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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천국/발칸 크로아티아 여행

30년된 라디오와 함께 일하는 폴라의 할아버지_플리트비체와 라스토케 사이_160119

아무래도 플리트비체로 빨리 이동하는게 좋을 것 같아서 누룽지와 토마토 샐러드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35살의 청년에게 우주신이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는 10시에 check out 합니다.



9시 50분에 모든 준비를 끝내고, 숙소에 대한 평가도 10점으로 해 주고, 메모도 남기고, 와인 따개를 준비해 달라는 부탁도 하고 짐을 들고 차에 올랐다. 정각 10시가 되자 신사복 차림의 청년이 다가선다. "How are you, this morning?" "I am fine, thank you, and you?" "Yes, I am fine. How was your trip in Zadar and this apartment?" "Execellent. Beautiful Zardar, clean and convenient apartment, thanks a lot." 그리고 우리 모두는 만족한 미소를 띄우고 열쇠를 주고 받고 헤어진다. 이제 아드리아해와는 이별이다. 언제 다시 저 아름답고 고요한 바다를 볼 수 있을까. 그리미에게 약속한 데로 꽃피는 봄이 오면 보스니아를 거쳐 다시 이곳에 오리라.


도로는 정말 훌륭하다. 고소도로를 달리던 일반 도로를 달리던 언제든지 시속 100을 넘겨도 안전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한 번 기름을 채우고 200쿠나(35,000원 / 25리터). 달리는 길에 백운대와 인수봉을 만났다. 훌륭하다. 지리산의 설봉도 만났다. 히말라야 트랙킹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드는 설산도 만났다. 기온은 점점 떨어져서 영하 6.5도다. 괜찮다. 사나운 Bura도 불지 않는다.






두 시간을 내리 운전하는데도 조금도 피곤하지 않을 정도로 편안한 도로다. 제법 큰 마을이 나타나서 콘줌이 있다. 어제 미리 장을 다 보아서 오늘은 특별히 살 것이 없다. 마을에 내려서 필요한 것을 사기로 했다. 숙소 근처다. 가민은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하지만 너무 깊숙이 들어온 우리에게 숙소는 보이지 않는다. 아니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다시 예약확인서를 켜서 이름을 확인했다. PAULA. 한 집에서 할머니가 나오시고 이어서 할아버지가 나오신다. Oh, Paula. 가자. 걸어가신다. 그리미도 우주신도 할아버지와 함께 걷는다. 차를 끌고 세 사람의 뒤를 쫓아 천천히 간다. 여기야. 고맙습니다. 차문을 내리고 '흐발라'.



숙소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두 바퀴를 돈다. 할아버지가 저 위 어디에선가 내려 오신다. 안녕하세요. 여권을 달라고 한다. 할머니가 가지고 가신다. 그리미와 우주신을 데리고 할머니가 숙소로 들어가는 동안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다.

온몸과 크로아티아어로 10분 쯤 후에 딸아이가 올테니 기다리라고 한다. 알았다고 한다. 말을 거신다. 당신은 하루 종일 일하신다고 한다. 17년을 해외에서 일하셨단다. 러시아의 모스코바에서, 이라크에서, 크로아티아에서. 건축 엔지니어로. 이 집을 손수 지으셨다고 한다. 땔감을 잔뜩해서 쌓아 놓으셨단다. 난방은 나무 보일러로 하는데, 돈이 하나도 들지 않고 언제나 따뜻하다고 한다. 땔감을 패다가 힘들면 그라빠를 마신다고 하신다. 나에게 한 잔 따라 주셨다. 설탕도 안 넣고, 첨가제도 없는 순수한 증류주라고 한다. 한 잔 더 마시라고 한다. 운전해야 해서 안된다고 했더니 라스토케는 걸어서 가란다. 괜히 온갖 주차 요금만 내야 하니 300미터만 걸어가라고 한다. 정원에는 그라빠를 만드는 재료들이 널려 있고, 한 켠에 작은 채소밭에서 샐러드용 야채를 키운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한다. '니허, 니허'. 아니에요. '안녕하세요, 하면서 인사하는 사람이 코리언', '니허는 차이니즈', '곤방와는 재패니즈' 아, 그런가. 니허들이 엄청 많이 온다. 담배를 한 대 피웠다. 스레트 지붕 건너편에 빅브라더가 사는데, 담배 피면 자기한테 항의한다고 하신다. 냄새난다고. 그렇지만 괜찮아. 빅브라더 성질이 안좋아 하신다.

작은 창고로 안내한다. 낮에는 돼지고기를 삶아서 창고에 걸어 말린다고 한다. 작은 솥 두 개에서 고기를 끓이는 김이 펄펄 난다. 추운 겨울도 이것들만 있으면 걱정 없다고 한다. 땔감도 충분하니 걱정이 없다고 한다. 렌트카 폴로를 보더니 매우 좋단다. 디젤이면 힘도 좋고 연비도 좋다고. 게다가 최근에는 가격이 점점 떨어져서 더욱 좋다고 한다.

슬로베니아에서 산 30년 된 라디오는 아직도 작동이 된단다. 일 할 때 좋은 친구란다. 그렇게 끊임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났더니 딸이 나타난다. 좋은 레스토랑을 물었더니 센터가 있고, 은행 ATM은 24시간 가동된단다. 서로 부족한 영어로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휴, 오랜 만에 즐겁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소개해 준 센터 비스트로로 갔다. 마을 분들인지 관광객인지 많은 분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서자 일제히 우리를 바라본다. 관심은 보이지만 소통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이곳 시골은 젊은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영어가 유창하지 못해서 서로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발칸 경험이 쌓이고, 영어 메뉴가 준비되어 있어서 주문은 어렵지 않았다. 슈니첼과 송어 구이를 주문하고 맥주를 한 병 시켜서 나눠 먹었다. 워낙 양을 많이 주기 때문에 이 정도만 시켜도 세 사람이 먹기에 충붆하다. 맛있게 먹고 남은 슈니첼을 내프킨에 싸고 있는데, 지켜보던 주인장이 호일을 가져다 준다. 말은 시키지 못해도 우리가 먹는데 불편한 것이 없는지 지켜보고 있었나 보다.








