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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천국/발칸 크로아티아 여행

업고라도 가야 해_플리트비체 얼어붙은 Big Fall 산책_160120

플리트비체를 다녀와서 그리미는 아픈 허리를 라디에이터에 지지며 쉬고 있다. 거실에 홀로 그라빠를 마시며 오카리나와 틴 휘슬을 불다가 창밖으로 반달이 예쁘게 떠 있기에 사진기를 꺼내 촬영을 하고 있는데, 파울라 모녀가 왔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영어에서 해방된 파울라의 엄마는 파울라를 통해 끊임없이 질문을 하는데, 영어가 짧아서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이반과 내가 둘이서 한참 동안 집안 산책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해서 그렇게 말이 통하느냐며 궁금해 한다우리는 오십 대의 경륜을 바탕으로 바디 랭귀지를 축으로 영어와 한국어와 독일어와 크로아티아어를 전부 섞어서 집 주변을 돌면서 한 시간 동안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침 이반이 지나가길래 그라빠를 권하며 마지막 건배를 하자고 했더니 할머니한테 혼난다며 거절하더니 슬그머니 잔으로 손이 온다. 건배를 하고 그의 건강과 우리의 즐거운 여행을 축하했다.

 


창문 잘 닫고 쉬라고 하기에 고맙다고 인사하고 한참이나 오카리나를 불며 놀다가 그리미가 나와서 저녁 준비를 하기에 돕고 있었더니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파울라 모녀가 밝은 얼굴로 나와서 예쁜 양초 셋트를 선물한다. 우주신을 불러서 인사를 시키고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선물 하나 챙겨 오지 못한 것이 정말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안녕, 고마워.

 

그라빠 한 병을 거의 다 마셨다. 안주 삼아 일기를 쓴다. 일기를 그라빠 안주로 삼는 것은 아마도 세계 최초의 일일 것이다. 갈수록 문학가의 마인드가 자리 잡는 느낌이다. 그리미는 술주정뱅이로 가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행복한 기분으로 바커스 축제를 하는 것이 술 주정뱅이라면 기꺼이 그 비난을 감수할 수 있다. 오늘 하루가 아름답게 머리 속에서 나와 가슴 속으로 스며든다.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던 그리미가 다급하게 천천히 다가온다. 허리가 이상해. 침대에 눕히고 맨소레담으로 마사지를 시작했다. 어제밤부터 계속 약을 먹이고 싶었던 것이 이런 일이 생길 것의 전조였던 모양이다. 9시 반에 출발하기로 했는데, 이제 8시 반. . 쉽지 않겠구나. 냄비에 물을 끓여서 수건을 삶은 다음에 허리에 올려 찜질을 했다. 라디에이터에 허리를 기대어 찜질을 했다. 9시 반이 넘었다. 아무래도 무리가 아닐까. 간절한 눈빛의 그리미를 보았다. 그래 업고라도 가야 한다.

 

누룽지를 끓이고, 크로아상과 커피를 준비하고, 점심 도시락으로 4개의 샌드위치를 쌌다. 다소 가라앉은 기분으로 아침 식사를 했지만 누룽지죽은 고소하고 담백했고, 속이 편안했다. 초코 크로아상도 빵집 천사 아가씨의 미소처럼 깨끗해서 먹기에 좋았다. 보온병에 누룽지 숭늉 뜨끈한 것을 가득 담았다. 드디어 출발이다. 10시 반이 넘어서 늦은 출발이다.

 




 

30km를 달려 1번 문에 도착했으나 아픈 그리미의 허리를 생각해서 좀 더 편한 길을 택하려고 자다르쪽에서 넘어오는 첫번째 문인 2번 출입구로 올라갔다. , closed. 다시 3km를 되돌아가 1번 문으로 들어갔다. 사나운 매표소 아가씨는 우주신이 고등학생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Eighteen이라 하지 않고 우리 나이로 Nineteen이라고 한 우주신은 큰 일을 저지른 사람이 되어 혼이 났다. 겨우 2천원 할인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여행의 센스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너무 한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래서 화해의 포옹을 하고 다시 길을 갔다.

