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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비 맞으며 장난질 하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_180626 프또르닉 вторник

새벽부터 비가 내려서 오늘은 틀림없이 쉴 줄 알았다. 금왕에 가서 놀 생각으로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비가 많이 내린다. 혹시 논둑이 터져 버리고, 모가 물 위에 둥둥 떠 다닐 수도 있다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불안과 공포는 쉽게 확산된다. 그리고 아버지는 서울대 병원으로 가셨고, 아무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고 동생과 함께 영화를 보셨다.


놀 생각은 포기하지 않았지만 할 일은 해야겠다 생각해서 우렁이 종패 지원금 결산서를 작성해서 읍사무소로 갔다. 금왕읍에는 총 다섯 농가가 우렁이 농법을 한다. 그중에서 무일농원이 제일 규모가 작다. 군과 도 지원비 112,000원 자부담 74,000원 합계 186,000원으로 제초제를 뿌리지 않는 논을 만든다. 이게 확산이 잘 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래도 손이 가기 때문이다.


써레질을 서너 배 정도 힘들게 해야 하고, 논가에 나는 풀들은 몸으로 제거해 줘야 한다. 논에 매달릴 시간에 일당을 나가 돈을 벌면 훨씬 이익이 된다. 게다가 논바닥을 기어다니는 것은 너무 힘들다. 결국 제초제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수확도 적다. 농약을 뿌리지 않으니 여러 병충해에 시달린다. 벼가 쓰러질 정도로 이삭이 맺혀야 풍년이 드는데, 그렇지를 못하니 태풍이 불어도 벼가 쓰러지지 않는다. 이삭이 가벼워서다.  뭐, 그래도 좋다.


음성에 다녀와서 논에 들어간 시간은 오후 4시다. 정말 오랜만이다. 우비와 물장화를 신고 물꼬나 보겠다고 갔는데, 논이 또 다시 나를 붙잡고 놔주지 않는다. 풀도 뽑아야지 물러진 논둑을 다져 줘야지 물꼬도 터 줘야지. 두 시간 동안 꼬박 쏟아지는 빗속에서 일했다. 비 맞으며 장난질 하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 좋았다. 멀리서 천둥이 칠 때는 조금 불안하기도 했다.


우렁이가 논밖으로 빠져 나가지 않도록 쇠그물망을 여섯 군데에 설치했는데, 이 그물망에 개구리밥과 이끼가 끼어서 물이 잘 빠지지 않는다. 1그램도 안되는 개구리밥이 이렇게 무서운 장애물이 될 줄은 몰랐다. 다섯 바퀴를 돌면서 다섯 번이나 개구리밥을 제거해 줘야 했다. 다행이 비가 그치고 수위가 낮아졌다. 논둑이 낮은 찰벼논도 비로소 물이 논둑을 넘지 않는다. 일을 그만해도 될 듯했다.


이슬비를 맞으면 야외샤워장에서 샤워를 했다. 결국 놀지는 못했지만,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