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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천국/발칸 크로아티아 여행

[겨울 보스니아 여행] 사라예보에서 돼지고기를 구하다_160110

숙소 앞을 바라보니 까마득한 언덕 위로 집들이 가득하다. 작은 마을처럼 보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산다. 원래 아침은 치킨스프에 밥을 먹으려고 했는데, 세 사람이 돌아가면서 씻고 싸고 하다 보니 시간이 늦어져 남은 밥과 야채, 크림치즈를 바른 빵으로 대신한다. 자그레브에서부터 사서 들고 온 토마토는 그냥 장바구니에 남아있다.


모텔 아바를 지나 차를 세우고 보니 저 위 산 위로부터 맑은 물이 콸콸 쏟아져 내린다. 작은 개울이 시원하게 흘러내리니 귀엽다. 그 천연의 맑은 개천을 배경으로 엄마와 남매가 사진을 찍으며 놀고 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예뻤다. 그래서 사진 한 장을 찍으려고 했더니 그리미가 화를 내면 사진기를 잡아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함부로 남의 사진을 찍다가 걸리면 큰 일 난다는 것이다. 울컥 화가 나는 바람에 20분 동안 냉전. 간신히 마음을 추스리고 서로 사과하고 다시 여행을 시작했다. 다른 때 같으면 3일은 버텼을텐데, 워낙 비싼 여행이다보니 내가 참기로 했다.










개천 중간중간에 제법 커다란 연못들이 만들어져 있다. 자연 양식장처럼 송어가 한 가득 헤엄쳐 다니는데, 잡아서 먹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커다란 물고기들이 여유있게 시원한 물에서 놀고 있다. 거대한 성벽 아래로 흐르는 물이 만들어내는 묘한 느낌이다. 이 황량한 겨울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이 소박한 아름다움일 것이다.




마을을 돌아 내려오는데, 한 쌍의 커플이 내게 레스토랑 옆으로 흐르는 개천의 물을 받아 마셔 보란다. 매우 시원하다고. 혹시 낚이는 것 아닐까 하는 의구심은 들었지만 흔쾌하게 조금 마셔 주었다. 시원했다. 혹시 음모라면 혼자서 당할 수는 없는 일이니 우주신에게도 먹어 보라고 했으나 실패했다. 음. 사진을 한 장 같이 찍자고 했다. 증거를 남겨 두기 위해서. 그런데 표정이 참으로 해맑다.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샌드디스크 메모리 불량으로 이 사진도 날라가 버렸다. ㅠㅠ.


다시 차를 끌고 Stari Grad(무슨 뜻인지를 모르겠으나 요새로 가는 길이라는 안내판인 것은 분명하다)로 차를 몰고 올라갔다. 제법 험한 언덕길을 잠깐 오르자 거대한 성벽이 나타난다. 얼른 차를 세우고 성벽으로 간다. 트라브닉의 전경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면서 요새의 웅장한 모습이 일주일만에 처음 보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드러난다. 관광객도 없다. 성벽을 따라 꼭대기로 올랐다. 거의 난공불락의 요새다. 식량만 충분하다면 수백 년 동안 수성이 가능한 요새다.


성벽을 돌아나가니 바로 마을로 이어진다. 낡은 집과 말끔하게 수리한 집, 퇴락한 집들이 서로 어울려 그대로 마을을 이루고 있다.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 느릿느릿 언덕을 오르내리다가 이방인의 인사를 받으면 활짝 웃는 모습으로 인사를 보내준다. 벽돌과 시멘트, 나무로 만들어진 집들이 이렇게까지 쇠락할 정도로 오래된 마을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부러운 일이다. 크로아티아 국경을 넘어 이곳까지 거의 200km를 달려오는 동안에 산중턱 곳곳에 제법 규모가 있는 마을들이 발달해 있었다. 농업이든 목축업이든 시골 마을에서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땅에서 풍요로운 수확을 거둘 수 있는 모양이다.


저 언덕위 끝까지 집들이 가득해서
사람사는 동네 같아.


여러 가지 색으로 소박하게 장식된 작은 모스크는 공사중이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곳이지만 이제야 비로소 내부 공사를 시작한 모양이다. 바닥에 한국식으로 온수 파이프를 깔아 기도하는 사람들이 따뜻하게 쉴 수 있도록 할 모양이다. 그것이 끝나면 목공사와 시멘트, 벽돌 공사, 마지막으로 깔끔하게 색을 되살리는 공사까지 이어지면 정말 아름다운 마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쉬운 마음으로 트라브닉을 떠난다.


트라브닉에서 사라예보로 가는 길은 고속도로를 타지 않고 보스니아의 시골 마을들을 보며 달리기로 했다. 111km 정도니까 천천히 두 시간 정도. 마을 길에는 경찰들이 많이 단속을 하고 있다고 해서 철저하게 속도를 지키며 달렸다. 40 / 60 / 70km/h. 간혹 답답한지 추월하는 차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정속 주행을 한다. 쉽게 적응은 되지 않았지만 천천히 달리면서 사람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것은 좋은 일이다. POLO는 대단하다. 600KM를 달렸는데도 기름은 절반 밖에 사용하지 않다. 경차에 디젤이라고는 하지만 처음보는 연비다.


