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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천국/발칸 크로아티아 여행

모스타르의 아잔소리에 잠을 깨다_보스니아 커피는 모양이 예쁘다_160112

새벽 두 시에 서울에서 걸려 온 사촌 누나의 안부 전화에 잠을 깨었다가 잠이 들었는데, 6시 50분 부드러운 아잔 소리에 잠을 깼다. 침대 위에서 뒤척이는데 이번에 맑은 교회 종소리가 들린다. 몸을 일으키고 어제 끓여놓은 따끈한 숭늉에 혈압약을 먹고 물을 끓여 커피를 마신다.


오늘 아침은 콘줌에서 준비한 갑오징어 볶음과 양배추국. 깻잎과 백포도주, 김가루와 올리브, 카프레제로 평범한 아침을 먹는다. 세 명이서 함께 준비하는 아침은 숙련된 그리미의 진두 지휘로 한 시간만에 끝난다. 요리하는 내내 차를 마시거나 화장실에 있어도 디나르 알프스의 황량한 아름다움이 함께 한다. 신의 축복이 내린 땅이다.


세탁기 때문에 씨름을 한다. 드럼 세탁기를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농부와 그의 아내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다. 어렵게 어렵게 좋은 냄새가 나도록 빨래를 끝내고, 아름다운 거실에 잘 마르게 걸어 놓는다. 어제밤 널어놓은 빨래들은 기분좋게 말라 있다.


열시에 나가기로 했지만 나가지 못하고 있다. 두브로브닉과 코토르의 날씨는 여전히 비가 내린다고 한다. 이번 주말이 되어서야 비가 걷힐 모양이다. 그나마 스플릿이 하루 정도 해가 난다. 그러니 이곳에서는 네움이나 코토르 정도로 이동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을까. 어떻게 할까. 그리미는 비라고 해야 우중충한 이슬비 정도니 적당한 거리만 이동하자고 한다. 그게 자연스러운 여행일 수 있겠다.







비 맞는 것을 각오했더니 비는 내리지 않고 간간이 파란 하늘이 오래된(stari) 도시(grad)의 다리(most) 위를 비춰준다. 숙소에서 걸어나와 잠깐을 걸었는데, 대리석 판자로 너와지붕을 얹은 아름다운 거리가 나타난다.


주변의 디나르 알프스가 워낙 거대하다 보니 육중한 다리가 마치 놀이터에 설치된 아이들의 장남감 같다. 반질반질 대리석이 빛난다. 오래도록 다리 위를 거닐며 이쪽 저쪽의 모습을 바라본다. 다리 아래로 보이는 짙푸른 옥색의 물은 진도 앞바다의 울둘목처럼 소용돌이치며 흐른다. 깊이를 알 수 없어서만 두려운 것이 아니라, 바닥이 훤하게 들여다 보여도 차가움과 속도가 느껴져 두렵다. 그러면서도 아름답다.


다리를 지나자 동판 예술가의 작업실이 나온다. 실례한다며 들어갔더니 너무나 반갑게 맞이해준다. 그는 5일 동안의 작업으로 지금막 스마트폰 바탕화면이 담긴 멋진 동판화를 완성했다. 넓직한 직사각형의 동판을 두드리고 용접해서 틀을 만들었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리고 아크릴 물감으로 색칠을 해서 완성한 것이다. 바로 그 완성의 순간에 우리가 함께 했다. 주머니 속의 지갑으로 자꾸만 손이 갔지만,,, 참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예술가의 모습과 그의 작품들이다.






참으로 아름다워서 어디에서 보아도 똑같이 아름답다. 다리 옆에 있는 카페로 갔다. 보스니아 커피를 시켰다. 차를 내온 차림새가 예쁘다. 맛도 무척이나 기대했지만 강렬하다. 예쁜 모양을 본 것으로 만족한다.











아이바램 소스가 함께 나온 닭고기 가스(chicken filllet sunichel)는 따끈하고 맛있다. 50KM(25유로)의 점심식사는 거하다. 도미구이, 쇠고기 슈니첼, 사이드 디쉬로 한 접시의 밥, 맥주와 콜라. 멀리 서 온 이방인들에게 전통 음식인 피타(패스트리 사이에 시금치 삶은 것을 넣은 음식) 세 접시를 가져 오셔서 맛을 보란다. 한 무더기의 한국인 관광객들이 휩쓸고 간 단정한 레스토랑에서 천천히 나오는 음식으로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길거리의 사람들은 오랜 비와 흐린 날씨에 지쳤는지 쉽게 미소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이 닫아 걸어둔 문을 활짝 열기 시작한다면 거대한 석회암의 언덕은 델피의 올림푸스 신전처럼 근사한 성전과 아름다운 사람들의 도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들의 전쟁이 너무 늦게 끝났지만.


발코니로 나와서 가까이 내리는 비와 멀리 쏟아지는 태양을 바라본다. 거대한 절벽과 강변의 스타리 그라드는 인간과 신이 합작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이런 상태로 비가 그친다면 잠시 후에 거대하고 아름다운 무지개가 뜨지 않을까. 멀리서 들리는 공사장의 소음도 고색창연한 도시가 오래된 역사이야기를 들려주듯 은은하면서 정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