더니 한 대가 손상이 되었다. 불량품인 스프링클러 다리 때문에 밭에서 쓰러져서 파손된 모양이다. 재고품 쿨러도 그제 쓰러지는 바람에 파손되었다. 물건을 챙겨 들고 다시 건재상으로 가서 불량품은 교환하고, 재고품 대체용 쿨러를 샀다. 주철로 된 제품이 있다 해서 그것으로. 수압이 약한데, 주철로 된 쿨러가 과연 작동할지 걱정이 되어 반품을 약속받고 사 왔다.

 

먼저 두 대의 스프링클러를 분배기를 통해 두 개의 호스로 빼 내어 연결했다. 걱정과 달리 두 개 모두 잘 작동되었다. 이번에는 두 개의 연결관을 연결하고 잔듸용 쿨러까지 연결했다. 총 세대다. 두 대는 잘 작동되는데 잔듸 쿨러가 작동하지 않는다. 연결 호스를 전부 분리하고 다시 연결을 했다. 새는 부위가 없도록 꼼꼼하게. 그런데 호스 하나에서 이끼가 자꾸만 흘러 나온다. 아하, 밭에 깔아 두었던 호스에 이끼가 차서 미세 구멍이 막혔던 것이다. 쿨러들을 제거하고 물을 틀어 이끼를 완벽하게 제거한 뒤 다시 쿨러를 연결했다. 된다.

 

스프링쿨러 설치는 처음 생각했던 데로 단순한 일이었다. 그런데, 굉장히 설치가 어려웠다. 일단 100여 미터에 달하는 긴 구간에 걸쳐 호스를 까는 일이 장난이 아니다. 중간에 호스가 꼬이는 일이 십 여 번 반복되었는데, 그때마다 100여 미터를 왔다 갔다 하며 물을 끄고 호스를 다시 연결하고 꼬인 곳을 풀어내는 작업을 해야 했다. 오후 4시부터 9시까지 꼬박 걸어 다니며 기본 흐름을 이해했고, 다음 날 7시부터 10시까지 계속 걸어다니며 완성을 시켜야 했다. 이론은 단순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쿨러를 완성하고 나니 태풍이 올라온단다. 마당에서의 실험은 성공했으니 밭에까지 가서 설치하는 것도 문제가 없으리라. 제일 큰 문제는 관정에서 밭까지 연결하는 100미터 이상의 길이를 줄이는 것이다. 반장 논에서 3.5인치 호스를 연결해 나오면 50미터 이내에서 쿨러 설치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초에는 반장네 수도의 파이프를 수리해서 긴 거리를 고통스럽게 왕복하는 일을 피해야겠다. 모든 장비를 철수해서 잘 보관해 두었다.

 

삶의 문제는 과학기술로 해결해야 하고, 죽음의 문제는 형이상학으로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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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시도는 실패했다. 재료들은 논에서 밭에서 사용했다. 검정색(반드시) 일반 호스를 사다가 집에서부터 밭에까지 연결해서 두 개의 스프링클러(잔디 물주는 용의 장난감 같은 도구)를 돌리는 것으로 2019년부터 사용하고 있다. 올해도 가뭄이 심해지면(비가 내리지 않는 기간이 2주 이상 지나면) 이런 허접한 스프링 쿨러를 설치해 해결하고 있다_21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