라스토케로 가는 길은 춥다. 영하 3도 정도 되는데, 햇살이 따사로워 한기는 느껴지지 않지만, 그늘로 들어서면 옷이 얇게 느껴진다. 아무 생각없이 마을 외곽의 길을 따라 걷게 되었다. 고색창연함을 느낄 수 있는 나무라는 것은 세월의 두께처럼 깊어서 검은 색을 띄고 있다. 다채로운 검은 빛깔의 나무 집들은 이낀 낀 붉은 기와를 얹고 있고, 그 집들의 아래쪽과 왼쪽 오른쪽으로 물이 흐른다. 맑은 물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흐른다. 나무들이 잎들을 떨구고 있어서 초록빛이 드물기는 하지만 그래도 푸른 잔듸와 상록수들이 섞여 있어서 전혀 삭막하지 않았다. 물색은 초록의 부족을 완벽하게 커버해 주고 있다. 옥색, 녹색, 흰색, 붉은 색 등등으로 다양하게 빛난다.

물의 속도도 빠르다. 저런 속도로 물이 흘러주니 물레방아를 돌려줄 수 있었고, 그것을 동력으로 해서 이 시끄러운 마을이 생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른 소음은 아니다. 작은 폭포로 끊임없이 떨어져 내리는 물소리 때문에 시끄럽다. 어떤 사람이 예민한 사람은 마을에서 자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한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겠다. 귀가 아플 정도는 아니지만 한 시간 가까이 걸어 다녔더니 이제 그만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여름의 계곡물 소리도 한 시간을 넘게 들으면 힘들다. 꼭 그런 상황이다.






겨울은 초록과 사람이 없는 대신에 보너스가 있다. 바로 서리와 고드름이다. 영하 5도 내외로 떨어진 기온이라 엄청나게 춥지는 않은데도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이 조금씩 조금씩 얼어서 멋진 장관을 만들어 낸다. 뭔가 멋진 것이 튀어나올 듯한 분위기를 만드는 수증기 같은 차가운 서리 입자들이 뿌옇게 작은 폭포 주변을 감싸면서 작은 마을을 더욱 아름답게 꾸며준다.

마을은 많이 닫혀져 있다. 이길 저길이 개인 사유지로 되어 있어서 공동의 길이 아닌 곳은 닫혀 있다. 그래도 50여 호 정도 되는 작은 마을의 아름다운 모습은 충분히 볼 수가 있다. 배고픈 고양이 두 마리를 준비해 간 고기로 배를 채우게 한 후 함께 동행하였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작은 마을을 돈다. 세 사람인나 되는 데도 겨울의 스산한 바람 때문인지 외로움을 느꼈었는데, 이 녀석들이 우리를 위로해 준다. 밥값은 하는 녀석들이다. 아, 정말 예쁜 마을이다.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곳이다.






이반이 내 차가 얼지 않도록 포장을 덮어 놓았다. 고마워요, 보고 싶네 ~





돌아오는 길에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서 야채와 모짜렐라, 토마토 등을 샀다. 오늘 저녁은 토마토 스파게티다. 계산대의 할머니는 참 소박하고 친절한 얼굴이다. 험한 내전을 겪으면서도 저런 얼굴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플리트 비체에서 먹을 샌드위치를 만들기 위해 빵집에도 들렀다. 어떤 빵으로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더니 다양한 빵을 소개시켜 준다. 거대한 바켓트를 절반 자르고 다시 가운데를 갈라 주면 맛좋은 샌드위치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그것을 주문했다.

그리미는 고기를 좋아하지 않지만 토마토 케찹만으로 비빈 스파게티는 별로여서 고기도 좀 썰어 넣었다. 맛있게 먹었다. 그라빠를 몇 잔 했다. 한국과 시차가 없었더라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저녁 시간은 한국의 한 밤 중인 것이 안타까웠다. 숙소는 잠들기에도 좋았다. 따끈따끈한 라디에이터가 양말과 속옷을 말리며 기분 좋은 온도를 만들어 준다.


새벽에는 나무가 다 탔는지 방의 온도가 내려간다. 서로의 체온으로 어서 이반이 내려와 불을 피워 주기를 기다렸다. 7시가 지나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8시가 지나자 다시 라디에이터가 돌면서 온기가 돈다. 우주신은 새벽에 추웠다고 한다. 그럴 때는 여분으로 준비된 캐시미어 이불을 하나 더 덮으면 돼. 그것이 시골에서 사는 방법이야.


연통 관리를 잘못해 불을 낸 화목보일러가 생각난다. 무식하고도 한심하게 유지하지만 않았다면 정말 훌륭한 난방 도구인데 지금도 안타까운 마음이다. 무슨 일이든지 정성을 다해서 안전하게 특히 안전하게 관리될 때 좋은 결과를 얻는다. 못내 아쉽다. 그렇게 관리하지 못한 무일농원의 보일러가. 그것 말고도 안전을 고려해서 관리해야 할 것들이 아직도 있다. 시간 여유가 있는데도 그것들을 정리하지 않는 것은 게으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