사라예보에는 바글바글 집들이 모여 있었다. 트램과 버스와 화물차와 자가용까지 2차선 도로를 가득 메우고 부지런히 달린다. 초입에 보이는 것은 거대한 공동묘지다. 하얀 말뚝이 촘촘히 박혀있고, 그 말뚝에는 초승달과 별이 그려져 있어 수많은 무슬림들이 잠들어 있는 곳임을 알 수 있었다. 삶과 죽음이 한 공간 안에 같이 있어서 요란한 부장품이 필요없다. 고고학자들에게는 무덤에서 얻을 것이 없어서 답답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죽은 이들이 혹시 궁금해 할 수도 있는 이 세상 사람들의 삶이 죽은 자가 살아보지 못한 미래까지 내내 보여진다는 것은 자비로운 일이다.




Booking.com에서 예약한 Sarajevo Apartments는 1박에 35유로(주차비 5유로)다. 주소를 따라 잘 찾아갔는데 보이지 않는다. 당황했지만 차를 세우고 그리미와 함께 찾아나섰다. 예약확인서에 첨부된 오프라인 지도를 가지고 방향을 짐작하면서 갔더니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차는 진입이 불가능하다. 프런트가 없다. 문을 두드렸더니 한참만에 누군가 나온다. 젊은 주인 여자다. 영어가 매우 유창한데 왠지 전혀 알아 들을 수가 없다. 함께 가서 차를 끌고 오자고 부탁했더니 그러자고 한다. 언덕을 한 바퀴 돌아 아파트의 윗쪽에 차를 대고 짐을 내린 다음에 50m 정도 떨어진 낡은 주차장에 그렇지만 매우 안전한 차고에 주차했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4층까지 올라야 했다. 불과 1~2분의 시간이었겠지만 매우 힘들었다. 그러나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그리미와 우주신이 동시에 하루밤 더 묵자고 한다. 확인했더니 내일은 예약이 잡혀 있어서 안된단다. 아쉬움을 접는다. 오스트리아 숙소의 절반 가격, 트라브닉의 오닉스보다 10KM(쿠마)만 비싼데도 숙소의 질은 엄청 높다. 물론 아침식사는 포함되지 않는다. 필요한 모든 것, 기름, 소금, 후추, 프라이팬, 세제, 접시, 커피, 우유, 음료수, 쌀 등등 없는 것이 없다. 일부는 여행자들이 남겨 놓은 것이다. 자그레브의 Agram Apartment의 청결함은 따라올 수 없지만 정말 훌륭한 숙소다. 따뜻하다.


그리미가 쌀을 씻어 밥을 준비할 동안에 우주신과 함께 현금(200KM)을 찾고, 돼지고기를 사다가 감자를 넣고 찌게를 끓이기로 했다. 잘못 생각했다. 정류장에 서 있는 젊은 청년에게 물었더니 이 근처에서는 사기가 어려울 것이라 답한다. ATM도 다리 건너로 가야 있다고 한다. 그래 가자. 걸으며 우주신이 말한다. 여기는 이슬람이 강한 지역이니 당연히 돼지고기를 사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그렇다.


현금을 찾아서 돌아오는 길에 KONZUM(슈퍼마켓 체인,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에서 모두)에서 양상치와 양배추를 사고, 고기를 파는 KONZUM MENICA에 들렀다. 닭고기 양고기 쇠고기를 판다. 닭고기의 다리 3개와 날개 1개를 샀다. 3천원 정도. 아파트에서 준비된 냄비에 전부 씻어서 넣고 끓였다. 뽀얀 국물이 우러나는 시원한 육수에 감자와 양배추가 잘 어울렸다. 자그레브 마트에서 산 계란을 잘 운반해 가지고 와서 처음으로 계란 후라이도 해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배부르게 먹었으니 잠시 쉬고 싶었지만 여행자는 그럴 수 없다. 비엔나에서 우리는 14,000보를 걸으며 관광을 했다. 해가 있는 10시부터 4시까지.


밀랴츠카 강을 건네주는 작은 다리를 지나면 바로 오래된 마을 바슈카르지아로 가는 길목이다. 아이들이 노는 홀리데이 마켓 옆으로 요한 바오로 2세가 미사를 집전한 큰 성당이 나온다, 잠겨 있어서 내부는 볼 수 없다. 방향을 잡지 못하고 결국 가이드북을 꺼내들고 안내대로 움직인다. 멋진 모습의 오래된 빌라는 제대로 복원되지 못했다. 이곳에서 위대한 부자가 나오기는 당분간 힘들 것이니 좀 더 많은 시간이 흘러야 제대로 복원될 것이다. 올드 타운과는 반대로 걸었나 보다. 다시 되돌아서. 다행이도 사라예보의 장미는 만나지 않았다.


작은 상점들이 주욱 늘어선 바슈카르지아 거리는 깨끗하고 예쁘게 단장되어 있다. 멀리 비둘기 광장까지 길가에서 차와 커피를 마시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열심히 피워대는 담배 연기만 아니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전통의 라미스에서 마카롱과 케익, 카푸치노와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다리도 푸욱 쉬고 향긋한 커피가 들어가니 훨씬 기운이 난다.


반짝 반짝 깜빡 깜박 야경이 아름답게 거실 창밖을 근사한 모습으로 바꿔 놓는다. 쇠고기 스테이크를 먹을 꿈은 사라지고 냉동 생선구이로 저녁을 먹어야 하지만 작은 도시의 평화로운 모습으로 충분히 배가 부르다. 멀리 있는 아들에게 사랑한다는 엽서를 쓰는 일도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다시 함께 여행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