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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수탈이 없어서 천천히 일하는 농부다_180711 쓰리다 среда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잡자 과전법을 실시한다. 1391년이다. 전현직 관리에게 일정량의 토지에 대한 수조권을 주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이 과전법이 대단한 정책이었던 것은 "무상몰수 무상분배"라는 유례없는 조치 때문이다. 이때 땅을 몰수당한 사람들은 고려말의 권문세족이다. 고려왕조를 세우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유학을 공부한 6두품과 호족이 중심이 된 문벌귀족, 무신정권기에 집권했던 무인세력, 원나라에 기생하여 호의호식하던 친원파 등 세 부류의 권문세족들은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저항할 수 없었다. 군권과 정치력을 가졌던 최영과 정몽주가 이방원에게 격살되었고, 이성계의 군사력을 배경으로 한 정도전과 조준의 개혁 정치에 저항할 수 없었던 것이다.


조선은 정도전의 민본주의 사상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지만, 이미 그 전에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기반으로 한 과전법을 실시함으로써 한반도의 모든 백성들에게 절대 지지를 받았다. 농사를 짓고 싶어도 땅이 없는 백성들, 일을 하면서도 적당한 토지를 분급받지 못한 하급 또는 지방의 관료들, 변방에서 나라를 지키면서도 가족들의 끼니 걱정을 해야 했던 군인들 등등. 토지의 공평한 배분으로 시민들의 삶은 윤택해졌고, 더불어 국가의 재정도 튼튼해졌다. 오백년 조선왕조의 기틀이 경제정책 한 방으로 틀을 잡은 것이다. 이 틀은 점점 일그러지다가 세도가들에 의해 완전히 붕괴되고 조선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배를 받는다. 그러나 나라를 망친 세도가들은 친일파로 전향하면서 여전히 호의호식하고, 오직 시민들만이 죽어나가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 당시에 태어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하늘에 감사할 일이다.


지금은 농민들에 대한 수탈이 없다. 물론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95%의 시민들을 위한 물가 조절이라는 이름으로 농산물 가격을 저렴하게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 방식의 수탈은 여전하다고 할 수 있다. 농부들이 없어지는 날이 곧 오지 않을까 싶다. 직접 수탈이 없으니 행복한 마음으로 천천히 일한다. 자본주의식 수탈은 판매하지 않음으로써 피할 수 있다.


하늘에서 비가 적당히 내려서 비가 잠깐 그친 사이에 참깨 밭으로 나가서 들깨를 심었다. 어제는 어머니와 아들과 함께 했지만 오늘은 혼자다. 해가 가려서 뜨겁지는 않은데 습기 때문에 땀이 흐른다. 라디오의 음악을 들으며 슬슬 작업을 한다. 한 줄을 끝내고, 한 줄 심을 준비를 하고 일어섰더니 한 시간이 넘었다. 참 시간이 잘 흐른다. 씻고 점심을 먹은 다음 공연을 하러 청주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