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브로브니크의 전경을 보러 산을 올라가는데 심장이 오그라든다. POLO는 수동이다. 자칫 잘못하면 금방이라도 차는 절벽 아래로 떨어져 버릴 것 같다. 저 앞에서 차 한 대라도 내려오면 꼼짝없이 후진을 해야 한다. 이 절벽 위에서. 내려오는 차가 없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오른다. 바람은 정상이 가까워 질수록 세차게 불고 바다는 잡아 당기듯 푸르기만 하다. 아침 먹은 것이 위장에서 얼어 붙는 것 같다. 그리미는 말도 못하고 손잡이만 꼭 잡은 채 덜덜 떨고 있다. 핸들을 잡은 손이 차갑게 얼어가는 느낌이다. 사고없이 잘 다녀온 지금의 생각이지만, 케이블카로 올라갔으면 느끼지 못했을 짜릿한 경험이었다.
절벽을 내려오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까딱 잘못해서 브레이크를 잘못 밟으면 그대로 아드리아해로 추락할 것같다. 안전을 위한 가드레일조차 설치해 놓지 않은 이 대담함은 뭘까. 지상에 내려와서 잠깐 동안 긴장한 몸을 풀어줘야 했다. 아름다운 해안 도로를 따라 네움으로 간다. 크로아티아 국경을 지나 입국 도장을 받고 보스니아로. 비가 내리지 않는 도로가 이상하게 느껴진다. 이동하는 동안 거의 매번 비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오늘도 비가 많이 내린다고 했는데, 의외로 구름만 짙다.
네움 입구에서 쉬면서 점심을 먹는다. 피자와 슈니첼과 리조또와 샐러드. 너무 양이 많았다. 네움을 바라보는 해안가의 근사한 식당이었는데 손님은 별로 없다. 딸아이와 함께 온 엄마는 커피 한 잔에 멋진 경치에 취해 담배만 피워 대더니 휘익 하고 나가 버린다.
네움을 잠깐 들렀다가 돌아 나왔다. 썰렁한 겨울이라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빨리 스플릿으로 가자. 마찬가지겠지만 숙소에 빨리 들어가서 쉬고 싶다. 다시 보스니아를 벗어나 크로아티아 입국 도장을 받고 아름다운 해안을 따라 한참을 달렸는데, 갑자기 산골로 안내를 한다. 가민 네비가 또 틀렸을까. 아마도 고속도로로 안내하려는 모양이다. 그렇다.
이번에도 깎아지른 듯한 도로다. 1단이나 2단으로 오르는 좁은 도로 위에서 바라보는 산골 마을은 황량하지만 아름답다. 한 시간 가까이 달린다. 중간에 마주오던 차의 운전자가 차창을 내리고 묻는다. 이쪽이 두브로니크로 가는 길이 맞느냐고. 맞다. 네비 없이 이런 길을 달리면 얼마나 불안할지 이해가 간다. 표지판도 해안 도로에 비해 매우 적다. 그렇지만 도로는 정말 좋았다. 보스니아든 이곳이든. 고속도로에 올라 시원하게 130을 놓고 달렸다. 속도 제한을 받지 않으니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순식간에 스플리트에 도착했다.
숙소는 복잡한 시내를 조금 지난 곳에 위치한 아파트. 젊은 주인이 내려 오더니 길가에 주차를 하란다. 아파트 주변은 24시간 무료 주차인데, 도로 경계선 위에다 잘 세워두면 된다고 한다. 그러더니 큰 가방 두 개를 번쩍 들고 안내를 한다. 2층(그라운드 층이 있으니 3층)을 순식간에 오른다. 엘리베이터는 없으니 10층까지 올라야 한다는 농담을 섞어가며.
그의 집은 완벽했다. 재작년에 9.9, 작년에는 10점 만점의 평점을 획득. 맥주와 각종 음료가 냉장고에 가득하고 두 개의 침실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그냥 먹으라고 비치해 둔 것이다. 두 개의 침실이 약간 춥다고 했더니 사랑의 힘으로 극복하라고 한다. 두꺼운 벽이 찬 바람을 막아 준단다. 거실 겸 부억에는 히터와 온풍기가 있고, 화장실에 역시 따끈한 라디에이터가 있어서 더욱 좋았다. 매우 밝은 사람이다. 기분이 좋다.
걸어서 10분 정도 되는 거리에 올드 타운이 있다. 바람이 제법 쌀쌀했지만 하루 종일 이동을 했더니 걷고 싶었다. 우리처럼 걷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름다운 도시다.
콘줌에서 닭을 한 마리 사서 감자를 넣고 백숙을 끓여 만찬을 즐겼다. 한가하고 평화로운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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