 

Plitvice는 낮은 곳이라는 의미다. 매표소에서 한참은 아니고 조금만 내려가면 된다. 가는 도중에 워낙 멋진 대형 폭포가 있기 때문에 조금도 힘든 줄 모르고 내려갈 수 있다. Big Water Fall이다. 만일 2번 문으로 들어와서 내려오면서 구경하다가 마지막으로 이 길을 올라와야 했다면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고의 경치를 먼저 봐 버리면 다음 번 경치들은 흥미가 반감되는 것이 우려스러웠다.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어쨌든 시작부터 근사한 경치를 보니 기분은 최고다. 기대가 된다.









겨울의 강촌 구곡폭포를 보는 듯 장관이다. 매우 날카롭게 수없이 형성된 고드름들은 자연의 신비이자 예술이다. 어떤 인간이 이토록 치밀하고 세밀하고 아름답게 조각할 수 있을까. 드론에 매달려 코앞에서 저것들을 보아야 하는데, 드론을 사고 싶은 욕망이 샘솟는다. 게다가 폭포 너머의 하늘은 얼마나 예쁜지. 크로아티아에 도착하면서부터 계속 일기예보를 체크하고 여행 일정을 조정한 것은 두브로브니크와 플리트비체의 비경을 보기 위해서였다. 모든 신들과 조상님들의 도움으로 꿈을 이뤘다.


두브로브니크에서는 기적처럼 비가 개이고 맑은 하늘이 나타났으며, 플리트비체는 완벽한 하늘과 경치를 선사한다. 겨울의 추위가 아니었더라면 시원한 물 그 이상을 기대하기 어려웠을텐데 참으로 대단한 장관을 볼 수 있었다. 몇 차례나 관광객이 교체되었는데도 우리와 커플은 Big Water Fall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보고 사진 찍고를 반복한다. 벌써 세 팀 가까운 단체 관광객이 이곳을 훑고 지나갔다시리게 아름다운 이 광경을 오래동안 바라보지 못하는 그들이 안타까웠다차가운 경치인데도 차가움이 없다. Big water fall.




 

그 다음부터 이어지는 경치는 라스토케의 확장판이면서 사람의 손길이 빠져 있다. 나무 다리를 제외하고는. 일년 내내 수량이 일정한지 작은 나무 다리는 일정한 높이에서 고정되어 있고, 그 다리 아래로 풍부한 물이 제법 빠른 속도로 흐르고 있다. 다리가 물 위에 포개져 있다고 해야 한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틈을 두고 허약해 보이는 다리가 물 위에 떠 있다. 흐르는 물소리가 제법 크다는 것은 물도 깊고 경사도 크다는 것인데, 겁이 나도 묘하게 예쁘고 안정감이 있다. 작은 폭포가 만들어 내는 포말과 흐르는 소리와 고드름과 얼음꽃은 각양각색이다. 비슷한 듯 다르다. 아마도 평생 보아야 할 모든 얼음꽃들을 이곳에서 한 번에 하루만에 다 보아 버린 감동을 준다.

 

새로 설치한 다리가 물과 절벽을 경계로 깨끗하게 놓여 있고, 마침 모든 단체 관광객들이 우리 곁을 떠나 버려서 편하게 걸터앉아 준비해간 샌드위치와 숭늉을 마신다. 워낙 커다란 바켓트를 샀기 때문에 1인당 하나씩 커다란 바케트 샌드위치를 싸고, 여유로 하나를 더 만들었다. 하나씩 배당된 샌드위치의 절반을 먹으니 이미 배가 찬다. 따뜻한 숭늉으로 찬 공기를 걷어낸다. 따사로운 햇살이 겨울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벌써 두 시간 째 차가운 물 옆에서 놀고 있는데도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햇살과 아름다움과 숭늉 덕분일 것이다. 후식으로 웨하스를 먹고 있는데, 대한의 자매가 지나간다. 한 조각씩 나눠 주라고 했더니 손이 큰 그리미는 따뜻한 인사와 함께 두 개씩 나눠 준다. 잘했다. 우리가 어려움 없이 복받으며 살아가는 것은 그리미의 이런 마음 때문이다.







