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호기심천국/발칸 크로아티아 여행

숨막히는 은회색의 절벽과 옥색의 강_사라예보에서 모스타르로_160111

아침 일찍 일어나서 숙소 뒤의 사라예보 시민들이 살아가는 언덕을 오른다. 미끄럼틀을 오르듯 힘겹게 오르고 또 올라도 언덕은 끝날 줄 모른다. 공동묘지에 도착했는데도 아직도 까마득하게 남아있다. 어쩔 수 없이 되돌아서 다시 라틴 다리 쪽으로 내려간다. 그 험한 길을 차들은 쌩쌩 잘도 오르고 내린다. 부유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모두 한 동네에 모여 산다. 어제밤에 팝에 가서 현지인들과 함께 맥주라도 한 잔 하고 싶었지만 담배 냄새에 질린다는 가족들의 반대로 숙소에서 잠을 청한 것이 못내 아쉽다. 길을 가며 이따금씩 인사를 건네도 행복한 모습으로 답례를 하는 사람들은 만날 수 없었다. 부드럽고 간단하게, 더 이상의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다.






차고에 잘 넣어 두었던 polo를 꺼내어 짐을 다 싣고 나자 숙소의 젊은 여주인이 나타난다. 부킹 닷컴에 평을 잘 해 달라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조심스럽게 골목길을 내려간다. 모스타르로 방향을 잡았다. 보스니아의 산길은 수많은 마을들이 안내를 해 주어 심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그러다가 문득 큰 계곡이 나타나고 수량이 늘어난다 싶더니 마을도 사라진다.  앞뒤를 온통 막아서는 거대한 석회암 절벽. 회색빛 절벽이 태양빛을 받아 하얗게 빛난다. 병풍처럼 막아 선 그것들 사이로 빨려들 것 같아서 눈을 아래로 깔면 이번에는 콸콸 흘러내리는 옥색의 강물이 도로 바로 옆까지 사납게 흘러간다. 너무 맑아서 설마 그럴리야 없겠지만 조금만 겁을 먹고 바라보면 그 물도 작은 우리들을 불러 내릴 것만 같다. 숨막히는 경치를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차를 세울 수가 없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끊임없이 차들이 우리 옆을 지나가는 것으로 우리의 안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나운 전쟁을 치른 무서운 전사들의 땅이어서가 아니라 생전 처음 보는 경치에 숨이 막혔다.








모스타르 숙소에 거의 도착했다. 번지수만 찾으면 된다. 깔끔하게 단장된 숙소가 있다. 아니란다. 주소를 보여 주었더니 모르겠단다. 흠. 10미터 앞의 번지수가 예약한 숙소와 같다. 그런데 폐허다. 속았다.


아니다. 폭격 맞은 건물 두 동은 그대로 두고 안쪽의 건물들을 깨끗하게 수리해 두었다. 2층 숙소 전체가 32유로다. 방은 넓고 깨끗하며 침실이 두 개고 세탁기까지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많은 식기들도 식사 준비를 하는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최고인 것은 발코니에서 바라보이는 네레트바 강이다. 거실에서도, 부엌에서도, 화장실에서도.




그리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시내로 나가서 파스타를 먹기로 했다. 4시 반 경이었으니 저녁 식사로는 일러서인지 우리 밖에는 손님이 없다. 맥주와 음료수를 시켜서 마시면서 나중에 주문을 하기로 했다. 쇠고기 스프와 토마토 스프 2개, 크림 스파게티와 피자, 버섯 스파게티까지 시켰더니 상이 한 가득이다.





이 건물의 외관을 보고 누가 이곳을 숙소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게다가 벨을 아무리 눌러도 대답이 없었다. 심지어는 앞집에 계신 분도 이 집이 숙소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 벨을 자세히 보니 붉은색 물감으로 옅게 칠해진 벨이 따로 있었다. 그것이 숙소와 연결된 벨이었던 모양이다. 그것을 누르자, 반가운 목소리가 들리고 또 한 명의 천사가 우리를 맞으러 나온다. 천사였을 것같지는 않은 아주머니 한 분과 함께. 


주차를 어떻게 하느냐고 했더니 담벼락에 대라고 한다. 두 대의 차량이 도저히 지나갈 수 없을 것같은 공간에다 차를 대라구요. 바싹 붙여 대면 되요. 이렇게요. 아, 더 붙여요. 이렇게요. 더 더 더, 1cm만 남기고. 그것 참. 한참을 떨면서 차를 붙여 놓았더니 정말로 차 한 대가 지나갈 만한 공간이 나온다. 거참. 궁하면 통하는 것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