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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잔듸밭에 꼭 잔듸만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_180606 쓰리다 среда

농부답지 않게 언제나처럼 7시에 간신히 일어나서 예초기를 매고 집주위의 풀을 베었다. 부천에서 사온 보안경은 튼튼하지만 더운 몸의 열기를 밖으로 배출시켜주지 못하여 앞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보안경을 쓰고 어제 작업을 했다는 것이 대단하다. 날이 시원했던 모양이다.


잔듸밭은 더 이상 관리하지 않기로 했다. 토끼풀을 비롯한 여러 풀들을 손으로 일일이 뽑아 내어도 잔듸가 그곳을 차지하지 못한다. 잔듸밭에 여러 가지 풀이 피는 것도 그리 흉한 일은 아니다. 일단 예초기로 풀을 베어주는 것만으로 마당 관리를 하기로 했다. 시간 여유가 나면 잔듸를 사서 심거나 싱싱한 곳에서 떠내어 옮겨 심는 것을 해 봐야겠다. 8시 반까지 작업하고 들어와서 빵으로 아침을 먹고 다시 예초기를 매고 논으로 갔다.


이번에는 준비물이 여러 가지다. 보온병에 담긴 시원한 물. 물 따르는 뚜껑이 고장났다. 보온 기능은 잘 유지되고 있어서 그냥 쓰지만 굉장히 신경 쓰인다. 자전거용 고글과 비눗물로 코팅한 보안경. 습기에 견딜지 시험해 볼 생각이다. 그리고 라듸오. 휴식 시간에 음악을 들으며 그늘에서 여유롭게 쉬고 싶어서 가지고 간다. 그리고 접이식 의자. 오천원 주고 산 의자인데 휴대가 쉽고, 그늘에 걸터 앉으면 제법 편안하다. 진짜 갖고 싶은 것은 선베드인데, 너무 튀는 것같다. 이 의자로 휴식 시간을 운영해 보고 다시 생각해 볼 것이다.


세 번을 쉬어가면서 슬슬 작업을 했다. 보안경은 비눗물 코팅의 효과가 전혀 없다.  자전거용 고글로 바꿔 쓰고 작업을 하니 시야가 환하다. 이게 답인 모양이다. 보안경은 매우 안전하므로 아버지의 의견대로 바람 구멍을 더 많이 만들어서 사용해 봐야겠다. 10시 50분에 기름이 떨어져서 일을 접고 집으로 돌아왔다. 기름이 더 있었다면 땡볕에서 더 힘들게 작업했을 것이다. 지나가던 차량이 문을 내리고 인사를 한다. 윗집의 손님인 모양이다. 그래, 인사를 나누는 것이 좋은 일이다. 이제 좀 쉬었다가 오후 작업을 하자.


실컷 놀다가 네시 반이 넘어서 다시 논으로 갔다. 다 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지고 천천히 쉬엄쉬엄 했다. 라디오와 물과 의자가 휴식에 큰 도움이 되었다. 아무 것도 없을 때는 쉬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쉴 수 있는 준비를 해서 잘 쉴 수 있었다.


기계를 사용해서 일을 하면 쉼표가 없다. 기계의 작동을 멈추지 않는다. 이틀 동안의 작업 내내 예초기가 돌면 나도 일했다. 켜기는 내가 켰지만 꺼지지 않는 기계의 끈질긴 작업 의지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었다. 오늘 비로소 휴식을 위한 명분이 생겨서 예초기를 끌 수 있었다. 기계에 맞출 수가 없어서 끈 것이 아니라 의지로 껐다. 쉬어야 일 할 수 있다. 여전히 오른손 엄지가 가장 고통스러웠고, 높은 언덕에서는 허리와 무릎이 힘겨웠다. 젤 타입의 마사지 연고를 열심히 발랐다. 장터에서 사오신 족발 한 개가 이틀 내내 술 안주로 유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