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담담해지고 묵묵히 할 일을 하는 것이 농부다_170816, 쓰레다 среда 星期三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일을 하려 했더니 계속해서 비가 내린다. 덕분에 잘 쉬기는 했지만 휴가가 너무 길었다. 거의 20일이다.  열 시경부터 비가 그쳐서 오후 3시가 되어 일을 나갔다.  먼저 감자밭에 자라난 풀을 베었다. 김장용 무와 배추를 심을 곳이다. 어깨에 걸머진 예초기가 가볍게 느껴진다.  스무 평 정도 작업을 하고 났더니 벌써 팔이 조금 아파온다. 땀이 좀 나기는 하는데, 휴가 전에 비하면 천국이다. 모기들이 달려드는 기분이다. 아무래도 내일은 옷을 두겹 입어야겠다.


얼른 밭을 헤치우고 - 사실 이러면 안된다. 농사일은 설렁설렁 꼼꼼하게 처리해야 한다. 서두르면 지친다 - 논으로 갔다. 세상에 그렇게 잘 관리되던 반장댁 논의 벼들이 절반 가까이 누워있다. 농사가 잘 되어서 알곡들이 고개를 막 숙여가고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참사다. 아무래도 비가 너무 많이 온 모양이다. 


반면 우리 논의 벼들은 이제야 비로소 논의 모양새를 갖춰가고 있다. 마지막 김매기를 하고 나서 이삭 비료를 뿌려줬는데,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벼포기 아래를 들여다 보면 물달개비가 가득 자라고 있고, 가막살이가 벼를 이기고 자라는 곳도 여러 곳이지만, 마지막 피사리를 할 때 헤치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알 수 없다. 농사는 긴 여정이라 희비가 자주 엇갈린다. 언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고, 그런 속에서 작물들은 알아서 잘 헤쳐 나가기도 한다. 그런 희비쌍곡선에 담담해지고 묵묵히 할 일을 할 때 비로소 농부가 되는 것이다. 나는 아직 멀었다.


풀이 장난이 아니다. 예초기 날이 무딘 것이 원인일 수도 있겠지만 억세게 자라서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두 번의 휴식을 취하고 나서 예초기의 회전 속도를 높였다. 엔진 소리가 커지고 좀 더 효율이 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 쉬면서 내가 너무 소음에 약해진 모양이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기름통을 한 번 반 정도 썼을 때 일을 멈추었다. 돌아와 시계를 보니 7시. 네 시간이나 작업을 했다. 야외에서 샤워를 하는데 모기들이 반갑다고 엄청 달라 붙는다. 많이 시원해져서 일하기가 한결 쉽다.


향악당에 가서 쇠도 치고 장구도 치고 왔다. 부모님 팔순 기념 여행을 제주도로 갈까 하다가 일본으로 바꿨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생각해서 돈을 좀 써야 하는데, 알뜰한 여행이 체질화되어 있어서 쉽지가 않다. 이번에는 좀 써야 한다. 즐거운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짐승들을 쫓는 폭음탄 소리가 한밤중에도 계속된다. 인삼밭인지 복숭아밭인지 모르겠다.