 

그리미는 원래 그렇지만, 너무 느긋하게 얼음꽃 하나하나 폭포 하나하나 호수 하나하나를 구경하며 가느라 남들 보다 세 배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 속으로 걱정이었다. 해가 지고 찾아 올 어둠과 추위가 두려웠다. 2시 반까지는 다 돌고 나가야 하는데 이런 속도로 과연 되돌아 갈 수 있을까. 그래도 표현은 하지 않았다. 두려움은 전염이 빠르다. 걷고 또 걷다 보면 주차장에 도착할테지. 어떻게든 주차장에 도착하면 따뜻한 차가 있고, 배낭에는 비상 샌드위치가 조금 남아 있고, 천하장사와 자유시간과 웨하스까지 준비해 왔다.

 

벌써 봄을 준비하는 꽃들이 양지바른 곳에 피어 있다. 고개를 낮추고 작은 꽃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그리미가 플리트비체를 두 배로 즐기게 해 준다. 거시적으로 풍부한 폭포와 물과 지형의 아름다움을, 미시적으로 얼음 속에 핀 꽃들을. 선착장까지 가는 길은 외길이기도 하지만 표지판이 잘 되어 있어서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잘 가꿔놓은 공원이다. 중간에 원두막이 있어서 다시 숭늉과 샌드위치를 조금 더 먹었다. 그동안 잘 먹고 살았더니 조금만 에너지를 써도 먹을 것이 잘 들어간다. 허리살이 많이 늘어났으나 자전거 몇 번 타고 풀 몇 번 뽑고 나면 쏵 빠져 버릴 것이다. 걱정할 것 없다.

  




야산을 한 바퀴 돌아 선착장에 도착했더니 막 전기 보트가 출발한다. 할 수 없이 우리 세 식구가 빈 선착장을 지킨다. 화장실도 잠겨 있어서 대자연에 거름을 주고 K 코스를 따라 걸어 보았다. 물이 찰랑찰랑 해서 언제든지 호수가 삼켜 버릴 것 같다. 곧 부셔질 듯한 얼음장이지만 발을 디디면 제법 버틴다. 큰 돌을 들어 저 멀리 얼음 위에 던져 보았더니 깨지지 않는다. 살얼음판을 걷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려 용기를 내어 얼음판으로 올라설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몸무게가 그 때의 두 배다. 만용은 부리지 않기로 했다. 대신에 야생화며 풀이며 물이며를 더 자세히 보았다. 자치기도 했다. 나무가지를 주워 자와 막대를 만들어 옛날 생각을 하며 작은 자를 쳐 올리고 막대로 때려 냈다. 계속 헛손질이다. 5분 여를 헛손질을 하다가 간신히 맞춰냈다. 허참, 이렇게 연습이 중요한 것이구나.

 

그렇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더니 전기배가 온다. 돈 내고 타라 했으면 절대로 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입장료에 포함되어 있으니 탄다. 조용히 천천히 간다. 그런데, 그 정도의 움직임으로 만들어지는 겨울 바람은 차다. 우주신이 우리 뒤로 숨는다





다시 출입구로 돌아오는 길이 아쉬웠지만 행복했다. 시간이 늦었다고 버스까지 태워준다. 거의 마지막 관광객인 우리들이 나가지 않으면 그들도 퇴근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리미의 다친 허리도 아무 이상 없었고, 조용하고 싸늘한 공원이 포근하게 감싸줬다. 파묻힐 듯 찰랑거리는 맑은 물과 연약해 보이는 나무 다리가 어떻게 그런 안정감을 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 나무 다리 위에는 내린 눈이 얼어 있기까지 했는데 말이다. 자연 속에 사는 인간의 삶은 신기할 따름이다. 2년이 지난 지금, 그때는 믿지 않았지만, 그곳은 요정의 숲이었다. 행복한 꿈처럼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